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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함 Nov 30. 2023

토일록트에서 들었던 소리

8월 몽골에서 생각한 일 (4)






홉스골에서 2박 3일간 우리는 토일록트 TOILOGT 여행자 캠프에서 머물렀다. B가 토일록트, Double Lake(더블레이크)라고 말했다. 이름이니까 뭐 뜻이야 있겠거니 했는데 토일록트는 그 여행자 캠프가 지어진 지형과 딱 맞아떨어지는 이름이었다.






토일록트 캠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캠프는 홉스골 호숫가와 물을 댄 여름 논바닥 같은 곳 사이에 끼여 있었는데, 물이 찰랑거리는 그곳을 호수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홉스골과 그 작은 호수 사이를 막는 야트막한 보를 걷고 그 작은 호수에 비친 나무와 구름을 구경하는 일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B와 함께 오면서 잠깐 배웠던 몽골어에서 호수는 노르(Nor)이고 2는 호욜(Hoyor)이었는데, 이걸 어떻게 조합하면 토일록트(Toilogt)가 2개의 호수라는 단어가 되는지에 대해 순간 궁금증이 떠올랐으나, 다시 꾹 눌렀다. 지적 호기심을 해소할 여력이 없었다. 왜 그런지 물어보기 위해 몽골 사람들과 대화할 여분의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무릉에서 홉스골까지 거리는 130km 이상이었고, 거의 4시간에 가깝게 차에 타고 있어야 했다. 물론 그 후 맞이한 홉스골의 반짝거리는 풍경에 신이 나 마지막까지 버티긴 했지만, 역시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낯선 사람과 비언어적 수단만 사용하여 소통하는 건 피곤한 일이었던 것이다. 환영인사로 우리를 맞아주는 매니저와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몇 평짜리 논 같은 곳도 호수고, 홉스골도 호수라고 하는 그 넓은 마음에 내 결례를 기대 보는 수밖에 없었다.




몸 안에 담겨 있던 차의 덜컹거리는 리듬에 떠밀리듯 털썩 내렸다. 토일록트에 도착한 시간은 정오도 점심시간도 한참 지난 때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에서 알려주는 시간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태양이 머리 위에서 무더위까지 갈라버린 듯 번쩍거렸고, 온 세상의 색깔은 낯설 정도로 선명했다. 물론 그것은 여행지의 설렘 같은 것으로 설명할 일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이 세상의 색깔이라는 건 빛이 물체에 반사된 것을 감각수용기관인 눈이 감작한 만큼 느낄 뿐이니까. 우린 모두 그런 식으로 다른 색을 느끼고 산다. 그러니 전 우주적으로 봤을 때에는 작은 별 지구 이곳저곳의 차이가 별 것 아닐 수 있겠으나, 한국에서 느낄 수 있는 사물의 빛깔과 몽골에서 느낄 수 있는 사물의 빛깔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 그곳의 색깔은 그런 어중떠중한 지식으로 내가 왜 이렇게 이 빛깔을 느끼고 있는지 설명하고 싶을 정도로 이상했다. 호수가 이렇게 물빛이 푸르고 하늘은 저렇게 창공 같고 침엽수의 뾰족한 잎색은 빽빽한 초록색이며 나무는 촉촉한 적갈색이란 말인가? 여행지에서의 막연한 즐거움보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걸 알고 있다고 말해도 되는지 의심과 두려움이 들었다.



이것도 호수고



이것도 호수다



피곤함에 누워 쉬고 싶은 우리의 몸을 누일 숙소는 막막한 빛깔의 홉스골 호수를 바로 옆에 끼고 있는 곳에 위치한 천막형태의 가옥으로, 몽골어로는 오르츠라고 한다. 홉스골에 사는 유목민족인 챠탕족의 전통 가옥인데,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 천막처럼 생긴 원뿔형의 텐트다. B와 오는 길에 신세를 졌던 챠탕족 사람이 살고 있던 천막 보다야 훨씬 높았지만 크기는 좀 작았다. 아무래도 여행자를 위한 공간이다 보니 그래도 좀 개량을 하지 않았을까. 르츠 안은 깨끗하고 적당히 단단한 침대 3채, 장작을 넣어 사용하는 난로 1개, 옷가지를 걸 수 있는 작은 행거가 전부로 단출하여 홉스골 유목민인 챠탕족의 생활을 동경하던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었다. 무엇보다도 오르츠의 나무로 된 문을 열면 거칠지만 춥지 않은 공기와 진한 초록의 잔디와 동글동글한 조약돌 너머 허공에 닿은 듯 넓은 청색의 호수가 보였다.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빛에 번쩍 반짝거리는 풍경이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집



어쩐지 친숙한 이불



대충 짐을 풀고 머리만 잠깐 내려놓았다가 다시 나와 베이스캠프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여행의 여행을 일단 마무리한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계획하기. 이게 뭔 말인가 싶을 텐데, 사실 나도 들을 때 뭔 말인가 싶기는 했다.




일상은 계획으로 차있다. 하루는 그냥 하루가 아니라 월화수목금토일이다. 각 요일마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고 때때로 대략적으로 예측가능한 일들이 있다. 그런 일상 속에서 빈시간은 일과 일 사이에 있는 자투리인 것 같다. 쉬는 날, 나의 경우 말 토, 일요일인데, 그건 사실 일종의 반환점이나 일시정지 상태나 다름없다. 금요일 저녁까지의 여독을 내려놓고 다음 월요일의 업무를 생각하는 시간과 직장에 가지 않아도 살아 있다는 이유로 필요한 것과 몸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나야 결국 남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이란 뭘까. 쉬는 날이 될까? 



