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의 딸
아빠는 정말 이상했다. 남들이 일하는 낮에 잠을 자고, 남들이 자는 밤에 일을 했다. 대부분의 주말을 쉬지 못했고, 어떤 평일은 쉬기도 했다. 청개구리가 인간이 되면 저런 모습일까. 나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감도 잡지 못했다. 난이도 별 5개짜리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아빠의 직업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는 걸까? 자신들이 먼저 물어보는 건가? 아니면, 어릴 적부터 시작된 부모의 조기교육? 나는 둘 다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머리맡에 두고 가는 사람이 산타할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발각된 순간처럼, 그의 밥벌이를 알게 된 건 의도치 않은 사고였다.
어느 날, 혼자 집을 나서는 엄마를 몰래 뒤따라간 적이 있다. 대문 밖에는 일을 나갔던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노란 캡이 달린 택시가 서있었는데, 나는 그 택시가 아빠가 타고 온 것이 아니라 몰고 온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날,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냈다.
남들에게 말하고 싶은 고민을 일기장에 적어놓고 누군가 몰래 읽어봐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부모님도 이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그날 엄마를 미행한 건 잘못이었지만, 내가 아빠의 직업을 눈치챈 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사실은 아빠가 택시 운전을 하고 계셔”
엄마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내 표정을 살피는 그녀의 표정을 보는 게 달갑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자식에게 털어놓기도 힘이 드는 걸까. 아빠가 강도, 사기꾼, 조폭도 아닌데 말이야.
“응, 알고 있어”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대답했다. 엄마는 흠칫 놀랐다. 기대하지 못했던 담담한 반응에 그녀의 걱정은 땡볕에 놓인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 듯했다. 엄마는 기특하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나는 칭찬받을 자격이 없었다. 단지 알고 있다고 했을 뿐. 택시 운전을 하는 아빠를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진 못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에게 아빠의 직업을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잘 몰라요”라고 회피하거나, “회사 다니세요”라고 대충 둘러댔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야. 택시 회사도 회사잖아!’ 나는 또다시 자신을 합리화를 시키며 조금의 죄의식도 허락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자 이제는 대놓고 조사를 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입학 첫날부터 듣도 보도 못한 종이를 나눠주셨다. 거칠거칠한 연회색 갱지 맨 위에는 ’가정 환경 조사서‘라는 딱딱하고 무시무시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앞뒤로 그려진 빽빽한 표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자가 보유 여부, 월 소득과 재산, 부모님의 학력과 직업. 대체 학교는 왜 이런 걸 알고 싶어 하는 걸까. 좋아하는 과목, 성격과 건강상태, 장래희망과 목표를 물어야 할 자리에 온갖 험한 것들이 가득했다. 이 빈칸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누구에게는 10분이면 끝날 일이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었다.
엄마에게 이 종이를 건네줄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과장된 사실을 적을게 뻔했다. 물론 그것이 나를 위한 방식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있는 그대로 밝히고 싶었다. 가난을 가감 없이 드러냈을 때, 걱정과 다르게 세상이 따스한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번만큼은 꾸미지 않기로 했다.
다른 칸은 모두 채웠고, 마지막 한 칸만 남았다. 아버지의 직업을 적는 란이었다. 나는 ‘회사원’이라고 적은 글자를 지우고 ‘택시기사’라고 또박또박 적었다. 너덜너덜해진 갱지 위에 지우개 가루가 나뒹굴었다. 힘껏 털어도 말끔하게 털리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고 싶은 미련이 끈질기게 붙어있는 것 같았다.
분명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빈부격차는 존재한다. 그것은 사람의 귀천을 나누는 새로운 기준이 된다. 나는 첫 시험을 보기도 전에 하위권 학생이 될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맨 뒷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가정환경 조사서를 걷어오라고 하셨다. 그 친구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그냥 거짓말로 적을걸 그랬나’ 찰나의 후회가 밀려왔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오랫동안 회자되던 영화 <친구>의 명대사를 나는 무척이나 싫어한다.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상처 위에 생긴 딱지가 들춰지는 기분이다. 지난날, 택시기사였던 아빠를 숨기고 싶어 했던 내가 못나고 하찮게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다.
더는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다. 이제는 오롯이 나에 대한 물음뿐이다. 어느 학교 나왔어요? 직장은 어디예요? 연봉은 얼마예요? 부모의 직업이 나를 대변하던 시절이 끝나고, 내가 부모의 성적표가 되는 시기가 도래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끔 상상해 본다. 누군가 나에게 “아버지는 퇴직 전에 무슨 일을 하셨어요?” 라고 묻는다면, 지금의 나는 솔직하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여전히 떳떳하게 말하진 못할 것 같다. 내가 솔직했던 순간은 가정환경 조사서를 채우던 14살이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