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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함 Oct 12. 2023

B와 함께 춤을

몽골에서 생각한 일 (3)

산을



넘어가자




산을 넘어가자 푸른 호수였다.




산을 내려간 곳에 낮게 깔린 하늘


B와 함께 4시간 동안 여행한 후, 드디어 홉스골에 도착했다.


홉스골은 몽골에 있는 거대한 호수다. 크기가 제주도만큼 넓다는데, 호수가 그 정도로 넓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홉스골까지는 무릉시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가 걸린단다. 무릉시에서 홉스골까지 가는 대중교통수단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래저래 따질 것 없이 우리는 예약한 숙소에 픽업 서비스를 요청했다. B는 우리가 홉스골에서 묵는 숙소에서 보내준 픽업 드라이버였다.




무릉공항에서 내려서 본 첫 풍경



우리를 울란바토르에서 무릉까지 데려다준 비행기




수하물을 받는 곳에 걸린 사진이 멋져서 같이 남긴다.




무릉공항에 도착하니 여행객들 말고도 공항 밖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그중 오타가 난 내 이름표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반짝거리는 백모를 반삭으로 깎고 주름진 얼굴에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는 난간에 팔을 기댄 채 비스듬히 서 있었다. 언뜻 봐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이 사람이 우리를 데려갈 드라이버일까? 아무리 우리가 돈을 지불하고 신청한 서비스라고 해도, 이 노인에게 3시간 이상의 장거리 운전을 부탁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센베노, 인사를 하며 내 이름과 우리가 묵는 숙소의 이름을 말하니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리고 햐! 하고 웃는 것 같은 소리를 내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보며 어쩌고 저쩌고 몽골어로 대화를 하고 우리를 가리켰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같이 싱긋 웃으며 또 다 같이 고개를 몇 번 끄덕거렸다. 그때 우리는 전날 빠듯한 일정을 쪼개 몽골 국영 백화점에 들러 몽골 전통의상인 델을 구입해 착용하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델을 기념품이 아니라 일상복처럼 팔고 있어서 입고 있는 게 화재거리가 못 될 줄 알았는 데 아니었나 보다. 하긴 울란바토르에서 이곳 무릉까지 오면서 델을 입고 있는 사람은 우리 일행 말고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몽골어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맛있습니다, 배고픕니다, 도와주세요 정도였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그냥 뭐 자기가 태워가는 한국사람들이 몽골전통의상을 입고 있다는 이야기 아니었을까. 그들은 우리가 그들이 목으로 내는 소리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걸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몽골어 소리는 낮은 관악기같이 들리고, 그들이 수군거리지도 그 소곤거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서로 발화를 통해 의사전달을 할 수 없다는 건 이상한 일도, 상대를 무시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또 그들이 분위기를 살펴보니 우리가 몽골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게 호감을 주는 것 같았다.

그 반응을 보니 조잡한 관광객용 기념품을 입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우리에게 호의를 표현하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몽골인에게 말을 거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의사전달이 제대로 될지 안 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미숙한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럽다. 몽골발음은 나에겐 꽤 어려운 음조였다. 더듬거리며 드라이버에게 이름을 물어보니 B로 시작되는 자신의 이름을 대답해 주었다. 몇 번 따라 해 보았으나 내 발음이 그 발음이 아니었는지 몇 번 고쳐주듯 다시 말하고는 관두었다. 그때는 그래도 맞든 틀리든 몇 번이고 불렀지만, 지금은 한글로 명기하는 게 자신이 없어 B라고만 쓴다.



내 발음을 몇 번 고치다가 포기한 B는 주변에 있던 어떤 젊은 몽골 남자에게 말을 걸면서 우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 사람은 B가 하고자 하는 말을 우리에게 통역해 주었다. 숙소에 가기 전 마트에 들르고 싶다고 한 게 맞는지, 그렇다면 우리가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볼 동안, 차에 기름 좀 넣고 오겠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숙소 측에 홉스골로 가기 전 무릉시에 있는 마트에 들르고 싶다고 요청을 했었었다. 그래서 큰 마트에 들르고 싶고, 그럼 마트에서 장을 보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젠 내가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다.


