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는 7대 불가사의가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집트 피라미드가 대표작이다. 회사에도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존재한다. 제일 아이러니한 것은 일을 하러 왔는데 '일 하지 않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피라미드만큼이나 미스터리하다.
월급을 날로 먹는 '월급 루팡'이 되고 싶진 않다. 다만, 월급에 치여 사는 '월급 루저'만은 피하고 싶다. 돈도 받으면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기막힌 이유는 단 하나. 이미 업무가 너무 많다. 퇴적층처럼 쌓여가는 일거리들. 서둘러 처리하지 않으면 딱딱하게 굳어서 나를 화석으로 만들 것만 같다.
대치동 1타 강사들은 공부에도 요령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업무도 마찬가지다. 제 시간 안에 제 역할을 해내려면 일도 요령껏 해야 한다. 하기 싫어서 피우는 잔꾀와는 다르다. 내 앞에 놓인 산더미 같은 일들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한 기술이다. 체하지 않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꼽아봤다. 10년간 회사일의 민낯을 보고 지내면서 가장 크게 공감한 명언 3가지를.
감사하게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편견이 사라졌다. 특히 학벌에 대한 색안경은 던져 버린 지 오래다. 평범한 학교를 나왔지만 비범하게 일하는 사람들 덕분이면 참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그 반대다.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이름값을 못하는 일못러들(일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덕에 깨달았다. 일머리와 공부머리는 다른 영역이란 걸.
기업들이 블라인드 면접을 늘리고 있다. 보수적인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하나의 채용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회사는 더 이상 지원자의 나이, 학교, 영어점수를 묻지 않는다. 문득 궁금했다. 학벌을 보지 않고 사람을 뽑으면 출신학교가 많이 달라질까? 내가 느끼기엔 학교 수준은 이전과 비슷했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하게 바뀐 건 있다. 학벌에 속아 능력 없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려는 자세다.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던 명문대 출신 직원이 있다. 소문에 의하면 전 과목 1등급이었다는데… 왜 일처리는 9등급인 건지.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평행선을 그린다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이 와장창 부서졌다. 두 지능은 어떻게 다른 걸까? 차이점은 바로 ‘객관화의 가능 여부’다.
공부머리는 웬만큼 자기인지가 가능하다. 시험 결과가 점수로 수치화되기 때문이다. 노력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 나는 머리가 좋은 타입은 아니구나’하고 자각한다. 그 이후에는 더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아예 학업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기도 한다.
반면 일머리는 스스로 깨닫기가 쉽지 않다. 자신이 완성한 결과물에 대해 아무도 날카로운 피드백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서류를 허공으로 던지며 “이걸 보고서라고 써왔어!!”라고 소리치는 상사는 드라마에 있을 뿐.(실존한다면 매우 유감이다) 예전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상사들은 입바른 말을 듣는 것보다 꼰대 소리를 듣지 않는 길을 택한다. 혹여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라도 당할까 점점 쓴소리도 아끼는 추세다. 일머리가 없는 사람들이 성적표를 받을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공부는 잘하면서 일은 못하는 사람들이 최악이다. 기본적으로 평균 이상의 공부머리를 탑재한 인간이므로 자신에게 일머리가 없다는 가정을 하지 못한다. 자기 객관화가 이뤄지지 못하니 개선하려는 시도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모순적인 사람은 생각보다 주변을 힘들게 한다. 내 경험상 모범생형보다 괴짜형 천재들 중에 이런 유형이 종종 있었다.(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므로 이건 무시해도 좋다)
회사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경험 덕분일까. 인사 담당자만큼은 아니지만 신규 직원의 떡잎을 감별하는 능력이 생겼다. 튼튼한 잎은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리는 반면 누런 잎은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그들의 싸함은 틀린 적이 없다.
어쭙잖은 경력을 가진 나도 예상이 되는데 윗사람들은 얼마나 잘 판단하겠는가. 상사들의 눈은 궁예의 관심법만큼 예리하다. 순식간에 3종류로 인물 파악을 마친다. 쟤는 시키지 않아도 잘하는 애, 쟤는 구시렁 대지만 시키면 곧잘 하는 애, 쟤는 시키면 안 되는 애.
