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마가 다정할수록 화가 나

왜 그래… 예전처럼 해

by 양독자



평일 저녁 6시. 내가 가장 분주해지는 시간. 나는 황급히 하던 일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하던 일’이란 대개 엄마에게 들키면 곤란한 행동들을 말한다. 음악방송 시청, 인터넷 서핑, 컴퓨터 게임 등. 다소 불법적인(?) 상황을 정리하고 학생의 본분을 수행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간다. 그녀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띵동-. 시험 시작 종소리보다 떨리는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나는 하던 공부를, 정확히는 공부하던 척을 멈추고 후다닥 일어난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은 엄마뿐이지만 습관적으로 현관문에 달린 작은 렌즈구멍을 확인한다. 역시나 그녀가 맞다. 꼭꼭 걸어놓은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연다. 지친 엄마가 들어온다. 오늘도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집 안으로 진입한 엄마는 매의 눈으로 스캔을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CSI 요원이다. 내가 하루 종일 뭘 먹었고 방금까지 무얼 하고 있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챈다. 운이 나쁘면 방금 언급했던 위법행동이 발각되기도 한다. 그럼 그녀는 곧장 FBI로 돌변한다. 엄마의 깊은 한숨에는 항복만이 답이다.





어느 순간부터 퇴근하는 엄마가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웠다. 오후 네 시에 오는 누군가를 떠올리면 세 시부터 행복해진다던 어린 왕자와 달리, 나는 저녁에 오는 엄마를 생각하면 초저녁부터 긴장이 극에 달했다. 오늘은 또 어떤 짜증을 낼까? 오늘 하루는 혼나지 않고 넘길 수 있을까?



‘오늘도 무사히’

이 바람뿐이었다. 확실히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지닐만한 정상적인 기대치는 아니었다. 집은 가장 안락해야 할 공간이고, 엄마는 가장 안정감을 느껴야 할 존재가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 둘의 결합이 가장 무서웠다. 날이 서있는 그녀를 혼자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어리고 약했다.



그녀를 다독여줄 유일한 존재인 아빠는 대체로 함께하지 못했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그가 남들처럼 낮에 일하는 날은 드물었기에 우리 가족의 시간은 자주 엇갈렸다. 나는 그가 낮근무를 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빠가 있으면 엄마의 짜증이 확실히 덜했다. 그는 나의 심리적 방패였다.



오늘도 무사히



어느 날은 엄마를 기다리며 편지를 썼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단지 평소보다 혼나는 것을 두려워했던 날이었다. 나는 종이와 연필을 꺼내서 그녀를 위한 글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점점 뭉툭해지는 연필심처럼 그녀의 마음도 무뎌지기를 바랐다.



편지를 받은 그날, 엄마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온화해졌다. 그녀의 마음이 한껏 누그러진 게 느껴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도 오늘만 같았으면 했다. 다음날, 그다음 날도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진심으로 시작했던 글은 어느새 짜증을 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엄마의 기분은 가세와 함께 기울어진 걸까. 내 기억이 가물가물한 시절부터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그녀의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내가 엄마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간헐적으로 나에게 주문을 걸듯이 말했다.


“너까지 힘들게 하지 마“

“너라도 잘해줘서 고마워“

“너만은 괜찮아서 다행이다”





대학교 진학. 회사 취업. 장성한 자식의 숙제를 해냈지만 집안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바퀴벌레가 출몰하는 집에 살았고, 흔한 제주도 여행 한 번을 가지 못했다. 빈곤함은 그대로인데 희한하게 엄마의 짜증수치가 확연히 낮아졌다. 다른 엄마들은 갱년기라 화가 절정에 달한다는데… 그녀의 갱년기는 끝난 듯했다.



엄마의 화는 현재의 빈곤함이 아닌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나. 한없이 다정한 그녀가 너무 낯설다. 혹시 엄마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걸까? 아니면 나이를 먹으니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걸까? 달라진 엄마의 모습에 나는 가끔씩 울화가 치민다. 오래전 나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던 그녀가 원망스럽다.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날 선 말을 내뱉는다. 그녀가 나에게 쏘아대던 것들을 그대로 돌려주려는 못된 심보가 분명하다. 철없는 자식의 샤우팅을 그녀는 용케도 참아낸다. 끝까지 받아들인다. 나는 그 모습에 더 화가 난다. 이제는 내 모습에도 짜증이 난다.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 그만 모든 기억을 털어내고 의젓한 딸이 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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