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탈출해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것

빈부격차

by 양독자



가난은 절대적으로 상대적이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달랐고 시대마다 모습이 변했다. 결정적으로 나의 빈곤함이 타인의 부유함에 의해 판별되었다. 철저한 상대평가였다. 모두가 1등급이 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9등급이 되어야 했다.



‘고3 첫 모의고사 등급이 곧 수능 성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정말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다. 수능까지 남은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공부해도 성적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내가 전진하는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남들도 나아가기 때문이다.



모의고사 등급만큼 올리기 어려운 것이 가난의 등급이다. ‘이 정도면 남들과 비슷해졌겠지?’라고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새 평범의 기준은 올라가 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허들은 계속 높아졌다. 집안 형편이 나아졌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이전과 같은 등급에 속해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또래 사이에서는 등산복 브랜드의 외투가 유행이었다. 그 이름하여 ‘노스페이스’. 10대 학생들이 몇 십만 원짜리 바람막이와 패딩을 입는다는 것은 신세계였다. 나이키 운동화가 세상에서 제일 비싼 줄 알았던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 열풍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등골브레이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것도 모자라 부숴버리는 수준이라는 거다. 철없고 이기적인 자식을 비하하는 저 별명을 나는 겉으로는 욕했지만 속으로는 가끔 부러워했다. 최소한 빼먹을 등골이 있는 아이들에게만 허락된 오명이었으니까.



교복보다 더 교복이 되어버린 그 옷은 유행에 둔감한 엄마의 눈에도 들어갔다. 또래 아이들이 죄다 입고 다니는 옷이 내 자식에게는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갑자기 나에게 옷을 사주겠다고 했다.

“엄마, 저게 얼만지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입어”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엄마의 지갑은 지켰지만 그녀의 마음은 지키지 못했다.





사회인이 되고 월급이라는 소중한 현금흐름이 생겼다. 이제 나이키 운동화도 노스페이스 패딩도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정도 능력과 여유를 갖는 동안 주변 동료들은 저만치 앞서있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노스페이스를 입지 않았다. 그건 학생들이나 입는 유치한 것이었다. 대신 ’몽클레어‘를 입었다.



아파트 경비일을 하는 아빠는 주민들이 쓰레기를 버릴 때 똑같은 마크가 새겨진 패딩을 입고 나온다며 신기해했다. 처음에는 어디선가 나눠준 단체복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이태리 명품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화들짝 놀랐다. 나에게도 그 단체복을 사주겠다고 말하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빠에게 나는 또 비수를 꽂았다.

“아빠, 저게 얼만지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입어”



더 나은 환경으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내가 대학을 겨우 다니는 동안 어떤 친구들은 유학을 떠났다. 내가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때, 동기들은 입사 선물로 첫 자동차를 받기도 했다. 이쯤이면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타인과의 비교가 끊임없이 찾아왔다. 영원한 가난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시작점인가? 3루타를 치는 가장 쉬운 방법은 3루에서 태어나는 것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직장, 같은 월급. 똑같이 시작해도 결국엔 달라져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들을 따라가는 게 버겁다. 이제는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 속도를 낮춰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남들을 의식하지 않는 건 어쩌면 불가능의 영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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