사람들은 그런 어중간한 연장선상의 일에서 확실히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일상의 일을 전혀 떠올릴만한 자극이 없는 조건에 부합하는 무자극적 공간과 시간으로의 강제이동을 감행하는 게 아닐까? 설마 개는 산책을 해야 하고 새는 날아가야 하듯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저 먼 남아메리카로 걸어 나갔던 호미닌의 종족적 본능을 이기지 못해서 떠나는 걸까? 일단 나로서는 여행이 유튜브 일시정지가 아닌  PC 강제종료 물리 버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여행을 위한 추가 업무를 하는 것이 싫어서 여행사에서 여행에 필수적인 대부분의 업무를 대행해 주는 패키지여행을 선호하고, 패키지여행 구매 버튼을 누르는 것 외에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살다가 막상 패키지여행을 간 후에는 돈이 아깝고 뽕(?)을 뽑고 싶은 마음에 그 장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꾸역꾸역 해 보는 편이다. 그런 패키지여행의 압축적이고 고효율적인 일정진행은 어려서부터 자린고비나 스크루지의 마음을 이해해 왔던 나에게 딱 맞았다. 그래야 카드 고지서를 받았을 때의 통증을 경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가끔 쉬는 시간이라고는 이동시간밖에 없는 패키지여행을 하면서 이게 쉬는 건가 하는 의문과 언젠가는 여행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다. 그래서 각자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 보내기라는 일을 하자는 제안에 비장한 마음으로 동의했다.




그렇게 베이스캠프에서 그 모험의 첫 발을 디뎠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프런티어, GPS 이전의 여행이 이랬을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뭔가는 해야 했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돗자리를 들고 여기저기로 쓱쓱 가서 자기 할 일을 하는 동행들에 비해 나는 정말 할 것도 할 줄도 몰랐다. 뭐 하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으니 '질문하기'와 '응답하기'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하는 건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거고, 그런 건 한심한 거라고 생각하는 내 안의 뿌리 깊은 편견을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무턱대고 더블레이크 주변을 걷자 싶어 산책로를 쭉 걸어가 보았으나, 아직 코가 적응을 하지 못한 말 냄새가 지독해 마치 보이지 않는 장막처럼 나를 가로막았다. 토일록트 여행자 캠프의 액티비티 중 하나인 승마를 위해 산책로에 말을 주르륵 묶어두었는데, 갤러리에 걸린 한 폭의 그림 같이 유목적인 풍경이었으나 청량하진 못했다. 몽골에 여행 온 것이니 태연하게 걸어가 보자 싶어 몇 발자국 더 걸어가 보았으나, 후각이 통각처럼 느껴졌다. 말들 옆에 삼사오오 누워서 함께 햇살을 즐기는 몽골인들처럼 있을 수가 없어서 결국 포기하고 슬금슬금 호숫가로 빠져 캠프로 돌아왔다.



호수는 하늘을 담고 나무는 조약돌을 닮고




그리고 호숫가의 둥글둥글한 돌을 굴려보기도 하고 차가운 물도 손끝으로 찰랑거려 보고 창백하게 마른나무등걸도 피사체 삼아 사진을 찍어 보다가 캠프에 설치된 해먹 같은 그네에 벌렁 드러누웠다. 캠프에는 몽골 어린이들도 지내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그네였다. 그래서 유아용인 건가, 누워도 되는 건가 한참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이 타고 놀다 떠나는 걸 보고 나도 누웠다.




참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키지여행이었다면 옵션 관광을 하지 않을 때 또는 쉬는 시간일 때 가이드가 이거 저거 하라고 알려줬을 텐데. 그네 타기라도 제대로 해 보자 싶어 저 멀리 몽골인들처럼 나도 다리를 꼬아 걸치고 팔베개를 했다. 홉스골의 8월은 매미 우는 소리 없이 지글거리며 몸을 데워 주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여유를 즐기는 사람을 흉내 내 보는 듯한




몇 발자국 앞에 있는 호수는 바다가 아니어서 파도치는 소리도 내지 않고 그 물결의 파고를 반짝거리기만 했다. 그나마도 눈을 감으면 사라졌다. 환한 대낮이라 다들 일 할 시간인 것 같은데, 캠프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딘가 액티비티를 하러 떠나고 저녁 먹을 시간은 멀어서 그런지 떠드는 소리도, 심지어 흔한 새소리도 그곳에는 없었다. 사실 나는 조용한 게 불안하고 긴장이 된다. 실내정숙유지준수필 같은 글씨가 그네의 흔들거림에 따라 불쑥 들어와 사람을 긴장시키다가 그네가 삐걱거리는 소리에 흩어졌다. 대신 핸드폰 알람은 다 꺼져 있고, 5분만 더, 10분만 더 같은 걸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누군가의 책장이 넘기는 소리도 내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낼 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지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 없는 조용한 소리가 홉스골에 있었다.





비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그날 밤은 비가 와서 별은 보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타는 장작과,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천막 안에서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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