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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May 06. 2022

젠더 프레임 속 자기소개 마지막 by 정씨

그럼에도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이 매거진에서는 외이례라는 작가명 아래, 다른 배경을 가진 세명이 각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글을 써나갈 예정입니다. 이 자기소개는 그 세명 중 하나, 정씨의 이야기를 담고있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 지쳐 쫓기듯이 벨기에에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사과정이 시작되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 자기소개에 적을 만한 에피소드가 없다. 전자 기계공학을 전공했는데 여자 비율이 꽤 되는 편이었고, 남녀를 구분 짓게 만드는 일들도 딱히 없었다.

같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25명 중 졸업생은 고작 6명. 어쩌다 보니 졸업생 성비율이 3대 3이다.


아, 한 번은 큰 호수가 있는 공원에서 새내기 환영식을 구경한 적이 있다. 날씨가 더워 환영식을 신나게 하던 도중 몇몇이 호수 물에 들어가 헤엄을 쳤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있던 여자애가 옷을 벗더니 속옷 차림으로 (그것도 티팬티였는데!) 물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나만 깜짝 놀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 처음 간 프랑스 수영장에서 탈의실이 공용이었던 것, 옷을 갈아입던 한 여자가 가슴이 노출된 것을 우리 둘 다 보게 되었는데 남편은 놀라지도 않던 것. 또, 바닷가에 가면 상의 탈의하는 여자들이 종종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신기하게 받아들이거나 빤히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 (남편이 말하길, 본인이 어릴 적 어머니가 해변에서 그러신 적이 있다고) 이런 모든 것들을 보며 여자의 가슴을 성적인 것만으로 보지 않는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나에게 (짐작하건대 모든 여자들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글 쓰고 있는 기준, 바로 어제 (5월 3일) 독일의 한 도시는 평등을 주장하며, 수영장에서 여성들도 상의를 탈의하고 수영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남편과 나는 이 얘기를 뉴스로 접하며, 와 역시 독일은 항상 앞서 나가네라고 생각했다.

Naturiste (자연주의) 가족의 흔한 바다에서의 휴가 풍경 (출처 : EntreNousSoitDit)


2년의 과정을 마치고, 다행스럽게도 금방 일을 찾았다. 내가 좋아했던 품질관리 포지션인데, 열댓 명의 팀원들 중 품질관리직을 하는 여자는 나하나뿐이었다. 벨기에는 세계에서 남녀평등 순위가 27위 (한국은 108위, 출처 : World Economic Forum, 2020년 기준)인데도, 공학계열의 취업률은 남자가 월등히 많고 그것을 문제점으로 보고 있다.


유일한 현장 여자 직원이라서, 문제 되는 일이 있느냐고?

아니,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팀에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가져올 수 있는 팀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일상 속에서 여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그저 "나 자신" 그대로, 한 사람으로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체감했다. 일전의 경험 때문에 현장 작업자들과 대면하며 일해야 했을 때 긴장하기도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내가 품질 문제를 찾아내어도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나와 열린 마음으로 상의를 해주었다. 매우 퉁명스러운 한 명의 작업자가 있기는 했지만,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아시아계라서 그런 것이었고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다른 작업자들이 그 사람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었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일반화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겪은 벨기에 작업자들과 한국의 작업자들의 태도가 대조되면서, 두 나라의 격차가 명확히 보였다.

우리는 남녀 구분을 떠나 나이로 구분 짓는 것도 좀 멈춰야 하지 않을까? (근무 초반에 있었던 팀 액티비티 중)

일하기 시작한 지 2년이 채 되기 전에, 임신 사실을 알리게 되었다. 임신 초반, 나는 일적으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것만 같아 울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업복을 못 입게 되니 더 이상 출장을 나갈 수가 없었고, 점점 더 내 행동반경에 제약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우리 팀은 내가 불편하지 않게, 과하지 않게, 나를 위한 서포트를 늘려갔다. 우리 팀에 한 번도 임신한 직원이 없었으므로, 안전 프로토콜을 나와 함께 구축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불안해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건의를 했고, 우리 매니저와 안전팀 매니저는 내 안건들을 경청해 주었다. 사실, 특별히 나를 위해 추가적으로 보완된 점은 없었지만 매니저의 태도 덕분에 임신 내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든든했다. "임신해서 유난스럽게 구네"라는 생각을 할까 봐 지레 겁먹었는데, 오히려 내가 선례가 되어 우리 팀에도 여성이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가 된 것이다.


출산 휴가 직전에는 지난해 성과를 평가하는 미팅이 있었는데, 곧 출산휴가를 떠나는 입장이라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내심 했다. 이런 불안을 매니저에게 얘기했더니, 매니저는 오히려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작년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출산휴가는 아무 불이익을 주지 않고, 출산휴가로 일하지 않은 기간은 당연히 평가에서 제외되는 기간이라고. 그래서 작년 동안 진행했던 일들의 성과를 인정받아 연봉 인상을 확답받기도 했다. 현재는, 출산 휴가 15주와 한 달의 육아휴직을 승인받고 복직 후 불이익 걱정 없이 육아에 전념 중이다.




내 요지는 이렇다. 한국에서 여성들은 많은 방면으로 차별받고, 너무나도 일상화되어 있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다. 나도 물론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남자들 또한 이 차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예를 들어, 여성이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된다면, 남자들도 여성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여성들의 권리를 증진해야 한다는 것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남녀 이분법적인 사고는 위험하다. 근 10년 간 유독 더 빠르게 세상은 남녀라는 두 부류가 아니라 다양한 세부 그룹으로 나뉘어 왔다. 성별로 구분 지어진 신념을 가지는 것은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두 부류로 나누어 분쟁을 조장할 수 있으므로 위험할 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성별의 프레임을 넘어서 인간의 전반적인 권리를 동등하게 끌어올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스스로를 "평등주의자 (equalist)"라고 소개하고 싶다.


다른 이들에게는 평등주의자가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모르겠다. 페미니즘, 평등주의자, 안티-페미, 이런 용어들에 있어 통상적인 정의는 부재고, 개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개인화된 정의가 대게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이들에게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불편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건전한 기본적인 이념이다. 그렇기에, 평등주의자가 페미니즘의 반대쯤 되는 용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성)평등주의자로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해야 하는 이슈에는 기꺼이 페미니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며, 남성이 역차별받는 경우에는 나를 향한 비판에 겁내지 않고 역차별받은 이를 대신해 기꺼이 목소리를 내고 싶다. 그리고 남녀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소외되는 계층이 있다면 그들에 대한 목소리도 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내 딸이 세상에 나가 편견 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내 딸 또한 아무런 편견 없이 세상에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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