코로나가 끝나면 우리 하이파이브를 하자.

코로나 이후에 되찾을 우리의 삶

by 외이례

2019년 12월, 세상을 송두리째 흔들 Covid-19, 즉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 놈과 함께한 지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결단코 적응할 수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변해버린 우리의 삶. "지금 현재, 누가 가장 힘들어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외이례 작가들이 코로나로 변한 우리의 삶에 대해 얘기해 보았다. 물론, 개개인의 고통과 근심을 수치화하고 비교할 수 없기에 첫 번째 물음에 정답은 없음을 안다. 혹시나 큰 목소리들의 그림자에 가려, 잊혀졌다고 느끼는 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외이례가 생각하는 "지금 가장 힘들 그들"은 누구일지 알아보고, 개별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이놈의 코로나가 외이례 작가들의 생활 속에는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코로나가 종식되면 우리네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가볍게 대화해보았다.




글에 앞서 4인 간단 소개,

민정 : 한국 거주. "먹고사는 게 왜이래" 매거진 담당

은혜 : 한국 거주. "편해졌는데 왜이래" 매거진 담당

유라 : 벨기에 거주. "내가 먹는 약 왜이래" 매거진 담당

수현 : 벨기에 거주. "내 돈 쓰는데 왜이래" 매거진 담당


Q. 그럼, 각자가 생각하는 코로나 때문에 지금 가장 힘들 것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민정>

일단 사회계층으로 표현해보면, 가장 힘든 일상을 맞은 사람은 취약계층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 기사로 접했을 뿐이지만 가슴이 미어지게 만드는 사연들이 많더라.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를 찾아뵙지 못하게 된 자식들, 품에 한번 안아보고 싶었을 손주/손녀를 전화기 너머 화면으로 만나게 된 부모님, 취업문턱이 바늘구멍보다 더 작아져 버린 취준생들까지. 경조사를 챙긴다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 되었어. 결혼식이야 어찌어찌 조촐하게 치렀다지만 (코로나 시국에 결혼한 1인..), 조사를 챙기는데 혹시나 내가 확진과 연관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눈치를 봐야 한다는 사실은 마음을 무척이나 괴롭게 만들었어. 또 슬픔을 나누고 위로해야 하는데 온전히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아 돌아오는 길이 더 슬퍼졌었지.


수현>

나는 다양한 직업군 중에 유독 택배 관련 업을 하는 분들이 요즘은 얼마나 더 힘들까 가끔 생각해봐. 이미 코로나 발발 전부터 택배 분류 작업하는 분들이나 택배 기사님들의 고충을 다루는 기사들이 있었잖아. 근데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서 배송/택배 물량이 훨씬 더 많이 늘었을 테고, 인터넷 장보기가 거의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느낌이라 업무 양이 과도하게 많아지지 않았을까. 또, 체력적으로 힘든 일들을 마스크를 착용하고 하루 종일 해야 한다면 답답한 걸 둘째치고 숨이 더 빨리 찬다거나,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는 해. 택배 관련뿐만 아니라 아마 음식 배달하시는 분들도 늘어난 업무 양에 힘드시겠지? 꼭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라도, 택배를 받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손쉽게 반송하고, 교환을 받는 그런 과정들의 뒤에 어떤 분들이 나의 편의를 위해 고생을 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싶어.


유라>

나는 사실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 국가와 국적을 불문하고. 그래서 코로나 이후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데,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업무 강도가 말이 안 된다고 하는 말이야. 특히나 코로나 집중 병동이나 코로나 검사소에 배치가 되면, 근무 시간 내내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방호복을 벗지도 못 하고 일한다고 하더라고. 그런데다 본인은 확진자가 아닌데 왜 검사를 받아야 하냐, 답답해서 마스크를 못 쓰겠다고 우기는 환자들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하더라. 이런 일이 만국 공통이라니, 한편으론 좀 속이 상해. 모두를 위해서 수칙을 지켜달라는데, 꼭 의료진에게 시비를 걸어서, 뭐랄까. 이미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해지니 기가 빨리는 기분이라고 하더라. 물론 그 단어로 표현이 될까 싶긴 한데.


