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등의 MJ Nov 22. 2023

양가적 운명의 시작

사주를 믿나요?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 친구들과 새해가 가까워지면 재미 삼아 사주카페를 갔다. 

역술사가 이야기해주는 근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하 호호 수다를 떨고, 우리의 미래를 상상했다. 

그건 사주에 대한 뚜렷한 믿음이라기 보단, 그저 연중행사처럼 즐기는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대학생 때의 우리는 연애가 가장 큰 관심사였기 때문에 오락거리로 그만한 요소가 없었다.


그날도 그러했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쯤일까?

종로에 모여서 친구들과 할 일 없이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눈에 보이는 사주카페에 들어갔다.

역술가는 나의 생년월시를 듣고, 내가 갖고 있는 생년월시를 상징하는 4가지 동물 중에 서로 상반되는 성향으로 미움을 가진 동물이 있어서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 2가지 동물은 용과 돼지*였다. 

   *진해(辰亥) : 용은 돼지의 검은 얼굴을 싫어하고 돼지는 용의 여의주를 물고 있는 것을 시기한다. 


용을 사주에 갖고 있어서, 하늘을 날고 싶어 하고 욕심 많은 미물을 미워하고 이상주의적인 면모가 있고

동시에 돼지의 사주를 갖고 있어서, 땅에 코를 박고 욕심을 부리며 하늘을 쳐다보기 어려울 만큼 지독한 현실주의자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그 두 가지 마음이 자꾸 싸워서, 나는 변덕이 심하고 짜증을 잘 내고 스스로가 예민하여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했다.

예를 들어 남자를 판단할 때조차, 용의 입장에서는 장점이 되는 매력들이 돼지의 입장에서 볼 때는 단점이 되기도 하여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나의 변덕스럽고 감정적인 부분과 연애에 서툰 나의 모습을 알고 있었으니 박장대소하며 공감했다. 나 역시 나의 그런 모습들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였다. 

너무나 나를 잘 파악하는 것 같았던 역술가에 대한 믿음은, 이야기 말미에 굿을 해서 그 원진살을 풀어줘야 한다는 한마디에 무너졌다. 


개량한복을 입고 우리 사주에 들어있다는 4가지 동물을 해석해 준 역술가 아저씨의 이야기는 나뿐만 아니라 매년 함께 다니는 두 명의 친구들 성향도 잘 맞게 풀이해 주어 역술가의 말에는 힘이 실렸다. 한 친구는 사주에 뱀이 있는데 가을뱀이라 독기가 바짝 올랐다 했고, 다른 친구 하나는 사주에 소가 2마리라 아주 성실하고 우직하지만 열받으면 뿔로 받고 뚫고 나간다고 했다. 그런 설명들이 아주 쉽고 직관적으로 성격과 매칭이 되어 우리는 몇 년이 지나도 그때의 이야기들을 잊지 않는다. 스무 살 때부터 연중행사처럼 다니던 모든 사주카페들의 이야기가 다 흘러가버렸지만, 그 역술가의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끼리 만나면 회자된다. 

단순히 "올 4월에 들어오는 남자랑은 금방 헤어져요." , "올여름에는 이동수가 있으니 이사를 가든지 해외에 여행을 갈 것 같네요."처럼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들은 사주카페를 나옴과 동시에 휘발됐다. 


그 역술가가 굿을 통해서 더 많은 수익을 내려했든 아니면 정말 용한 역술가였든, 오랜 시간 그의 말이 기억에 남게 만드는 능력만큼은 정말 높이 평가해야 할 것 같다. 나도 그처럼 오랜 시간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요즘도 내가 한 가지 현상에 대하여 상반되는 마음속 다툼이 생길 때마다 내 사주에 있다는 용과 돼지를 떠올린다. 하늘 위의 용과 바닥에 붙어있는 돼지가 불온하게 마치 한 마리처럼 뒤엉켜 싸우는 이미지. 

아주 작은 선택에서부터 인생의 큰 결정까지 그 강렬한 이미지는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굿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용과 돼지) 모두를 사랑하고 안고 가야 하는 주체의 몸으로 양가적 운명, 양가적 삶을 살아가야겠다. 예민할지 몰라도 그 극단의 감정을 경험한다는 측면은 나름 내 인생의 즐거움이 되어줄 거라 생각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