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dermovie Nov 08. 2024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Cerrar los ojos, 2023)

클로즈 유어 아이즈(Cerrar los ojos, 2023)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질 들뢰즈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본래 긍정의 의미를 담은 문장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영화를 좋아하는 이가 이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큼 낭만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지하게 언젠가 세상이 영화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거나, 또 그러기를 간절히 바랄 만큼의 낯 간지러움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빅토르 에리세 감독이 30여 년 만에 내놓은 장편인 <클로즈 유어 아이즈>를 보면서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3시간에 육박하는 만만치 않은 러닝타임의 이 영화는 오랜 장편 공백 속에서 느꼈을 에리세 감독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듯 묵직하다. 에리세 감독은 <클로즈 유어 아이즈>를 통해 삶과 영화를 이야기한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는 세 편의 영화가 존재한다. 첫 번째 영화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 그 자체다. 영화 감독이자 작가 미겔 가라이(마놀로 솔로)가 주인공이 본 영화. 그리고 두 번째 영화는 이 영화 속에서 미겔이 연출을 맡았던 영화, 그러나 미완으로 그친 영화 <작별의 눈빛>이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작별의 눈빛>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겔의 오랜 친구이자, 배우인 훌리오 아레나스(호세 코로나도)가 극 중 한 노인으로부터 자신의 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노인의 집을 떠나는 모습이 담긴 장면이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그 장면의 끝에서 내레이션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내레이션은 훌리오가 해당 영화를 촬영하던 중 실종됐음을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이후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이후 22년의 시간이 흘러 미겔이 ‘미제 사건’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훌리오의 흔적을 다시금 찾는 내용을 다룬다. 미겔은 훌리오를 찾으며 훌리오의 딸 아나(아나 토렌트), 영화 편집자이자 자신과 함께 일했던 친구 막스(마리오 파르도), 자신과 이별 후 훌리오를 만났던 옛 연인 롤라(솔레다드 비야밀) 등을 만난다. 이렇듯 <작별의 눈빛>과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교차하는 순간을 통해, 노인의 딸을 찾으러 나갔던 <작별의 눈빛> 속 훌리오는, 실제로 실종된 훌리오를 찾아 나서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 속 미겔과 겹쳐진다. 즉 영화가 영화 밖 삶과 겹쳐지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미겔은 마침내 한 양로원에서 지내는 훌리오를 발견한다.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훌리오. 하지만 이 영화는 훌리오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기억나지 않는 척을 하는 것인지, 실제로 사고를 당해 모든 기억을 잃은 것인지를 분명히 알려주지 않는다. 훌리오의 직업이 배우이기에 관객들은 더욱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배우’ 훌리오, 실제로 기억을 모두 잃은 것일지도 모를 ‘진짜’ 훌리오의 사이를 오가며 영화와 실제 삶을 다시 한번 겹쳐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부. 아마도 올해 본 최고의 결말. 미겔은 기억을 잃은(혹은 잃은 척하는) 훌리오를 위한 시사회를 개최한다. 그 자리에는 훌리오를 비롯해 아나, 막스 등이 자리한다. 미겔이 훌리오에게 보여주는 영화는 <작별의 눈빛>. 그 영화의 결말부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 속 미겔이 마침내 훌리오를 찾은 후 공개되는 <작별의 눈빛> 속 결말은 당연히도 노인의 딸을 찾아 노인의 집으로 돌아오는 훌리오의 모습으로 출발한다.


<작별의 눈빛>은 마침내 딸을 찾은 노인의 죽음으로 끝난다. 노인의 눈을 감겨준 노인의 딸과 극 중 훌리오는 카메라를 쳐다본다. <작별의 눈빛> 속 주인공의 눈빛이 향하는 곳은 스크린 너머 그곳을 바라보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 속 주인공들이다. 그렇게 두 편의 영화는, 혹은 두 편의 삶은, 혹은 한 편의 영화와 한 편의 삶은 서로를 바라보며 연결된다. 그리고 마침내 앞서 언급했던 <클로즈 유어 아이즈> 속 세 편의 영화 중 마지막 한 편이 등장한다.



눈을 감는 노인으로 끝나는 <작별의 눈빛>을 보는 훌리오. 스크린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훌리오를 바라보던 미겔은 고개를 돌려 정면의 카메라를 응시한다. 다시 말해 <클로즈 유어 아이즈> 밖의 ‘우리’를 응시한다. 그리고 뒤에 앉은 훌리오는 눈을 감는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그렇게 눈을 감는 훌리오로 끝난다. 눈을 감는 노인과 카메라를 바라보는 노인의 딸로 막을 내린 <작별의 눈빛>은 <클로즈 유어 아이즈>로 연결된다. 눈을 감는 훌리오와 카메라를 바라보는 미겔로 막을 내린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객석에 있는 관객들로 연결된다. 그렇게 세 편의 영화는, 혹은 세 편의 삶은 연결된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 영화로 연결된 관객들. 영화에 전염된 관객들은 영화가 된다. 그리고 오가는 길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삶을 연결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 눈을 감는다고 하더라도, 눈 뜬 누군가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바라볼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이, 그로부터 나오는 각자의 영화는 연결될 것이다. 그렇게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크 나이트>와 <조커: 폴리 아 되>, 그리고 변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