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혼돈백서 04화

센스 있는 직원은 이렇게 일한다

by 양독자


많은 의학드라마 가운데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을 선택하겠다. 실제 의사들이 인정할 정도로 현실 고증이 잘 된 드라마였다. 의대생보다 공부량이 많았다던 작가들의 후일담이 그저 농담은 아니었나 보다. 슬의생이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주인공들이다. 드라마에 하나쯤 있다는 발암 캐릭터가 여기에는 없다. 착한 사람들이 가득한 직장이라니. 역시 드라마는 허구다.


(왼쪽부터) 양석형, 안정원, 이익준, 채송화, 김준완


방영 당시 잡코리아에서 슬의생 관련 앙케트를 했었다. 주인공 중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는 설문이었다. 과연 1위는 누구였을까? 이익준(조정석) 캐릭터였다. 극 중에서 이익준은 실력, 인성, 유머감각을 겸비한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다. 내가 본 그는 전형적인 ‘센스형’인간이다. 일적으로 혹은 외적으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눈치가 상당하다. 이렇듯 우리는 모두 센스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




센스는 타고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유전적 성향과 자라온 환경에 따라 예민한 사람이 있고 둔한 사람이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필요한 센스는 후천적으로도 습득이 가능한 감각이다. 사적인 생일이나 가정사를 챙기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공적인 부분만 챙기면 된다. 일에 관한 센스만 갖춰도 충분하다.


‘이 친구 참 센스 있네’라는 말은 보통 상대의 취향을 저격했을 때 나오는 감탄사다. 내가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아도 챙겨주거나,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미리 준비해 줬을 때. 즉, 일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그러려면 상사의 업무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만 잘 벤치마킹해도 절반은 성공이다.




거창하게 적었지만 사실 굉장히 기본적인 부분만 생각하면 된다. 이런 것도 조언이랍시고 적었냐 하겠지만 실제로 이 정도도 하지 않는 직원들이 생각보다 많다. 슬의생에는 없었던 발암유발 캐릭터가 넘쳐난다.


회사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간단한 사례를 적어봤다. 이를 통해 어떤 감각을 발휘하면 되는지 확인해 보자.

(실제 내가 겪은 일을 각색했다)

매주 월요일은 팀 주간보고를 제출하는 날이다. 김팀장은 주말에 코로나에 걸려 출근을 하지 못하는 상황. 팀원인 박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주간보고 작성을 부탁한다.

[김팀장]
박과장! 내가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 중이에요. 오늘까지 주간보고를 제출해야 하는데 박 과장이 대신 작성해 주세요. 팀 공유 폴더에 업무별 진행상황이 담긴 자료들 있어요. 참고해서 작성하면 돼요.

[박과장]
네, 팀장님. 작성 완료되면 사진으로 보내드릴까요?

[김팀장]
네, 카톡으로 남겨주세요. 생각보다 주간보고 작성하는 게 오래 걸릴 거예요. 아침부터 시작하는데도 점심때나 끝나더라고요. 미안해요. 부탁 좀 할게요.

[박과장]
아닙니다 팀장님. 연락드리겠습니다.

여기에서도 상사에 맞춰 대응하는 약간의 센스는 필요하다. 별 것 아닌 간단한 업무인데도.



첫째, 상사의 언어를 사용하자

지금부터 박과장은 주간보고를 작성하기 위해 김팀장으로 빙의되어야 한다. 빙의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 사람의 말투다. 문서에서 문체로 드러난다. 즉, 박과장이 아닌 김팀장의 방식으로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유폴더에 보관된 지난 결과물을 살펴보면 김팀장의 문서 작성법을 알 수 있다. 상세하게 적는 편인지 요약하는 걸 선호하는지? 한문을 사용하는지 영어를 사용하는지? 사람마다 방식은 다 다르다. 누군가는 [변경 전, 변경 후]로 적는가 하면 누구는 [AS-IS, TO-BE]로 적는다. 사내에 특별히 정해진 보고서 작성 규칙이 없다면 상사의 방식이 답이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문서를 만들 때만 적용되는 법칙은 아니다. 이는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도 통용된다. 상사는 자신의 방식으로 오랫동안 일해온 사람이다. 부하직원이 자신의 언어로 보고를 해주면 더 익숙하게 느낀다. 편안함은 곧 실력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상사에게 남기는 문서는 상사의 습관에 맞추어 작성하는 게 좋다.



둘째, 상사의 시간을 참고하자

그렇다면 언제쯤 김팀장에게 완료 보고를 하는 게 좋을까? 힌트는 통화 내용에 담겨 있다. 김팀장은 평소 점심이 지나서야 문서 작성을 마쳤다고 했다. 박과장 역시 그 시간까지는 전달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김팀장에게도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더 빨리 전달하면 좋은 거 아닌가? 아니다. 상사가 반나절이나 걸렸던 일을 부하직원이 금방 끝내면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박과장은 일처리도 굉장히 빠르네!’

‘이걸 이렇게 빨리 작성했다고? 대충 한 거 아니야?’

전자보다 후자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직원의 능력을 높이 사기보다 일은 대충 한 것은 아닌지 의심부터 하게 된다. 뭐든 마감시간보다 살짝만 이르게 완료하는 게 좋다.



셋째, 상사의 입장을 생각하자

작성도 끝냈고 검토도 마쳤다. 팀장님께 전달하고 피드백만 받으면 끝이다. 이때 자신이 만든 보고서만 보내도 큰 문제는 없다. 그래도 상사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자. 다시 빙의 타임이다.


김팀장은 집에서 격리 중이라 사내 문서를 확인할 수 없다.(원격 시스템이 불가한 회사라 가정한다) 그럼 상사가 답답해하지 않게 참고할 만한 자료를 함께 첨부하는 게 좋다.

1) 전주에 김팀장이 작성한 주간보고
2) 금주에 박과장이 작성한 주간보고
3) 2번을 작성하기 위해 참고한 업무자료

상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간단하다. 만약 내가 그 사람이라면 이런 것도 궁금하지 않을까? 이런 내용도 물어보지 않을까?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상대방의 편에 서서 바라볼 수 있다. 발표나 회의도 이런 관점에서 준비한다면 난감한 질문으로 얼굴이 벌게지는 상황을 대비할 수 있다.




업무적 센스는 관찰력과 행동력만 있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주변에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로 소문난 선배들을 유심히 관찰하자. 그들이 작성한 메일 내용, 전화응대, 보고 방식을 보고 최대한 잘 따라 하자. 가장 중요한 건 직속 상사의 방식임은 틀림없다.


로마에 관한 유명한 말이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몇 개의 단어만 바꾸면 회사에서 통용되는 명언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일은 상사로 통한다”

“회사에 가면 상사의 법을 따르라”


회사에는 하나를 말하면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바글거린다.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을까 싶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둘, 셋을 알아차리는 직원은 사막의 오아시스,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다. 우리 모두 발암덩어리 말고 청량한 물 같은 동료가 되자!


#이건 TIP인가 TMI인가
혹시 상사의 방식이 개똥 같더라도 나와 함께하는 동안은 따라주자. 악법도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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