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혼돈백서 03화

회사가 학교가 아니면 일은 어떻게 배워요

by 양독자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알려줘야 돼요? “

“모르면 물어보고 해야죠. 맘대로 하면 어떡해요”


어느 장단에 몸을 맡겨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진모리장단인 줄 알았는데 휘모리장단이고, 휘모리장단인가 했더니 중중모리장단이다. 내 사수는 지킬인가 하이드인가. 우린 어디까지 물어보고, 어디까지 스스로 해야 하나.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는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말. 그래 잘 알겠는데, 그럼 일은 어떻게 배우라는 거지? 회사생활이 처음인 사회초년생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거 하나만 기억하자. 지금 이 순간 제일 답답한 사람은 당신의 사수다.


처음 대학교에 들어가면 이전과는 확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다. 먼저 아무도 당신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교수님은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든 학사경고를 받든 별 관심이 없다. 당신에게는 해방감과 더불어 책임감이 주어진다.


회사는 이보다 더 큰 간극이 있다. 대학교에서 시간표를 직접 만들듯 회사에서는 스스로 일해야 한다. 사업의 큰 틀은 회사에서 정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담당자가 계획하고 실행하게 된다. 회사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학교가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라면 회사는 인재를 이용하는 곳이다. 이곳에 선배는 있어도 선생님은 없다. 전공책을 줄줄 읽기만 해서 강의평가 최하점도 아까운 교수조차 없다.




신입사원이 들어오기 전, 각 부서의 T.O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인력충원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일하던 직원이 퇴사, 휴직, 이동을 했을 때
둘째, 새로운 사업 착수로 일손이 필요할 때
셋째, 오래전부터 직원이 부족했을 때

어떠한 사유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력 대비 업무가 많다는 뜻이다. 고로 당신이 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부서는 선택할 수 없다. 신입사원에게 원하는 곳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T.O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 만약 본인이 원하는 곳에 배정됐다면 운이 좋게 맞아떨어졌을 확률이 크다.


처음에 배정받는 부서는 앞으로의 회사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처음 만나는 사수는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당신 맘에 쏙 드는 육각형 사수를 만날 확률은 치킨을 시켰는데 닭다리가 3개 들어있을 확률과 비슷하다.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이다.

꽉 찬 육각형 사수는 신기루 같은 존재다. 사실 오각형만 돼도 정말 훌륭한 편이다. 백번 양보해서 사각형만 돼도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 내 모든 사수가 정상인건 아니다. 당신의 사수는 생각보다 일을 못할 수도 있고, 일은 찰떡같이 하지만 설명은 개떡같이 할 수도 있으며, 아예 사수가 없을 수도 있다.




배치받은 팀의 분위기, 업무량, 사수의 바쁨 정도에 따라 일을 배우는 방식이 달라진다.

큰 부서 혹은 주요 부서의 경우 그간 인력충원이 수월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힘 있는 부서의 특권이란 그런 것이다. 이런 곳에 배치된 신규직원이라면 차근차근 일을 배우기 좋다.

잘 만들어진 업무방법서도 있을 것이다. 전임자가 자신의 업무를 넘겨줄 여유가 충분하므로 먼저 나서서 가르쳐주기도 한다. 운이 좋게 전임자가 팀에 남아있다면 모르는 내용을 묻기도 좋다. 나중에 업무 백업도 가능한 건 덤이다.


모든 직원이 이런 팀에 배정되진 않는다. 이제 막 생겨나 근본도 정신도 없는 신생팀일 수도 있고, 인원이 부족한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서 과부하가 잔뜩 쌓인 팀에 갈 확률도 낮지 않다. 이런 곳에서 만나는 사수는 99퍼센트의 확률로 바쁘다. 1인분 이상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기도 급급한 직원. 당신에게 일을 알려줄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내가 처음 배치된 부서도 일반적이고 평범한진 않았다. 당시 회사는 계열사에 위탁한 업무를 다시 내부에서 운영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부서에 내가 배정되었다. 곧바로 나의 소속은 계열사 파견직으로 바뀌었다. 엄밀히 말하면 다른 회사로 출근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나의 사수는 없었다.


내가 배워야 하는 업무는 오랜 기간 위탁업체에서 수행하던 사업이었다. 유치하게 말하면 일거리를 줬다 뺏는 모양새다. 계열사 직원들이 나를 곱게 볼 리 없었다.


어쨌든 일은 배워야 했다. 아직 수습도 못 뗀 애송이가 타 회사 직원에게 일을 배워야 하는 상황은 퍽 난감했다. 엄마 없는 아이가 젖동냥을 하듯 사수 없는 나는 스스로 나서서 일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나에게 먼저 가르침을 주지 않을 때, 내가 먼저 배우는 방법을 체득해야 했다.




