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몽골 여행을 시작할 때 꼭 구해야 하는 사항이 있다. 바로 동행인이다. 여행 시몽골의 한 지역에 오래 머무는 일은 흔치 않다. 여행 일정이 아무리 길어도 몽골 대륙은 그보다 더 넓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곳만 보겠다고 다짐하고 달려도 시간이 빠듯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통 다수가 모여 차량을 대여해 몽골의 이곳에서 저곳까지 몇 시간을 달려 떠나는 로드트립(road trip)의 형태로 여행을 떠난다. 이때 1인당 부담해야 하는 차량 대여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흔히 4~6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다.
그렇게 되면, 승합차 1대에 4~6명의 여행객과 1명의 운전기사와 1명의 가이드까지 모두 함께 대략 6~8명의 사람이 하루 온종일 함께 있어야 한다. 그 부대낌과 한없이 달라붙는 서로와 서로 사이의 사적공간에 대해 생각하면, 아무리 푸르공이나 스타렉스 같은 대형 승합차라고 할지라도 비용 절감만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서 동행인을 모객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하는 여행이 몽골에서 일반적인 것은 몽골 여행이라는 게 결국 몽골인의 유목 생활 일부를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경우에 따라서 동행인을 구하지 않고 홀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떠남을 나와 다른 관점에서 함께 보아주고 겪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이 대륙의 타고난 적막 속에서 살아보는 과정과 그 과정 속의 경험에 압도되지 않는 그 모든 것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 마침내 내가 운전하는 차와 내 짐이 든 가방, 내 음식을 끓이는 것 등등에게 이름을 부여해야 한다면?
그런 식으로 혼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니 그런 가정은 생각이 아니라 상상에 가까운 것 같다. 비용 때문이 아니라도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몽골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 심지어 이 상상도 몽골에 있을 때는 해보지도 못했다.
애초에 한국사람인 내가 생각하는 '혼자 있음'의 개념과 몽골사람이 생각하는 '혼자 있음'의 개념은 같지가 않거나, 서로의 시간과 공간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중첩될 수가 없는 개념일 수도 있다.
내 시야 범위 내에서 어떤 사람도 보이지 않아서 혼자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지나가던 몽골인의 눈에 내가 보였다면? 그렇다면 나는 물론이거니와 그 몽골인도 혼자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가 홉스골 호수입니다. (사진출처: 구글지도)
아마 우리 눈에 보였을 풍경은 겨우 이정도 였을 것 같다
그런 식의 생각은 몽골에 도착하여 초원을 바라본 첫 시선으로부터 쭉 해왔고, 홉스골 호수에서도 했었다. 그리고 홉스골 호수가 몽골사람들에게는 한국의 제주도와 같은 휴양지라고 해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홉스골은 트레킹 코스로 유명했다. 이때 트레킹은 차가 아니라 자신의 발로 걸어서 홉스골 호수를 여행하는 것이다. 잠깐 걷고 마는 게 아니라 아침이 되면 걷기 시작하고, 식사 시간이 되면 길에서 간편식을 먹고, 밤이 되면 텐트를 치고 비박을 하거나 때로는 코스 내에 있는 여행자 캠프에 묵으며 몇 날 며칠을 계속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지냈던 토일록트 캠프 역시 지금은 휴양을 위한 숙박 시설로도 운영되고 있지만, 원래는 그런 트레킹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삼삼오오 자신의 상반신을 훌쩍 넘는 크기의 가방을 메고 다니는 사람들이 잠깐 보였다가, 다시 또 보이지 않다가 했다. 정말 잠깐만 머물다 떠나는 것 같았다.
