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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독자 Dec 26. 2024

런던 여행 전, 꼭 봐야 하는 영화들

영화로 영국을 배우다


근데… 런던은 어떤 곳이지?


무작정 떠나겠다고 내뱉은 호언장담에 비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 없었다. 세계사와 담을 쌓은지라 영국의 역사는 잘 알지 못했고, 대중문화에 대한 조애도 깊지 않은 편이라 누구나 아는 수준에 머무를 뿐이었다. 이건 여행자로서 명백한 규칙 위반이다. 내가 지금 유명한 랜드마크나 잠깐 보자고 가는 게 아니잖아? 그러기에 런던은 너무 멀고, 비행기표는 너무 비싸고, 휴가는 너무도 소중했다.


뭐라도 공부하자! 나는 필사적이었다. 비록 런던을 향한 마음이 오래전부터 품어온 그리움은 아닐지라도, 불꽃같이 타오르는 급진적인 애정은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어릴 적 나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시시때때로 바뀌던, 일명 ‘금사빠’가 아닌가. 그 기질을 이용해 보자. 그렇게 런던의 덕후가 되기로 결심했다.


기말고사를 벼락치기로 준비하던 다년간의 노하우로 런던을 공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의도한 대로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러 작품 중 기억에 남는 핵심 영화 4편을 소개해보려 한다.






해리포터, 길지만 그만큼 긴 여운


<해리포터>가 영국 작품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런던에 오게 되면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다. 해리포터는 단순히 이 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소설이자 영화가 아니다.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해리포터의 세상임이 틀림없다. 해리포터 기념품 가게에만 들어서도 호그와트에 방문한 느낌이 들고, 런던과 옥스포드 지역에는 영화를 촬영한 익숙한 배경이 넘쳐흐르며, 해리포터 스튜디오나 뮤지컬에도 가히 진심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해리포터에 별 관심이 없었다. 동네 서점이 온통 해리포터 책으로 도배는 시기에도, 모든 아이들이 마법세계에 빠져드는 순간에도, 나는 홀로 시큰둥했다. 어릴 때부터 현실감 없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큰 감흥이 없던 탓일까.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에도 성실하게 챙겨보는 관객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세계관을 모른 채 런던에 입성하는 건, K드라마나 K-POP을 1도 모른 채 서울여행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잘 모르더라도 여행하는데 무리는 없지만, 알고 나면 ‘셀렘 한 스푼’이 추가되는 마법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나는 두근거리는 감정을 강제 주입시키기로 했다. 그 방법은? 해리포터 시리즈 정주행!


‘마법사의 돌’부터 ‘죽음의 성물 2’까지 총 8편. 영화 재생 시간만 대략 20시간이다. 거기에 비하인드 영상, 스페셜 영상, 스토리 해석 영상, NG영상, 출연배우 근황 영상까지 다 찾아봤으니. 어림잡아도 족히 30시간은 넘게 해리포터에 빠져 지낸 것이다. 역시 도둑질과 덕질은 늦게 배울수록 무섭다.


혹시 해리포터를 좋아하나요? 또 보고 가세요.

혹시 해리포터를 모르시나요? 꼭 보고 가세요!

문득문득 해리포터의 잔상을 비추는 이 도시에서, 현실을 잊게 할 마법 같은 동심이 되살아 날지도 모른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행복은 존재한단다.
불을 켜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중






패딩턴, 영국식 유머가 이렇게 재밌다니


필사적으로 영국 작품을 찾던 중 <패딩턴>이라는 코믹 영화를 발견했다. 패딩턴은 영화 주인공 이름이다. (실제로는 런던의 역 이름이다.) 갑자기 런던에 살게 된 곰(패딩턴)이 새로운 인간 가족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재 시즌2까지 개봉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시즌3를 기다린다고 한다. 고로 이 영화는 재미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영화, 심각하게 재밌잖아?

