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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rmovie Jan 18. 2022

두 가지 질문에 대한 거장의 품격 있는 대답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 2021)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 2022)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7년 초연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브로드웨이의 전설이 되었다. 최근 영화 <틱틱붐>을 통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기도 했던 뮤지컬계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뮤지컬은 거대한 인기를 바탕으로 1961년 영화로 제작되기에 이른다. 로버트 와이즈와 제롬 로빈슨이 공동으로 연출하고 미스터리한 죽음으로 여전히 회자되고는 하는 나탈리 우드의 빛나던 시절이 담겨있는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흥행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10개 부문의 오스카 트로피를 쓸어 담으며 대중과 평단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는 것에 성공했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그렇게 전설이 된 작품이 다시금 리메이크되었다.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의 손으로부터 말이다. 모든 장르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다고 평가받고는 하는 스필버그가 연출한 첫 번째 뮤지컬 영화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거장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는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했던 영화다. “왜 뮤지컬이어야 했는가?”, 그리고 “왜 리메이크여야 했는가?” 스필버그는 이 두 가지 질문에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답을 내놓는 것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뮤지컬은 영화와 비교해서 무대라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 반대로 영화 역시 뮤지컬과 비교하여 관객과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스크린이라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뮤지컬 장르의 영화가 보여주어야 할 핵심은 각각의 매체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한계를 무너뜨리고 두 매체를 조화롭게 결합시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브로드웨이 공연장의 뮤지컬을 무대에서 빼내와 카메라로 촬영된 프레임 안으로 집어넣어야 했던 이유를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탁월한 리듬감은 이 영화가 선사하는 뮤지컬 시퀀스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영화적 쾌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이 영화의 놀라운 뮤지컬 시퀀스는 카메라와 편집이라는 영화적 무기를 바탕으로 무대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를 완전히 붕괴시킨다. 더불어 스필버그의 놀라운 감각과 터치는 스크린 넘어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렇게 이 영화는 영화적 한계 역시 뛰어넘어 관객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렇듯 “왜 뮤지컬이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한 스필버그는 이제 두 번째 질문인 “왜 리메이크여야 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다.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61년도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큰 틀에서는 차이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몇몇 뮤지컬 시퀀스의 구성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이야기의 발단과 과정, 그리고 결말은 그대로다. 60년 전 작품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영화가 리메이크되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이러한 결론을 강하게 부정한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속 이탈리아의 두 가문 이야기를 현대의 시점으로 가지고 와 뉴욕의 백인과 히스패닉들간의 이야기로 변주한다. 다시 말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대중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중들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오랜 시간 열광해왔다. 결국 현대적인 감성의 이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신화가 되었다는 점은 이상할 것이 없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그러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에 현실적인 문제를 끌고 들어온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인 이야기로 존재한다.



이탈리아의 두 가문 사이의 갈등을 백인과 히스패닉 이주민 사이의 갈등으로 변주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미국의 오랜 인종 갈등을 기반으로 하여 이 비극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인 사랑 이야기에 지독한 현실감을 더한다. 스필버그는 60년 전 작품의 서사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던 그 쓰라린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한다. 스필버그는 그러한 점을 강조하기 위해 발렌타인(리타 모레노)이라는 원작에 없는 이 영화만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원작의 닥을 대신하는 발렌타인 역할을 맡은 리타 모레노는 원작에서 아니타를 연기했던 배우다. 1961년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출연했던 배우 중 2022년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유일하게 출연하는 리타 모레노는 이 두 작품, 다시 말해 두 시간을 연결하는 중요한 열쇠다. 1961년 작품에서 아니타를 연기하며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을 끝내 지켜주지 못했던 리타 모레노는 이번 작품에서도 토니(안셀 엘고트)와 마리아(레이첼 지글러)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이 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두 시대를 연결하는 하나의 인물, 그리고 두 번의 실패. 나탈리 우드가 연기했던 마리아의 마지막 외침은 60년의 세월을 지나 레이첼 지글러의 마리아에 의해 다시 한번 맨해튼 거리에 울려 퍼진다. 이렇게 스필버그는 시대를 관통하는 아픔이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에도 유효함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할리우드의 거장이 다시금 이 전설적인 작품을 새롭게 쓰려 했던 이유일 것이다.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여러 모로 흥미롭다. 60년에 가까운 세월을 영화감독으로 지낸 거장의 첫 뮤지컬 영화라는 점, 영화가 마주했어야 할 까다로운 질문들에 성실하게 대답하는 영화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작의 20세기 중반이라는 시대 배경을 그대로 가져오며 리메이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현실의 차가운 공기 등이 이 영화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이러한 인상적인 측면들과 이 영화가 보여주는 역동적인 뮤지컬 시퀀스들을 통해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영화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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