타다아사나(산 자세)와 브륵샤아사나(나무자세) 사이 발라아사나(아기자세)
그렇게 떠나는 사람들을 두고 나는 호숫가에서 요가를 했다.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을 접하고 또 그중에서요가도 접할 수 있을 텐데 나 같은 경우, 그곳에 있을 때쯤에는유튜브를 통해 요가를 접해 간헐적으로 요가자세를 따라한 지 몇 년쯤 되었고 이후 욕심이 생겨 요가원에서 수련한 지는 몇 달쯤 된 수련자였다. 요가'수련'이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시기였다는 뜻이다.
그래도 한 가지 욕심을 부린 점은, 사람바 시르사아사나라는 요가자세를 몽골의 풍경 속에서 해 보는 것이었다. 그 자세는 일명 머리서기자세라고도 하는데, 양 팔의 전완부와 머리 정수리 부위를 바닥에 대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자세이다. 처음 몽골에 여행을 가기로 이야기를 나눴을 때, 몽골 어딘가에서 머리서기자세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르사아사나는 요가 수련자라면 한 번쯤 욕심을 부려볼 만한 자세인데, 어렴풋하게 목표가 이미지화되고 나니 계속 연습에 매달리게 되었다. 푸른 초원, 쪽빛의 호수 그리고 갈증의 사막에서 머리부터 반듯하게 서 있는 나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너무 멋졌다.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머리서기자세 연습을 통해 그 격언이 완벽에 이르기 전까지 연습을 하는 것은 계속되는 실패를 겪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는 걸 깨달았다. 연습이 잦을수록, 실패 경험이 더 커졌다. 연습이 완벽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실패 경험을 연습이라고 여길 수 있는 대담함이 완벽을 만드는 게 아닐까? 연습하는 내내 현대 건축기술로 만든 반듯한 평지의 방바닥과 그 위에 수직으로 세운 단단한 벽, 그리고 요가를 위해 만들어진 요가 전문 매트 위에서도 몸을 머리부터 바로 세우는 것에 계속 실패하기만 했다.
몽골에서 결국 머리서기자세를 해 볼 수 없을 것 같아 실망스러웠지만 머리를 바닥에 닿게 한 후 다리를 떼는 순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뒤에 벽이 없을 때에는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다리를 올리려 해도 앗차 하는 순간 몸이 흔들리면서 파도에 적셔진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요가원 단체 수련 시간에 방해가 될 까봐 선생님께 한번 봐 달라는 말도 해 보지 못하고 실패만 한 상태로 몽골행 비행기에 탑승했었다.
그러나 홉스골 호수에 도착한 둘째 날, 일행들에게 자신만만하게 홉스골 호숫가로 산책 가서 요가를 하자고 말했다. 더 정확히는 머리서기자세를 해 보일 테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엉뚱하게도 홉스골에서 머리서기자세에 성공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홉스골에 도착한 첫날, 즉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그날, 그네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묵직한 오르츠의 문을 열고 밤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 가져온 돗자리를 가지고 나왔다.
그네에 계속 누워있기 눈치 보였었다. 캠프에는 그곳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었다. 내가 누워서 유유자적을 즐겨본 그 그네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에 있었다. 아무리 내 돈 내고 숙박하는 거라고 하지만 애들 놀잇감을 오래 차지하고 있을 순 없었다.
돗자리를 펴고 편안히 앉아 있다 보니 너무 오랫동안 몸을 차와 비행기 같은 이동 수단에 맞춰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앉아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억나는 간단한 자세들을 이어갔다. 돗자리 너머로 느끼는 몽골의 땅(earth), 홉스골 호스 근처의 땅(earth)은 요가원 같은 실내의 판판한 바닥과 달리 아주 살짝 비탈졌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여기 이 호숫가까지 비스듬하고 천천히 몸을 내려 호수에 인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살짝 패인 부분이 있어 울룩불룩했는데, 인근 유목민들이 기르는 야크 때가 캠핑장 안에서도 풀을 뜯기 때문에 생긴 자국 같았다.