즉, B는 한국어도 영어도 전혀 하지 못했다. 몽골 여행기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잘하는 몽골인 드라이버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은근히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방금 눈앞에 한 명이 유창한 한국어로 우리에게 통역을 해 주기도 했으나 우리와 함께 3시간 넘게 차를 같이 타고 가는 사람은 한국어를 하지 못했다.

B와 함께 홉스골까지 갔던 차


나는 B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몽골어를 사용하며 서로 이야기하는 게 불쾌하지 않지만, 과연 B도 자기가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로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게 불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면 우리는 차라리 3시간 동안 말없이 가는 게 좋을까? 어떻게 하면 모두가 기분 좋게 3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심지어 나부터가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과연 좋아하지 않는 일을 불리한 조건 하에서 매끄럽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가. 짧은, 일방적인 의사전달만 가능한 나의 몽골어로는 3분 이상을 끌어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상공에서 바라본 무릉 시내



웬만하면 목의 각도를 45도 이상 들 필요가 없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시가지를 지나, 일단 서로 이야기했던 대로 무릉시에 있는 마트에 들렀다. B는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B가 강한 표정과 함께 뚝뚝 소리가 날 정도로 손짓하며 마트 주차장을 정확히 가리켰기 때문에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받았다. 그런데 처음 들른 몽골의 마트는 코스트코처럼 화려했고 우리는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는 나무꾼처럼 정신없이 마트 구경을 했다.


 B가 예상한 것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가 되었던 것 같다. 마트에 B가 들어와 우리를 찾고는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며 켁켁 소리를 냈다. 만나기로 한 주차장에서 우리를 만나지 못해 우리가 죽은 줄 알았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본인이 기다리다 죽을 것 같다는 뜻이었을까. 몽골에서 목을 조르는 시늉이 어떤 표현인지 알 수 없었다. 여하튼 B가 생각한 대로 픽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 같았다.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마트에서 나와 드디어 홉스골로 떠나려는데, B가 갑자기 자기 바지의 주머니를 더듬거리더니 차의 서랍장이나 컵 홀더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양팔을 내린 채 두 손의 손바닥을 위로 들고 몸을 요리조리 돌렸다. 몽골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대한 문화적 지식이 없다시피 하지만, 느낌 상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핸드폰 잃어버리셨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몽골어로 핸드폰을 뭐라고 하는지 조차 몰랐다. 핸드폰 데이터는 느릿느릿해 온라인을 통한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B도 뭐라고 꿍얼거리는 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혹시 이대로 홉스골로 떠날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홉스골로 떠나는 3시간 동안은 우리랑 함께 있겠지만, 홉스골에서 다시 무릉시로 돌아가는 3시간을 현대인이 어떻게 핸드폰도 없이 지낸단 말인가. 게다가 혹시라도 돌아가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핸드폰 없이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냔 말이다. 몽골에 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망망대평야(茫茫大平野)의 고립무원(孤立無援)이 얼마나 막막(漠漠)할 것인가까지 생각하게 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뭐든 잃어버린 걸 찾아서, 아니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B는 핸드폰을 잃어버렸고, 그러니 당신의 휴대폰을 찾아서 떠나자고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속이 답답할 노릇이었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으로 의사전달을 하도록 늘 강조하며 살다가 전혀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 이렇게 답답한 일이라니.


안절부절 못 하다 B를 툭툭 치며 핸드폰 전화번호 창을 띄워 주며 베노, 베노 하고 말을 했다. 잘은 모르지만 몽골사람들은 전화를 받을 때 '베노'라고 하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B는 미심쩍은 얼굴로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번호를 눌렀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이 맞았다. 그러나 차 안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B는 내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 게 확실한지 한번 더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게 확실해 지자 B는 왔던 길을 돌렸다. 어디로 가는 걸까 했는데 도착한 곳은 B의 집이었다. 몽골 사람들은 도시에서도 게르를 지어 살고 있었다. 계속 B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집에 들어간 B가 전화를 받고 끊었다. 잠시 뒤 나온 B의 표정이 밝았다. 기쁘고 마음이 놓였다.



