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2관왕이 K-콘텐츠에게 보내는 메시지
어제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매기 강 감독은 빨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라 말했다.
"저와 닮은 분들이 주인공인 이런 영화가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이번 수상이 갖는 진짜 의미는, 다음 세대만큼은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쁘다. 이 기쁨을 조금 더 음미하기 위해, 몇 가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 봤다.
(혹시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넷플릭스가 릴리스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K팝 걸그룹 헌트릭스(HUNTR/X)가 악령 보이밴드 사자 보이즈와 맞서는 이야기다.
지난해 6월 공개 이후 전 세계 5억 회 이상 재생되며 〈오징어 게임〉을 제치고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주제곡 '골든(Golden)'은 빌보드 핫 100 1위를 기록했고,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상·주제가상, 그래미 K팝 최초 '시각매체용 최우수 노래' 수상에 이어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석권하며 오스카 2관왕을 달성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포함해, K-콘텐츠의 의미 있는 성과들은 꾸준히 쌓여 왔다. BTS,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등으로 대표되는 K팝의 글로벌 팬덤, <오징어 게임>이 증명한 한국 스토리의 흡인력, 한국의 무속과 설화와 신화가 세계인의 눈에 '힙한 것'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긴 축적의 시간. 케데헌은 그 레거시들을 치밀하게 조합하고 창작해낸 결과물이 아닐까?
기획의 출발점도 흥미롭다. 감독이 먼저 관심을 가진 건 K팝이 아니라 무속이었다. 악귀를 물리치는 데몬 헌터 캐릭터가 먼저 구상됐고, K팝은 그 이후에 더해진 요소였다. 무당이 춤과 노래로 누군가를 살려내는 것과 K팝 아이돌이 공연으로 팬덤을 결집하고 위로를 선사하는 것, 이 두 가지의 유사성을 발견한 것이 이 작품의 핵심 아이디어였다.
여기에 저승사자, 도깨비, 호랑이 같은 한국 고유의 신화적 존재들과 트와이스 멤버들의 OST 참여, 배우 이병헌과 안효섭의 목소리 연기까지 더해졌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글로벌한 것이 된 것이다.
케데헌은 미국의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미국 작품이다. 매기 강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고무적이다. 디즈니가 <모아나>에서 폴리네시아 신화를, <뮬란>에서 중국 설화를, <알라딘>에서 중동의 구전 이야기를 세계적인 콘텐츠로 만들어 온 것처럼 외부의 시선이 우리 문화의 가치를 알아보고 세계 무대에 선보였다는 것은, 그 자체로 K-콘텐츠와 그 레거시가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다만 이 대목에서 우리 자신에게 한 번은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그들이 우리 문화와 소재에 쏟은 만큼의 관심과 노력과 투자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 기울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결실이 나올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재료는 이미 우리 손안에 있다. 케데헌이 그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줬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그것을 직접 요리하는 것이다. 제2, 제3의 케데헌을 만들 수도 있고, 케데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도 있다. 그 능력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우리만 아직 모를 뿐이지.
중요한 건 그 능력을 끌어내고, 알게 해 주고, 다듬어서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다. 창작자들도, 스튜디오들도, 관련 기관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 환경을 함께 만들어갔으면 한다. 그다음은 매기 강 감독과 같은 각자의 의지에 달려 있겠지만, 의지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니까.
주제가상을 받은 이재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 K팝을 좋아한다고 놀림을 받았었는데 지금 모두가 우리 노래를 부르고 한국어 가사를 부르고 있다."
이제 세계는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것들과 이후에 선보일 것들을 주목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가 만든 우리의 스토리로, 목적이 아닌 결과로 그 무대에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