갈 수 있는 곳은 가서 식사를 하는 야크
그리고 돗자리 너머로도 살아있는 초목 특유의 촉촉한 느낌이 시원했다. 잔디는 아닌데 잔디같이 자라는 각기 다른 모양의 풀들이 어디에는 빽빽하게 또 어디에는 듬성듬성 제멋대로 자라고 있어 자세 사이사이에 누워보니 푹신푹신하기도 하고 단단하기도 한 느낌이 들었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요가 자세가 끝나고, 서서 하는 자세들을 기억나는 대로 진행했다. 그들이 살아 있기에 평평하게 펴질 수 없는 돗자리 위에서 가능한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고 내 발로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정도로만 힘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요가를 하는 동안 호숫가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도 모터보트를 타고 섬으로 투어를 다녀오는 사람들도 지나갔다.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눈을 감고 심취한 듯 나는 홀로 요가를 이어갔다. 내 옆에는 나와 같이 요가를 하는 도반도, 선생님도, 심지어 유튜브 강의도 없었다. 그뿐인가, 벽도 없었다. 하지만한국에서 반복했던 연습과 실패로 몸이 기억하는 시퀀스를 이어가다 보니 머리서기를 해 보는 차례가 왔었다.
결심을 한 건 아니었다. 자연스러웠다. 바람이 불면 길게 자란 풀 끝이 흔들리고 나뭇가지가 공중에 매달린 듯 떨리고 호수에 담긴 물이 출렁이듯 나는 두 손으로 내 팔꿈치를 잡고 머리를 놓을 자리를 가늠했다. 돗자리가 햇빛에 달궈져 따뜻했고 땅이 내 머리 정수리를 두 손으로 잡아주는 것 같았다. 깍지 낀 손과 팔의 방향으로 발이 최대한 걸어 들어오게 했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리가 살짝 들린다. 거기까지는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구를 것인가. 설 것인가.
한쪽 발이 떨어진 후 다리를 접어 복부에 붙었다. 다리가 붙어 들어오는 것이 마치 품에 다리가 안기는 것 같았다. 커다란 항아리를 안아 보는 것처럼 안정적인 기분이었다. 몇 번의 호흡 뒤 다른 쪽 다리도 내 품에 안겼다. 마침내 머리로 서 있는 사람의 첫 단계에 들어선것이었다. 환희가 솟았으나 호흡을 하며 가라앉혔다. 침착해진 후, 다리를 하늘 속으로 쭉 뻗어 보았다. 얼마간 머리서기자세를 지속한 후 다시 땅으로 돌아온 후 생각했다. 내일, 호수에 더 가까운 곳에서 머리서기를 해보자.
머리서기를 할 때 보이는 시야의 비중은 이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전날 한차례 비가 내린 덕에 구름 그림자가 끼지 않은 맑은 땅에서 승마를 즐긴 후, 다시 말과 함께 걸었던 산책로를 통해 캠프장 근처 다른 호숫가에서 놀기로 했다.
말을 타고 갔을 때에는 금방 갔었기 때문에 가까운 줄 알았는데 사람 발로 걸어가 보니 꽤 멀었다. 설렁설렁 걸어도 말은 말인가 보다. 관목이 우거진 어두운 수풀림을 지나자 홉스골 호수가 다시 반짝거리며 보이기 시작했다. 산책코스로 잘 정비된 적당한 길가에 앉아 호숫가에 발을 적시며 놀았다. 사실 가능하다면 수영도 해 보고 싶었는데, 물에 관한 칭기즈 칸의 법률 때문이 아니라도 너무 추워 발목, 더 용기를 낸다면 종아리 정도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머리서기를 할 준비를 했다.
호수가 빚어낸 떡
벗어둔 상의를 깔고 머리를 바닥에 댄 순간 내 머리는 동그랗고, 이 나무판자는 기울어져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홉스골 호숫가 산책로에서 찾은, 딱 머리서기 같은 대단한 자세를 올려두기에 좋아 보였던 나무판은, 앉아서 놀 때는 몰랐지만 머리를 대어보니 꽤 가파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사실 머리를 대 보기 전에, 무릎을 꿇고 준비를 하던 그때서야 내가 머리로 서 보려는 이곳이 푸른 호수라는 걸 막 깨달은 참이었다.