산의 모양이 말과 소의 갈기털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후로 대화는 통하지 않아도 호의는 주고받은 B와 홉스골로 떠나는 길은 즐거웠다. 홉스골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된 길이었지만, 도로가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고 차는 자주 심하게 덜컹거렸다. 그래서 B가 우리 표정을 살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이 덜컹거림이 즐겁다는 듯 크게 웃었다. 실제로 나는 덜컹거리는 차 속에 담겨 있는 게 별로 괴롭지 않았다. B도 웃었다. 웃다 보니 더 웃게 되었고 마트에서 산 간식도 나눠 먹었다. B는 땅콩과 탄산음료를 좋아했다. B는 운전대에 내 손을 뻗게 하고 말을 걸었는데, 운전을 해 보겠냐는 뜻 같았다. 드라이빙을 너무 즐기다 보니 내가 운전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장롱면허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운전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또 그렇게 말할 수가 없으니 웃으면서 팔로 X자를 표시하며 어깨춤을 췄다. 참 신기했다. 언어가 무용한데 의사는 주고받을 수 있었다. 차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B는 차를 천천히 몰기도 했고 멀리 있는 뭔가를 보고 있으면 뭐라고 설명을 해 주기도 했다. 정말 그게 보이는 걸까? 평소라면 물어보겠지만 질문도 열심히 외워 온 몽골어도 잊고 도로와 차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호응을 했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B의 핸드폰으로 전화도 왔다. B는 나중에 전화를 끊고, 우리 숙소이름을 말하며 '보스'라고 이야기했다. '보쯔'가 몽골어로 양고기만두라는 뜻이니까, '보스'는 영어 Boss가 아니었을까? 아무래도 우리가 도착예정시간보다 지연되어 숙소 측에서 전화를 건 것 같았다. 대충 그렇게 이해했다. 어차피 몽골어 연수 하러 온 거 아니니까! 춤을 계속 춰서 그런가, 낙천적이 된 것 같았다. B는 홉스골로 가는 표지판도 알려주었다. 테, 팀이라고 하며 알겠다고 답하니 쟈 쟈 하고 말을 하길래 따라 했더니 상당히 좋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테, 팀보다 쟈,라고 하는 게 좀 더 겸양을 떨지 않는 긍정표현이었다. 나중에는 빤히 얼굴을 보길래 쟈!라고 했더니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홉스골 가는 길에는 휴게소도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화장실에 들르려 하니 B는 우리를 막아서고 얼굴을 한껏 찡그렸다. 화장실이 더럽다는 듯 차라리 풀밭에서 볼일을 보라고 했다. 몽골 여행기에서 자주 들었던 우산을 사용한 간이화장실을 개장할 순간이 온 것 같았지만 그 위기만큼은 도저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또 팔로 X자를 표시하며 어깨춤을 추며 거절했다. 왜 그렇게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들의 몸짓이 큰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은 상대와 대화하기 위해 춤을 추고, 우리도 지금 춤을 춘다. 언어가 안 통하면 어린아이의 지혜를 사용해야 했다. B는 머리 위에 두 손의 손가락을 펼치고 고개를 까딱 까닥 움직였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순록의 표시였던 것 같다. 나중에 B는 좀 더 가는 길에 홉스골에 거주하는 챠탕족이 땅을 파고 사용하는 화장실을 빌려 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챠탕족은 홉스골에서 순록을 키우며 살아가는 유목민족이었다.

 


B는 원래 우리를 마지막날에 무릉공항으로 샌딩까지 해 주기로 했었지만, 그날 다른 일행을 데려다주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차를 타고 무릉공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떠나는 새벽 홉스골에는 비가 무척 많이 왔다. B를 만나지 못하고 헤어질 것 같았는데 우리가 숙소에서 짐을 꺼내고 있으니 어디선가 B가 나타나 가방을 들어다 차에 실어 주었다. 그리고 손을 꽉 잡고 인사를 했다. 내가 좀 더 춤을 잘 추는 사람이었다면 서로의 오른쪽 어깨가 서로의 왼쪽 어깨에 닿는 포옹을 하며 건강히 잘 지내시라고 안녕을 빌어드렸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뒤늦게 찾아온 아쉬움에 잠겨 문법도 단어도 의미를 가지기 이전 시대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지나간 것 같은 어떤 원시 사회의 풍경과 언어가 우리에게 준 것, 그리고 가져간 것, 그러나 영원히 우리에게 남을 것들에 대해서....


B가 운전하는 차 속에서 B와 함께 본 홉스골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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