은혜>

나는 우리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에 닿지 못하는 내 ‘인식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이 커다란 물음에 답해보자면, 바로 소상공인들이라고 생각해. 아마도 내 주변 지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리고 매일 거리에서 마주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라 그럴 거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리 아빠도 호기롭게 본인이 평생을 해 온 일인 태양열, 공기열 등 에너지로 물을 뜨겁게 데우는 급탕 설비 기술을 이용해서 옆 동네에 작은 목욕탕을 오픈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져서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어. 매일 아빠랑 통화를 하는데 심지어 주말에도 50명이 안 되는 목욕탕 방문자들을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커다란 탕에 물을 받아야 하니 수화기 너머에서 힘듦이 묻어져 나오더라고. 또 하나는 얼마 전 일이라 기억하는 건데, 오랜만에 (구) 직장동료를 만나기 위해 그들에게 줄 꽃을 사려고 주변 꽃집을 방문해서 사장님과 사는 얘기를 했더랬지. 장사는 좀 괜찮냐는 물음에 죽을 것 같다는 탄식을 듣는 사람 불편할까 농담처럼 웃으며 하셨지만 많이 힘드신 것 같더라고. 오픈하고 2년 동안 자리를 잡아가던 중에 코로나가 터져서 지금은 내외부 조경공사 일용직이 있으면 나가신다고 하시더라.

사랑, 진부하지만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Q. 코로나 이후 본인의 삶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 한 가지를 꼽자면, 뭘까?


수현>

이 질문에는 아무래도 부정적인 답변들이 먼저 떠오르긴 했지만, 사고의 전환을 가지고자 긍정적인 변화를 한 가지 말해보고자 해. 코로나로 해외여행뿐만 아니라 국내여행에도 제약이 있게 되면서, 집에 있을 시간이 다들 많아졌을 거라고 생각해. 자녀가 있는 분들은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더 힘든 일일 수 있겠더라.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처음으로 이렇게 진득하게 집에 있어 보면서, 다양한 취미생활을 시도해 보게 됐어.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에 대해서 오랜 시간 곰곰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었어. 또, 책 읽을 시간이 더 많아진 점도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해.


유라>

이 질문은 사실 코로나 1차 봉쇄 이후에 정말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인 것 같아. 일단 나는 바이러스 관련 연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하는 병원의 코로나 진검센터에 교수님 권유로 파견을 갔던 것. 메르스 때도 병원 부속 연구소에서 일을 했었지만 그때는 직접 이런 프로세스에 참여할 일이 없어서 잘 몰랐어. 근데 직접 플랫폼에서 일을 해 보니, 심각한 전염병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의료진은 물론,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밤낮없이 애쓰는구나를 조금 더 깨닫게 된 것 같아.


또 생활적인 면에서 생각해보면, 확실히 새로운 취미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거? 아무래도 재택을 하면서부터 내 시간이 많이 생기다 보니, 책도 읽고 악기도 치고 바느질해서 옷도 지어보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또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어.


민정>

아마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고 빛나던 도시의 빛들이 자취를 감춰버리면서, 저녁 시간이 여백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 신혼생활을 시작하면서 코로나가 닥쳤기 때문에 집에서 가족이 된 연인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건 너무나도 다행이었지만, 신혼여행지로 계획해 두었던 유럽여행은 먼 훗날의 여행으로 남겨둬야 했어. 전국투어로 전향해 행복한 신혼여행을 다녀왔지만, 아쉬움은 많이 남아있더라고. 언제 다시 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답답했고, 예약해둔 숙소의 예약금조차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서 왜 하필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하며 많이 속상해했던 것 같아. 세계여행을 하지 못하는 대신,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집에서 시켜 먹거나, 만들어 먹었어. 그 결과 가장 큰 변화로 엄청 살이 쪄버렸지. 소위 말하는 ‘확찐자’에 해당했으니까 말이야. 찌워 논 살을 빼겠다고 댄스게임도 하고, 홈트도 하고, 운동기구를 들여놓기도 했어. 그때 살림살이가 많이 늘어났지. 그래도 첫 신혼집, 우리 집에서 추억을 많이 쌓았어. 만일, 코로나가 없었다면 밖으로 훨씬 더 많이 나다녔을 테니까.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자거나 나갈 채비를 하기 바빴겠지. 집에서의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봐. 전셋값은 뽑은 것 같으니까..