킬링타임용으로 생각했던 나를 혼내기라도 하듯 미친 듯이 내 배꼽을 간지럽혔다. 으컁컁컁-. 예상치 못한 장면들은 방심하던 내 웃음벨을 연신 울려댔다. 정신없이 혼자 자지러지는 내 모습에 현타가 올 지경이었다.


패딩턴에게도 금세 빠져버린 나란 금사빠. 어느덧 그 귀엽고, 어른스럽고, 유머러스한 곰돌이에게 마음을 뺏겨버렸다. 앉은자리에서, 아니 누운 자리에서 순식간에 <패딩턴 2>까지 연이어 관람했다. 기대 없이 동태눈으로 영화를 보던 내 눈은, 어느새 생태눈이 되어 맑게 빛나고 있었다. (해리포터 기념품은 사지 않았지만 패딩턴 기념품은 사 왔다.)


영국 사람들은 딱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단숨에 바꿔준, 이 영화. 꼭 보고 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착하게 산다면, 세상은 좋아질 거예요.

영화 <패딩턴 2> 중






노팅힐, 사랑받는 작품은 이유가 있다


들어는 봤어도 본 적은 없는 영화가 나에게는 많은데, <노팅힐>이 그중 하나다. “너무 오래전 작품이라 공감되지 않을 거야”, “진부한 로맨스는 취향에 안 맞아”,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아니야”. 여러 의심들 때문에 지금까지 ’노팅힐 안 본 눈‘으로 살아왔다.



그래도 유명한 작품인데… 노팅힐이 실제 런던 안에 있는 동네라는데… 그곳에 관광객들은 꼭 한 번씩은 가본다는데..! 해리포터 한 편보다 짧은 이 영화를 보지 않을 핑계는 남아있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할 것도 없는데 이거나 보자! 그렇게 시간 때우기 용으로 시작했던 이 영화는 3만 피트 상공에서 내 심장을 벌렁이게 만들었다.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 내가, 이 사람들이 머물던, 바로 그 런던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유명 여배우가 평범한 책방 주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요약된 내용만 보면 뻔하디 뻔한 러브스토리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단정 지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가족의 사랑도 있고, 친구와의 우정도 있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온정이 있다. 중간중간 투입되는 유머와 코믹한 전개. 무엇보다 ‘휴 그랜트’의 댄디한 미소는 내 광대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내 최애 배우가 이렇게 또 바뀌는 걸까.


휴… 그랜트 당신, 왜 내 맘을 흔드는 건데!

이 영화는 내가 런던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물임이 분명하다.



잊지 마요.
나 또한 남자 앞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자라는 걸.

영화 <노팅힐> 중






어바웃 타임, 너 내 인생영화가 돼라


분명 이 영화를 본 기억이 나는데… 내용도 얼추 기억이 나는데… 왜 감동을 느낀 기억이 없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영화로 꼽는 <어바웃 타임>을 보고 나는 어쩜 그럴 수가 있지?


메마름을 넘어서 밝힌 낙엽처럼 바스러져버린 내 감수성 때문인가. 아냐,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졸았기 때문일 거야. (변명해 보자면 당시 나는 피곤한 취준생이었다.) 영화를 다시 보면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 꺼진 인생영화도 다시 보자! 그렇게 이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바웃타임>은 시간여행 능력이 있는 팀(남자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 메리(여자주인공)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물론 그 배경은 바로 런던. 그리고 내가 이 영화를 본 장소도 바로 런던이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영화에 대한 찬양은 이쯤 하려고 한다. 왜냐면, 이건 글로 배울 영화가 아니다. 나처럼 졸지 말고 직접 보길 바란다.


인생여행지에서 보는 인생영화, 넌 감동이었어!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 중





<해리포터>의 9와 4분의 3 승강장이 있는 킹스크로스 역


<패딩턴> 인형, 안 사고는 못 베길껄?


<노팅힐> 마지막 장면 촬영지


숙소에서 봤던 <어바웃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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