나무판자는 기울어져있고, 머리서기를 하다 삐끗하는 순간 나는 물에 빠져버리겠지. 그렇지만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이젠 머리로 서는 게 아니라, 냅다 머리를 박아버려야 할 때였다.
그렇게 머리를 박고, 다리를 올렸다. 다리가 또 올려졌다. 짜릿한 흥분과 기울어진 지면을 지탱할 요령 부족으로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뒤집어진 세계를 응시했다. 그때까지도 넘어지지 않았다. 주변 사물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눈이 감지하는 세계가 가까운 머리맡의 나무판자에서 호수와 호수의 지평선까지 멀어졌다. 몸은 계속 아슬아슬 흔들거렸다. 그러나 흔들리는 것이 뭐 대수랴, 어차피 인간은 동물(動物), 움직이는 것 아닌가? 내가 서 있는 이 작은 곳의 기울어짐은 이 호수의 평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가? 만약 이 황홀에 넋을 잃고 넘어져도 피가 나거나 멍이나 좀 들고 이 아름다운 호수에 좀 적셔지기 밖에 더 하겠는가? 나는 벽은 커녕 넘어지는 걸 제대로 의지할 바닥도 없는 곳에서 머리로부터 서 있을뿐이었다.
'요가 디피카-육체의 한계를 넘어(B.K.S. 아헹가)'라는 책에는 머리서기자세를 완전히 체득할 경우,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에서 균형과 안정을 얻게 된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완전한 자세는 목, 턱, 가슴뼈는 일직선이어야 하고 팔꿈치와 어깨도 일직선이어야 하며 골반은 앞으로 말리지 말아야 한다. 전체 체중은 머리에만 실려야 하는데, 팔뚝이나 손은 단지 균형이 흐트러지는 것을 바로잡을 정도로만 쓰여야 하며 이때 머리와 마루에 닿는 부분이 루피(인도 주화) 크기만큼 느껴진다고 한다.
일행들이 찍어준 사진을 봤을 때, 내 자세는 책에서 안된다고 하는 자세들을 표현한 사진자료 같았다. 책의 자세 설명에 따르면 나는 머리서기자세를 완전히 체득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한 것은 겨우 서 본 것뿐. 그러나 그때 내가 경험하고 나눈 균형과 평안이 있었다. 책에는 초보자가 아무것도 의지하는 바가 없이 방 한가운데서 시르사아사나를 행하는 것은 큰 자신감을 주는 것이라고 한 줄 쓰여 있다. 처음 서 본 초보자가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해 쓰자니 지면이 부족해 오직 한 줄로밖에 쓸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흥분 중의 고요는 그런 것이다. 표현하자니 과하고, 말을 하지 않자니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누구든 언제 어디에서건 나와 우리가 경험한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고 그 경험을 기억하고 어떤 방식이나 형태로 기록했을 것이며 그 기록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문화나 문명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즉 이 감정이 좋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고 나누고 싶은 연유로 이루어져 왔으니 사람은 이 기분이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야기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것은 전달되어 왔고 사람은 이를 배운다. 그러나 그런 전달은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 문화나 문명의 양식 안에서 사람으로 겪고 배웠어도 스스로 해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런 전달들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저 부추김이나 수단일 뿐이다. 나는 그 진리 앞에 항복했다. 이것이 갓 태어난 아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외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다. 아는 사람에게는 외침이 필요 없으나 외침이 필요한 사람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귀가 있어 그것을 들었고 손이 있어 문자를 쓸 수 있고 눈이 있어 문자를 읽은 사람들에게로 전달되어 전달하여 여기까지 떠나왔다.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