은혜>

며칠 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 눈 앞에 한 중년의 남자분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분의 얼굴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순간적으로 인식했어. 물론 매일같이 마주치는 거리의 수많은 행인 중에 한 명인데 그 1/100초 동안 무언가 다름을 감지했음에도 그게 뭔지 모르겠는 거야. 다음 1/10초 동안 그분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어이없게 웃었어. ‘뭐지, 뭐지, 아, 마스크!!!!!!’ 그분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아서 내가 그분의 맨 얼굴을 마주하게 된 거야. 그때 난 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 연한 회색빛 미세먼지 하늘이나 매연 냄새나는 거리를 걷는 것처럼, 얼굴의 반을 넘게 가린 서로의 얼굴이 이제는 더 익숙해서 마스크 안 쓴 사람 얼굴을 보고 영문을 모른 채 놀랄 정도니까.


나는 이렇게 우리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야 하는 삶에 적응한 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 어린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기 싫어서 길거리에서 목놓아 우는 걸 볼 때나, 얼마 전 봄이 와서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했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장벽을 마주할 때 괜스레 눈물이 날 것도 같았어.


Q. 코로나 이후에 하고 싶은 것?


유라>

일단 나는 해외에서 일을 시작한 후로 한국에 한 번도 가지 못했어. 휴가를 내면서, 기관 밖에서 학교 서버에 어떻게 접속을 할지 대책을 다 마련 해 두었는데, 하필 출발 전 날 비행기가 다 취소가 되었거든. 그래서 코로나 이후에는 제일 먼저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보러 좀 가고 싶어. 또 온사이트 세미나! 모든 세미나들이 다 온라인이라서, 기존처럼 참가자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없어진 게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그래서 더더욱 온사이트 세미나가 그리운 것 같아.


또, 2020년에 도전하려고 했던 크로스핏 코치 자격증 시험. 아마 2020-2021은 락다운 때문에 제대로 훈련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상황이 잘 종료된다면 이 계획을 좀 추진해보려고.


민정>

수영을 할 거야. 난 아주 어릴 때부터 수영선수로 활동할 만큼 물에서 노는 걸 좋아했었어. 코로나 이전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동네 수영장을 다녔었는데, 못 가지 벌써 두 해가 흘러버렸네. 몇몇 수영장은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고도 하던데, 아직 많이 불안해서 갈 수가 없거든.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수영을 등록할 거야. 사놓고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나의 오리발에게 넓은 세상을 소개해 줘야지.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다는 나의 갈망이 해소되기를!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얘기해볼게. 사람 간 거리 두기로부터 해방된다고 생각하면 어찌나 설레는지 몰라. 물론, 불필요한 사적 친밀도가 낮아진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치고 싶지만, 그 이전에 당연하게 여겨왔던 많은 것들을 다시 되찾고 싶어. 그때가 되면, 밤 10시가 다가온다 해도 황급히 헤어지는 일은 없을 테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겠지. 사랑과 열정으로 불타는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인 지금을 아쉬움으로만 채우지 않아도 된다고 상상하니, 가슴이 벅차.


은혜>

나는 마스크를 안 쓰고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이랑 다시 놀러 다니고 싶어!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 우리 할머니가 제일 조심하시는 것 같더라고. “그, 코 뭐시기가 매일 테레비에 나온다. 은혜야~ 집에 내려오지 말고 조심해라이~”, “이번 설날은 우리 안모이기로 했다~ 할매 혼자 대강 준비해가 제사 지내면 됭께 니는 서울에서 내려오지마라~” 집에 내려갔을 때도 2주 정도 지나서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할머니를 보러 갈 수 있었기에 코로나가 끝나면 얼른 부담 없이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야!


수현>

여행, 귀국, 운동 등등 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도 갈증을 느낄 것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볼뽀뽀로 인사를 주고받는 곳인데, 코로나가 시작되며 국가에서 이 인사방식을 금지시켰어. 동료들과 아침인사로 볼을 부비며 살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가족들과 포옹을 하며 반가움을 나누는 그런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을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큰 행복일 것 같아. 공원에서 길을 걷다 내 앞에서 넘어지는 아이를 마주한 적이 있어. 반사적으로 내 손이 그 아이를 향하다가 나도 모르게 주저하고 결국은 아무것도 못하고 지나쳐 버렸어. 혹시 아이의 부모가 불쾌 혹은 불안에 할까봐. 또 다른 날은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노인들을 보고 마음이 안 좋았던 적이 있어. 예전의 나였으면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선뜻 먼저 물어봤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마음에 머리가 복잡하더라. 의도치 않게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를 야기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 그래서 코로나가 종식이 되고 예전의 인사 방식을 되찾게 되면, 더 살갑고, 친절한 내가 되고 싶어.


메인사진 출처 : THPStock

사진 출처 : Dating and partnerships during the pandemic | @theU (utah.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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