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를 보다

손바닥으로 노래를 듣는 방법

by WOWIMOLD

주말에 가족과 함께 영화 <코다(CODA)>를 봤다. 언젠간 봐야지 하고 챙겨놨다가 잊어먹었던 작품인데 가족들 덕분에 뒤늦게라도 보게 되어 다행이다.


영화 제목이자 주인공의 정체성인 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다.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한다. 루비는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병원도, 관공서도, 어부 조합 회의도 루비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타인의 목소리를 대신 내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두렵고 서툴다.


옹성우 추천 영화 '코다' | 김풍의 안 본 눈 삽니다 (출처 : @NetflixKorea)


더 이상의 작품 줄거리 및 세부 내용은 생략하고, 몇 가지 주요 관람 포인트와 감상평을 나누고자 한다.


관람 포인트


1. 캐스팅의 진정성 : 가족이 모두 농인 배우

루비의 엄마 역을 맡은 말리 매트린은 농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베테랑이다. 그녀는 아빠와 오빠 역에도 반드시 농인 배우를 캐스팅해 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아빠 프랭크 역의 농인 배우 트로이 코처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가 수화로 수상 소감을 전할 수 있도록 시상자인 윤여정 배우가 끝까지 옆에서 트로피를 들어준 장면은, 트로이의 말처럼 존중과 배려를 담은 '강력한 연결'을 의미하는 메시지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트로이 코츠어, '코다'로 남우조연상 수상 |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출처 : @Oscars)


주인공 에밀리아 존스는 9개월간 미국 수어(ASL)를 배우고, 노래 레슨을 받으며, 어선 조종법까지 익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수어 대화는 대사를 넘어 표정과 몸짓으로 전해지는 생생한 언어가 되지 않았을까?


2. 엄마의 고백 : 가장 용감한 장면

루비가 엄마에게 묻는다. "나한테 장애가 있었으면 했어?"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다 수어로 답한다. "그래. 네가 태어났을 때, 나는 네가 농인이길 빌었어. 아니면 내가 너를 너무 미안하게 대할 것 같아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아이가 혼자 있어야 한다는 두려움. 딸과 연결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 그 감정은 장애 유무와 무관하게 나를 비롯한 모든 부모가 어쩌다 한 번쯤, 실은 종종 느끼는 그것과 비슷하다.


소통이란 그저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이 아니다.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소통의 출발점이 아닐까? 엄마의 고백은 그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역설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3. 음소거 : 들리는 것보다 더 가까이 느낌

학교 합창 발표회 장면에서 영화는 고의적으로 음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농인 가족의 시점으로 전환되는 순간, 관객은 그제야 소리 없이 딸의 공연을 바라보는 가족의 눈이 된다.


다른 관객들의 표정을 살피며 딸이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그 장면은, 이 영화의 킬링 파트였던 것 같다. 만일 내가 이 작품의 의사결정권자였다면 과연 이 과감한 도전을 컨펌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coda_1.png 영화 <코다> 스틸 컷 (출처 : Rotten Tomamatoes)


4. 아빠의 손 : 가장 조용한 장면

학교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밤. 아빠 프랭크는 트럭 뒤편에 걸터앉아 루비에게 수어로 말한다. "한 번만 불러줘."


루비가 노래를 시작하자, 아빠는 조용히 손을 뻗어 루비의 목에 얹는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떨림은 느낄 수 있다. 아빠는 손바닥으로 딸의 노래를 듣는다.


아무리 절망적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가족은 반드시 연결되는 방법을 찾아낸다. 아빠가 찾아낸 방법은 손바닥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분석과 이해는 필요 없다.


5. 좋은 음악 : 끌어올린 텐션

<라라랜드>, <물랑루즈>의 음악감독 마리우스 드 브리스가 참여해 조니 미첼, 마빈 게이, 데이비드 보위 등 명곡들을 영화의 흐름에 맞게 재편곡했다. 특히 루비가 부르는 조니 미첼의 'Both Sides Now'는 영화의 감정선을 끌어올리는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Emilia Jones - Both Sides Now (Full Performance...) (출처 : @emjovideos)


그래서 소통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소통의 역사는 늘 '불가능한 연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몸짓을 쓰다가 언어를 만들고, 거리가 멀면 전보를 보내고, 전보가 느리면 전화를 하고, 전화의 한계를 인터넷으로 극복했다. 소통의 수단이 발달할 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이 영화에서는 그 사실을 수어로, 음소거로, 손바닥으로 증명한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대전환점을 맞이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을 지나, 이제는 사람과 AI가 연결되는 시대다. AI는 말을 알아듣고, 맥락을 이해하고, 때로는 상대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읽어낸다. 루비가 수어로 가족과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됐던 것처럼, 이제 인간은 언어를 이용해 의도를 담아 인간과 AI를 잇는 새로운 다리를 만들고 있다.


다만, 기술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결국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건 도구가 아니라 연결되고 싶다는 의지, 마음가짐이다. 어떤 언어로, 어떤 기술로 연결되든 그 출발점은 언제나 사람이다. 트럭 위의 아빠처럼, 그저 닿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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