열심히 일을 찾아다니자

회사에서 놀면 좋을 것 같은가? 일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큼 고문도 없다. 가시방석 같은 상황을 벗어나려면 내가 먼저 일거리를 찾아다녀야 한다.


“뭐 시키실 일 없으신가요?“

“제가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정말 바쁘면 이 마저도 외면받을 수 있다. 거절당해도 괜찮다. 상대방의 뇌구조에 미세하게나마 당신의 존재는 각인됐다. 지금은 바쁘지만 잠시 틈이 생기는 순간 당신을 찾을 것이다. 그때부터 소소한 일거리가 생긴다. 그 퀘스트를 잘 수행하면 다음 미션도 부여된다.


요즘 친구들은 누가 시키기 않으면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만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절대 그래선 안된다. 검은 정장을 입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당신.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남들이 보기엔 굉장히 튄다. 회사에는 수많은 눈들이 있다.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여유가 생기는 순간을 노리자

사람이 너무 바쁘면 일을 넘길 여유도 없다. 당장 힘들어도 내가 하는 게 빠르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해결한다. 이런 사수에게는 일 달라고 징징거려 봤자 귀찮게 여길 뿐. 오히려 역효과다. 때를 노려야 한다.


다들 바빠서 야근까지 한다면 조용히 자리를 지키자. 남들은 오후 3시처럼 일하고 있는데 6시 되자마자 ‘가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신규직원이라니. 솔직히 인사조차 하기 싫다. 안 가고 있으면 왜 남아있냐며 누군가는 분명 물어본다. 혹시나 도울 일 없을까 하고 남아있었다고 말하자.


열이면 아홉은 괜찮으니 먼저 퇴근하라고 할 것이다. 혹 업무시간에 하지 못한 인수인계를 해줄 수도 있다. 먼저 가겠다고 하는 것과 앉아있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이건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다. 꼰대스럽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당신이 함께 일해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꼰대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한 번씩만 가르쳐줘도 알려줄게 차고 넘친다. 똑같은 내용을 또 물어보는 것만큼 맥 빠지는 일도 없다. 공복에 헌혈하는 기분이다. 분명 나는 배운 적이 없는데 사수는 알려줬다고 말할 수도 있다. 미안하지만 사수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크다. 배움을 주고받는 입장을 모두 겪어보니 보통은 그렇더라.


누군가 일을 알려줄 때는 최대한 놓치지 말자. 노트를 펼치고 서기처럼 꼼꼼하게 적어보자. 말하는 중에 누군가가 받아 적고 있으면 화자는 의식하게 된다. 더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알려줄 가능성이 크다. 혹시 조직이 보수적이라면 태블릿이나 핸드폰 같은 전자기기보단 수첩과 펜을 이용하자.


설명이 너무 방대하거나 상대의 말이 빠른 편이라면 양해를 구하고 녹음을 하자. 1시간짜리 설명을 정리하는데 하루가 넘게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의 1년이 편할 것이다.



최대한 질문을 아끼자

드디어 일이 생겼다. 그런데 하다 보니 모르는 게 하나씩 튀어나온다. 분명 설명을 들을 땐 다 알 것 같았는데… 약간의 기출 변형 문제에도 완전히 당황하고 만다.


일단 바로 물어보지 말자. 영원히 묻지 말라는 게 아니다. 스스로 최대한 파악해 보자. 그래도 안되면 물어보는 게 좋다. 사수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 당신에게 업무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궁금증 넘치는 후배를 친절하게 응대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다.


모르는 게 나오면 구글링부터 해보자. 네이버 지식인태양신이 남긴 답변이라도 좋다. 특정 산업에서만 통용되는 전문적인 내용은 정보의 바다에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회사 공유폴더에 있는 유사 자료를 찾아 참고할만한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자.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모르겠으면? 이젠 물어볼 타이밍이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만났다고 뒷면의 해설지부터 펴본다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설지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도 화가 난다. 이리저리 알아보는 행동들이 비록 삽질이었다 할지라도 괜찮다. 당신의 노력을 보면 사수는 조금 더 친절하게 알려줄 수밖에 없으니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한다. 여기는 학교가 아니다 어쩐다 해도 결국 우리에게 배움을 줄 누군가는 있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사람을 무시할 조직은 없다. 당신이 배우고자 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바쁜 와중에 먼저 나서서 꿀팁을 전수할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꽃을 찾아다니는 꿀벌처럼.



#이건 TIP인가 TMI인가

지금 생각하니 나 같은 파견직에게 업무를 알려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나였으면 짜증 나서 안 알려줬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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