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재현의 문제
내 이야기에는 쓰레기더미와 거리를 떠도는 행인들이 자주 출현한다. 그런데 이번주에 아주 진지한 고민이 들었다. 쓰레기더미를 떠돌고, 쓰레기더미로 집을 짓고, 거리를 떠도는 이들이 누군인가? 바로 노숙인들 아닌가? 물론 내가 이들을 떠올리고 그린 것은 아니다. 마음 어디 정착하지 못하고, 마음이 시궁창 같은 모습이 현실로 발현이 되니 그런 이미지들이 자꾸만 떠올려지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존재하게 되는 건 결국 노숙인이 되는 것 아닌가?
지난 주 금요일. 친구들과 서울역에서 약속을 잡았다. 서울역은 굉장히 크고 사람들도 많다. 그중에 점점 거대한 군집처럼 커지는 이들이 있다. 서울역의 노숙인들. 11번 출구를 가는 길 마치 굴처럼 긴 보행로가 존재하는데,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누워있다. 익숙하게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려 노력한다. 나는 한때 그들을 궁금해했었다.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은 노숙인들을 아주 하찮게 여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는데 그렇게 누워있냐고, 차라리 구걸이라도 하라며.
나는 이전에 그들이 정말 너무도 쉽게 누워있는 것인지 그점도 궁금했다. 그리고 인터뷰나 다큐멘터리도 열심히 들여다봤었다. 그들이 누워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너무도 평범하고 이해가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상실감으로 삶을 놓거나, 아무리 열심히 살았어도 처음부터 가난했다거나...미쳐버리거나..친구들과 함께 보았던 노숙인 중 한명은 전세사기를 당했다며 쌍욕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미쳐 보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신기하게, 누군가는 웃기게, 누군가는 한심스럽게 이들을 바라본다. 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냥 이런 생각을 했다. 나라면 안미칠 수 있는가?
난 예전부터 이상하게 노숙인에게 관심이 갔다. (물론 다가갈 용기는 전혀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공포감을 잘 느껴왔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운성의 충돌처럼 이런 아주 비극적인 일을 안당하리라는 보장이 있나? 그런 두려움들이 내 안에는 언제나 막연하게 있다.
공감 능력이라는 건 어쩌면 착하고 선하고 좋은 능력이 아니라, ‘만약에 나라면’ 그 공포감이 내면에 기저해있는 아주 자기밖에 모르는 이들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깊게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면 우리에게는 함부로 비웃을만한 사실이 이 세상에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여기서 나의 질문은 발생한다. 나의 이야기의 노숙인들과 쓰레기 집은 이대로 이렇게 표현되어도 좋은 걸까? 이렇게 낭만적으로 표현되어도 좋은 걸까?
작가의 막연한 상상으로 쓰레기집이 탄생한다. 그런데 어쨌든 쓰레기집은 이야기라는 현실 안에 존재하게 되고, 현실은 진짜 우리들의 삶과 연결이 되어있다. 결국 어쩌면 작가는 상상을 통해 만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상상과 다르게, 이야기와 다르게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실현되지 못하는 꿈들이 많다. 그 꿈들을 이야기 속에서 마치 현실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꿈처럼 힘을 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작가의 상상으로, 그저 재미로만 상상된 이야기일지라도 그속에 냉혹한 현실이 담겨있다면 작가는 그 현실을 아주 잘 담아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꿈일지라도 이야기 속의 희망이 현실에서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웃음 속에 처절한 삶을 녹아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