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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추억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이름 없는 계곡

by 양독자



기나긴 여름 방학이 끝났다. 오늘은 2학기 첫 등교날. 오랜 공백으로 서먹함이 감돌던 교실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다들 잘 먹고 놀았는지, 키와 몸집은 커지고 얼굴은 그을려져 있다. 새카맣게 탄 피부는 열정적인 여름을 보냈다는 증표. 우리 세계에서는 포켓몬 카드만큼 귀한 아이템이다.



개학 첫날 ‘근황토크’는 통과의례다. 누가 누가 제일 멋진 방학을 보냈나~ 뽐내는 시간을 갖는다. 여행기를 쓰기도 하고, 기억에 남는 장면을 그리기도 한다. 자랑거리가 많은 몇몇 아이들은 즐거운 고민에 빠진 것 같다. 어떤 썰을 풀어볼까? 펜션에서 바베큐를 왕창 먹은 썰? 캠핑하다가 대왕매미를 잡은 썰? 처음 비행기 타고 여행한 썰? 소재도 참 다양하다.



나 역시 고민에 빠진다. 내가 방학에 한 거라곤, 혼자 집에서 TV 보고, 숙제하고, 먹고, 자고, 싼 것뿐인데. 바깥나들이는 동네 공원에 다녀온 게 전부.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를 적었다간 불쌍한 시선을 받을게 뻔하다. 소감문이 아닌 소설을 쓰자. 보잘것없는 솔직함보다 평범한 거짓말이 나으니까.





“경험하지 못한 거짓말은 못한다”는 어느 법의학자의 말처럼, 나는 결국 ‘추억 재탕’을 한다. 예전 기억을 끌어와 얼마 전 순간처럼 각색하는 것이다. 작년에 사촌들과 다녀온 계곡 에피소드가 적당해 보인다. 1년도 더 지난 일이라 그곳의 위치도 이름도 생각나지 않지만, 계곡물이 굉장히 차가웠다는 촉감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흐린 기억 속의 계곡을 어제 일처럼 포장해 본다.



이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다. 선생님은 분명 ‘지난’ 방학에 했던 경험을 쓰라고 하셨으니, ‘지지난’ 혹은 ‘지지 지난’ 추억을 회생시키는 건 엄연한 규칙 위반이다. 나는 가난을 숨기고 싶을 때마다 뻔뻔한 거짓말쟁이가 된다. 앞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는 틀려먹었다. 산타할아버지가 넓은 아량으로 정상 참착 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방학 때 다녀온 곳 : 계곡

덩그러니 적어놓은 ‘계곡’ 두 글자를 옆에 앉은 짝꿍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내가 봐도 수상하고 성의가 없다. 모든 산과 바다에는 이름이 있고, 하다못해 동네 개울에도 명칭이 있다. 그런데 익명의 계곡이라니. 어디에 다녀왔냐는 녀석의 끈질긴 추궁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뉴스에 나온 청문회 어록을 이렇게 써먹는다.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드라마에 나온 악역들은 자신이 악한 이유마저 남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세상은 왜 나를 나쁜 어린이로 만드는 걸까. 나는 대단한 추억을 바라지 않았다. 수영장이 있는 리조트? 비행기 타고 가는 해외여행? 기대한 적도 없다. 그저 우리 식구 다 같이 하룻밤 놀다 오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대체 만족의 기준을 어디까지 낮춰야 하는 걸까.



세상을 탓하던 나의 화살은 점점 부모를 향한다. 나를 위해 휴가를 내지 않는 아빠와 지갑을 열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럽다. 돈과 시간을 쓰는 건 애정도와 비례한다는데. 나에 대한 사랑이 고작 이 정도인가.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그들의 고백은 때때로 변명처럼 들렸다. 그냥 나에게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줄 의지가 없었던 거 아닐까?



가끔 나와 다른 가난을 겪은 이들을 마주한다.

저희 집은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가족들끼리 김밥 싸서 동네 뒷산에만 놀러 가도 즐거웠어요. 가난하다고 모두가 불행한 건 아니에요.

가난이 불행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말.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그 안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정신적 풍족함이 동반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나에게는 돈의 부족함을 이겨낼 정서적 온기가 부족했다. 밥은 굶지 않았지만 추억을 굶고 사는 인생. 이게 진짜 가난인가 싶다.





몇 해 전, 우리 가족은 아빠의 환갑을 기념하고자 제주도에 다녀왔다. 효도여행을 가장한 ‘첫 가족여행’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어딘가를 가본 적이 없었기에 (있었다한들 내 기억에서 사라질 정도로 너무 어릴 적 일이기에) 나는 어떻게 여행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나에게는 가족여행에 대한 로망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간 다녀온 길고 짧은 여행은 모두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였다. 또래가 아닌 가족과 함께하는 3박 4일이라니. 부모님이 여행 동행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극도의 어색함이 밀려들어왔다. 설렘보다 걱정과 한숨이 먼저였다.



부모님이 함께 제주도에 온 건, 신혼여행 이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들은 30년도 넘은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냈다. 그간 제주가 많이 변했다고 감탄하고, 여전히 그대로라고 감동하기도 했다. 집돌이, 집순이인 줄 알았던 그들은 누구보다 제주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바닷물보다 짠하게 느껴졌다. 또 어딘가 모르게 서운하기도 했다.





가난한 가정에는 추억이 없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건, 힘들 때마다 꺼내먹을 기억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번 여행이 그들의 남은 인생에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안주거리가 되길. 주변 친구들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내놓을 수 있는 자랑거리가 되길. 나에겐 여행보다 효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엄마, 아빠. 그거 알아?

나도 그런 기억을 어릴 적에 갖고 싶었어.

이제와 뒤늦게 채워보려 해도 쉽지가 않네.

이래서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하나 봐.

추억에도 다 때가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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