떡잎 색깔은 바뀔 수 있을까? 식물을 길러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미 노래진 잎은 다시 초록빛을 낼 수 없다. 그런 잎사귀는 잘라내는 게 최선이다. 사람도 다를 바 없다. 이미 성인이 된 이후 만난 사람의 빛깔은 바뀌기가 힘들다. 그냥 포기하는 게 편하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낮은 학생을 위해 나머지 수업을 해주지만 회사는 그런 게 없다. 회생보다는 회피를 택한다. 그냥 일을 안 준다. 일을 못하는 직원에게 업무를 맡기면 다시 손을 봐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과물이 제때 나오지 않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이때 발생하는 답답함은 오로지 일을 시키는 사람의 몫이다. 놀게 놔둘 순 없으니 쉬운 일을 준다. 리스크가 적고, 단순하고, 급하지 않으며, 중요도가 낮은. 모두가 ‘꿀’이라 칭하는 업무를 주로 맡게 된다.
이들의 부족함은 결국 다른 직원들이 채운다. 일감 몰아주기는 계열사 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일어난다. 마음에 드는 단골 카페만 주구장장 찾아가는 손님처럼, 상사는 일 잘하는 부하직원을 끊임없이 호출한다. 잘하면 더 어려운 걸 주고, 빨리 끝내면 금방 새 일거리를 준다. 월급도 더 주면 좋을 텐데 꼭 그렇지는 않다. 일 못하는 놈은 편한 일만 하고, 일 잘하는 놈은 힘든 일만 하게 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열정페이'를 멀리하고 '워라밸'을 가까이한다. 월급과 노동, 일과 삶의 균형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알쓸신잡>에 나온 건축가 유현준 씨가 워라밸에 대해 밝힌 소신이 인상 깊었다. 본인 명의의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그는 직원들이 워라밸을 추구하는 이유가 회사에서 배울 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경영자의 마인드에 잠시 정신이 멍했지만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아마도 그는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 많은 회사에서 자신을 갈아 넣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돈벌이를 넘어 자신의 능력치를 키우는 시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굳이 정당한 대우를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일하며 배우는 게 많은 기술, 예술 계통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적용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평범한 일반 직군 회사원들에게는 조금 다른 세계가 있다.
엑셀과 워드를 주로 접하는 사무직 사람들은 능력치를 발전시키는 것에 한계가 있다. 몇 년 하다 보면 항상 같은 일만 반복하는 쳇바퀴 속 햄스터가 된다. 이런 직장인들이 자기 몫을 챙길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돈이다.
일하는 만큼 월급이 나온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급여는 벽에 박힌 못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돈으로 보상받을 수 없다면 스스로 여유를 챙기는 방법밖에 없다. 받은 만큼 일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안정을 챙기는 게 최선이다. 회사에 나의 소중한 시간을 바치는데 건강까지 잃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일하는 법을 배웠다면,
한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일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일머리 없는 직원 때문에 계속 일이 쏟아지고,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하며 소모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을 지킬 방어책이 필요하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들을 다 처리하려고 하다간 그것들이 쓰나미가 되어 나를 덮칠 것이다. 월급값도 못하는 사람이 널린 회사에서 나 혼자 그 이상을 해내려고 애쓰긴 싫다.
핸드폰도 쉬지 않고 사용하면 뜨거워진다. 과부하는 과열로 연결되고 이는 곧 폭발을 부른다. 아이폰에는 일정 온도를 넘어가면 작동하지 않는 제어장치가 있다. 기계도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하물며 인간에게 이런 기능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폭발하기 전에 미리미리 자신을 식혀주자. 올여름은 너무 덥지 않은가. 나를 뜨겁게 달구는 건 날씨 하나로 족하다.
#이건 TIP인가 TMI인가
온도가 지나치게 낮은 경우에도 아이폰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배터리의 사용 시간이 일시적으로 단축되어 기기가 아예 꺼질 수도 있다고 한다. 회사에서 놀고먹는 것도 과부하만큼 멀리해야 하는 행동이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도 기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