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혼돈백서 02화

왼손이 하는 일을 회사가 알게 하라

by 양독자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듣자마자 PTSD가 올 것 같다.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본 말. 저 대사는 언제 들어도 한숨이 절로 나오고 말문이 턱 하고 막힌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노래를 기억하는가? 초코파이는 1989년부터 해당 CM송으로 광고를 시작했다. 모든 건 마음의 ‘정’으로 통한다는 메시지는 초코파이를 국민과자 반열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광고주의 기획의도와 다르게 세상에는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연인은 알지 못한다.

직원이 말하지 않으면? 회사는 알지 못한다.

고로, 우리는 전해야 한다! 특히 상사에게는.




무엇을 알려야 하나?

개인적인 고민, 직원들 간의 고충, 업무적인 문제점 등 주제는 다양하다. 그중 원탑은 단연코 ‘일’이다. 회사는 일을 하려고 모인 공간이 아닌가. 진행 중이거나 완성된 과업을 상사에게 전하는 행위는 실제 업무 처리만큼이나 중요하다. 어쩌면 이 또한 일의 일부다.


관리자는 부하직원의 업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 않냐고?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리 회사만 봐도 팀장은 최소 10명 이상, 부서장은 몇 십 명의 직원을 이끌고 있다. 담임 선생님이 모든 학생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생년일시만 알려주면 미래를 술술 말해 주는 점쟁이처럼 윗사람도 내가 하는 업무를 척척 알아봐 주면 좋으련만. 신내림이 아닌 일내림을 받는 회사원들에게 그런 능력은 없다.



왜 알려야 하나?

대부분의 중요 사업은 상사가 먼저 관심을 갖는다. 윗선에서 주목하는 대형 프로젝트나 국가기관과 연계되어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일들이 그렇다. 그런데 회사가 아닌 직원이 아쉬운 순간이 있다. 팀 내에 인력 충원이 절실할 때, 업무지원비가 필요한 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은 개인적인 승진이 걸려있을 때이다.


회사에도 손흥민, 메시, 호날두 같은 직원들이 있다. 아주 저돌적인 공격수들. 이런 사람들에게는 시기와 질투보다 존경을 표하게 된다. 손흥민이 드리블을 연습하는 만큼 회사일을 처리하는 분들이다. 나는 하라고 해도 못한다. 이들은 존재 자체로 눈에 띈다. 굳이 스스로 어필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알아봐 주는 경우가 많다.

저런 공격수가 아니면 쓸모없는 선수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상대 선수를 막아내는 수비수, 키커에게 어시스트하는 미드필더도 팀에 꼭 필요하다. 골을 넣지 않아도 팀을 승리로 이끄는 주역들이다. 우리도 그렇다. 괄목할만한 실적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충분히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회사의 모든 성과가 스포츠처럼 수치화되진 않는다. 후선부서는 타 부서 지원업무를 주로 하기 때문에 정량적 평가의 기준이 모호하다. 그렇다면 정성적 평가가 가능하도록 어필해야 한다. 승리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회사는 피라미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직급이 높아질수록 자리는 줄어든다. 올라갈수록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성실하다는 평범한 세평만으로는 과, 차장의 직함을 받기가 애매해진다. 중요한 평가를 앞둔 시점에 넋 놓고 있다가는 인사 발표 명단에 내 이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알려야 하나?

이쯤에서 나 같은 극 내향형 인간은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민망하게 내 입으로 말하라고? 묵묵하게 일하면 언젠가는 알아봐 주겠지!


이 작전도 나쁘지 않다. 우직함이 강점이라면 오히려 좋다. 나의 진가를 타인이 발견해 주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홍보도 없으니까.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나를 인정해 준 상사가 중요한 순간에 곁에 없을 수 있다는 위험요소가 존재한다.


나도 간지러운 말을 할라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온다. 이 글을 적는 내가 바로 사회생활하수 중의 하수다. 있는 듯 없는 듯 소처럼 일하는 게 심적으로 편하다.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한 부서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왔다.


시간이 흘러 승진 대상자가 되었다. 하필 이 타이밍에 부임한 부서장이 전혀 일면식도 없는 분이다. 설상가상으로 타 부서에서 오래 근무하던 분이 우리 팀 팀장으로 발령이 났다. 나의 인사권자들이 나를 모른다. 내가 하는 일도 잘 모른다. 자연스럽게 나를 인식시킬 기회와 시간은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을 택해야 한다. 이때는 셀프홍보가 답이다.



어떻게 알려야 하나?

말이 자신 있다면 발표로 글이 자신 있다면 보고서로 전달하면 된다. 나는 주변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보고서로 간략히 작성했다. 방문 가능한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제 발로 부서장실을 찾아갔다. 평소의 나였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와 업무 보고를 하겠다는 직원.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윗 사람은 없다. 상사가 묻기 전에 미리 말해주는 게 보고의 기본이다. 오히려 관리자에 적합하다는 인상까지 덤으로 남길 수 있다.


감자칩보다 질소가 많은 봉지과자처럼 부풀리라는 게 아니다.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처럼 과대포장하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다이소에서 파는 천 원짜리 쇼핑백에 담아서 전달하는 최소한의 정성은 보여야 하지 않을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명언은 사회 봉사 활동에는 어울리지만 사회생활에는 적합하지 않다. 회사에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자라 오른발까지 알게 하는 게 좋다.


문득 정우성의 어록이 떠오른다. 솔직히 자기가 봐도 잘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냐는 끝없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짜릿해! 늘 새로워! 잘생긴 게 최고야!”


허구한 날 자아도취 모드라면 재수 없게 느껴지겠지만 마지못해 자신의 미모를 인정하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필요한 때에 한 번쯤은 당당하게 표현해도 괜찮다. 전혀 낯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며 살지 않았는가!



#이건 TIP인가 TMI인가

오리온은 2012년부터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카피로 초코파이 광고를 재구성했다.
역시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건 엄마뿐이다.


* 사진 출처 : 네이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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