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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rmovie Jan 27. 2022

시네마를 증명하기 위한 코엔의 영화 실험

맥베스의 비극 (The Tragedy of Macbeth, 2021)

맥베스의 비극 (The Tragedy of Macbeth, 2021)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맥베스의 비극>은 보기 전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묘한 감정이 드는 영화다. 이 영화가 코엔 형제의 영화가 아니라 조엘 코엔의 단독 영화라는 점, 그리고 그동안 조엘 코엔이 동생 에단 코엔과 함께 코엔 형제라는 이름하에 연출했던 블랙 코미디적 성격의 영화들과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비장미 넘치는 고전 희곡 <맥베스>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등이 이 영화를 바라볼 때 기묘한 감정을 들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순간, 또 보고 난 후에도 기묘한 감정은 지속적으로 샘솟는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연극적인 분위기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 영화가 자신이 ‘영화’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듯한 영화적인 몸부림이 주는 기묘한 감정은 <맥베스의 비극>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코엔이 <맥베스의 비극>을 연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에는 우선적으로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문득 들었던 또 하나의 생각. “왜 또 맥베스 여야 했는가.” 그동안 <맥베스>는 수많은 감독들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셰익스피어 광으로 유명한 오손 웰스는 <맥베스>를 지나치지 않았고,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 스코틀랜드 왕에 관한 이야기를 일본 센고쿠 시대로 그 배경을 옮겨 <거미성의 집>이라는 영화를 연출했다. 이후에도 폴란스키, 저스틴 커젤 등의 감독들이 지속적으로 맥베스 왕이 겪었던 비극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결국 코엔에게 <맥베스의 비극>은 왜 다시금 맥베스의 이야기를 꺼내들었는지에 대해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기 전, 그리고 보고 나서도 들었던 기묘한 감정들은 코엔이 “왜 또 맥베스 여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훌륭하게 대답해냈음을 증명해낸다.





코엔의 세계와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맥베스>의 세계 사이에서 느껴지던 묘한 이질감은 두 세계가 닮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흥미롭게 다가온다. 맥베스라는 캐릭터는 코엔 세계 속에 등장하는 특유의 인물처럼 느껴진다. 코엔의 세계는 지속적으로 욕망을 탐했던 인물이 그로 인해 서서히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에 직면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큰 틀의 이야기는 결국 맥베스의 이야기와 겹쳐진다. 마녀들(캐서린 헌터)로부터 코더의 영주를 넘어서 장차 왕의 자리에 오를 것이며, 훗날 뱅쿼(버티 카벨)의 자손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되는 맥베스(덴젤 워싱턴)는 그 예언대로 코더의 영주 자리에 앉게 되자 욕망에 사로잡혀 예언을 되새기며 점차 그 예언에 집착하게 된다. 이러한 이 고전 희곡의 이야기에서 코엔은 자신의 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코엔은 수없이 재창조되었던 <맥베스>를 다시금 선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점은 <맥베스>가 희곡이라는 점일 것이다. 희곡을 영화화한 코엔은 이 영화를 마치 연극 무대처럼 보이도록 세팅한다. 우선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트다. 가구나, 카펫 같은 장식들을 탈락시키고 오직 공간만을 남겨놓는다. 지독하리만치 단순한 이 영화의 세트들은 마치 연극 무대를 떠올리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대사 역시 영화의 대사라기보다는 연극의 대사에 가깝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무대 연기에 가깝게 과장되어 있다. 이렇듯 코엔은 원작이 가지고 있는 희곡의 형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면서 관객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영화로 인지할 수 있을 만한 눈에 띄는 특징들을 의도적으로 발라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기묘한 순간은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발라내어 보여주는 이 연극적인 스타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코엔은 이렇게 의도적으로 세팅한 연극 무대에 영화적 언어를 말 그대로 끼얹는다. 코엔은 연극의 무대 같은 세트와 그곳에서 연극에 가까운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을 카메라로 담아내고 그 담아낸 영상들을 디졸브, 매치 컷 등의 편집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이어붙이고 다양한 숏을 사용하여 조립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연극’에서는 구현할 수도, 볼 수도 없는 영화적 편집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 클래식한 원작을 영화로 옮기면서 그 고전적인 느낌을 한껏 더 살려줄 4:3의 화면비와 흑백 화면이라는 성질 역시 이 영화가 관객에 닿기 전에 스크린이라는 벽을 거쳐야지만 닿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지시키는 듯하다.



특히 <맥베스의 비극>이 더욱 뻔뻔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버넘 숲이 던시네인 성으로 다가오면 맥베스의 죽음 역시 찾아올 것이라는 마녀의 예언은 말콤의 군대가 나뭇잎으로 위장하여 던시네인 성까지 접근한 것으로 실현된다. 그리고 그 순간, 연극의 무대 같은 던시네인 성은 버넘의 숲과 하나가 되어 화면에 드러난다. 성 안에 존재하는 숲. 실내에 존재하는 실외. 이 기묘한 영화가 선사하는 가장 기묘한 이 결정적 순간은 지극히도 영화적인 순간이다. 그리고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 로스(알렉스 하셀)가 왕의 운명이 예언된 뱅쿼의 아들 플리언스(루카스 바커)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순간에 수많은 까마귀가 스크린을 뒤덮는다. 연극 같은 세트와 연기를 영화적 편집으로 담아내던 <맥베스의 비극>은 그렇게 영화처럼 끝이 난다.





결국 <맥베스의 비극>은 일종의 실험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코엔 형제는 이 영화를 마치 연극처럼 보이도록 만든 후에, 그 연극적 연출을 영화 언어를 통해 재조립하면서 영화 언어의 힘을 증명하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코엔은 영화라는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그렇기에 가장 유명한 희곡 중 하나인 <맥베스>를 통해 이 증명 실험을 진행하려 한 코엔의 결심은 적절해 보인다. 희곡이라는 큰 틀 안에서 코엔은 마음껏 영화의 모든 것을 뽐낸다. 그렇게 <맥베스의 비극>을 통해서 시네마는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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