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빈티사이
나는 교복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이것만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복장이 또 있을까. 일단, 매일 입어도 핀잔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마다 ‘오늘은 뭐 입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누군가는 이것이 일제의 잔재라고 혀를 찼다. 개인의 자유를 막는 거라며 못마땅해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교복은 우리들 사이로 희미한 연막을 만들었다. 덕분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빈곤함이 단정하게 가려졌다. 언뜻 보면 모두가 비슷해 보였다.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은 친구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타인의 시야를 흐리게 하는 희끗한 연기가 나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아쉽게도 얕은 안개는 금방 걷혀버렸다. 뿌옇던 우리들의 겉모습은 점점 또렸해졌다. 같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건 아니었다. 남들보다 키가 큰 친구, 몸집이 유달리 마른 친구, 얼굴이 오밀조밀 귀여운 친구. 교복으로 가려지지 않을 만큼 각자의 특징은 두드러졌다. 가난의 생김새도 그랬다.
내 소장템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교복이었다. 그런 옷을 입었는데도 나는 안쓰러운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빈티 나는 외모를 가진 게 아닐까 의심했다. 선생님들이 유독 나에게만 짠내 나는 시선을 보내는 게 느껴졌다. 물론 자격지심으로 인한 착각일 수도 있다.
1학년때 담임선생님은 내 지갑사정을 걱정하셨다. CA활동에는 준비물 비용이 드는데 괜찮냐고 물을 정도였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내 학업을 걱정하셨다. 나를 교무실로 불러 교사용 문제집을 따로 챙겨주셨다.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내 추억을 걱정하셨다. 소풍 기념사진을 반에서 나만 구입하지 않았다며 남는 사진 1장을 몰래 건네주셨다.
나는 선생님들이 베푸는 호의가 썩 달갑지 않았다. 배려? 동정? 적선? 그들이 행동이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또 다른 폭력처럼 느껴졌다. 가정환경조사서에 적힌 내 배경 때문에 나를 다른 아이들과 차별대우 하는 것이 화가 났다. 아마 이때부터 마음이 삐뚤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저 그렇게 돈이 없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런 대우를 받을 정도로 가난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내 부모님은 이렇게 비싼 교복도 사주시고, 급식비도 밀리지 않고 제때 내주시고, 공부에 필요한 교재와 필기구는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는데. 내가 왜 이런 시선을 받아야 하는 걸까.
교복 말고는 입을만한 번듯한 사복이 없어서. 반 친구들에게 햄버거도 돌리지 못한 부반장이라서. 학원이나 과외는 엄두도 못 내는 비자발적 독학생이라서. 그래서 그런 거야? 난 그저 분수에 맞게 사느라 소박했던 것뿐인데. 그러니 내가 짠내 나는 동정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는 없어.
선생님께 받은 문제집을 교실로 가져와서 펼쳐보았다. 교사용 교재에는 정답과 해설이 모두 기재되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스스로 문제를 풀어보면서 답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학생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었다. 나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그 문제집을 펼쳐보지 않았다.
가난은 교사용 문제집 같았다. 아무리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해도 빨간 글씨로 표시된 답을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빈곤으로 낙인이 찍혀버린 나에게는 유독 빈티가 났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후회했다. 망할 가정환경조사서에 내 가난을 솔직하게 적지 말았어야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