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리뷰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Captain America: Brave New World, 2025)
<어벤져스> 시리즈로 전성기를 누렸던 마블 스튜디오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최근 몇 년간 부침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MCU 프랜차이즈의 중요한 캐릭터 중 한 명인 캡틴 아메리카를 주인공으로 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브레이브 뉴 월드>)가 공개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볼만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이 영화가 <어벤져스: 엔드 게임>(이하 <엔드 게임>) 이후 나온 MCU 프랜차이즈 최고의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해당 프랜차이즈의 미래를 위한 견고한 주춧돌이 돼 줄 영화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2019년 개봉한 <엔드 게임> 이후 MCU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찬란히 빛났던 전성기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팬데믹으로 인해 관객들이 극장과 멀어지며 더 큰 위기를 맞았다. 물론 지난 6년 간 이 프랜차이즈에 퇴작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제임스 건 감독이 훌륭히 마무리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3>와 장르적 재미, 그리고 향수까지 모두 챙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새로운 MCU에 큰 의미가 돼 줄 수는 없었다. 둘 모두 결국 이미 막을 내린 MCU ‘인피니티 사가’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엔드 게임> 직후 개봉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으로 MCU는 토니 스타크, 스티브 로저스, 타노스 등을 중심으로 약 11년 동안 이어진 ‘인피니티 사가’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드라마로는 <완다비전>, 영화로는 <블랙 위도우>로 ‘멀티버스 사가’를 시작했다. ‘인피니티 사가’의 잔영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3>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멀티버스 사가’의 동력이 될 수 없다. ‘인피니티 사가’에 뿌리를 둔 두 영화 모두 ‘멀티버스 사가’라는 새 부대에 담길 새 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멀티버스 사가’에는 새 술이 필요했다.
‘인피니티 사가’의 MCU는 2012년 <어벤져스>를 시작으로 단숨에 프랜차이즈 덩치를 키웠다. 그리고 2014년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함께 본격적인 전성기를 열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이후 MCU 영화는 케빈 파이기의 철저한 관리 속에 준수한, 어쩌면 그 이상의 품질을 보이며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이런 탁월한 작품이 쏟아지는 과정에서 <어벤져스> 직전에 나왔던 <퍼스트 어벤져>, <토르>, <인크레더블 헐크> 등의 작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져 갔다. 위 작품 모두 MCU 전성기의 작품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영화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 영화에는 관객들이 사랑했던 MCU 속 영웅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퍼스트 어벤져>에는 스티브 로저스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퍼스트 어벤져>의 임무는 <어벤져스> 개봉 전 스티브 로저스라는 캐릭터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당 영화는 편의적인 각본과 심심한 연출의 영화였음에도 스티브 로저스라는 캐릭터를 온전히 빚어내는 데 성공하며 그 임무를 다했다. <엔드 게임> 최후의 전투 직전 부러진 팔을 방패 끈으로 동여매던 스티브 로저스의 캐릭터 성은 <퍼스트 어벤져> 속 끊임없이 군대에 지원하던 스티브 로저스의 모습으로 이미 완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 <퍼스트 어벤져>는 ‘인피니티 사가’라는 새 부대에 담긴 적절한 새 술이었다.
<브레이브 뉴 월드>는 14년 전 <퍼스트 어벤져>가 그랬던 것처럼 편의적인 각본에 심심한 연출을 보인다. 하지만 <퍼스트 어벤져>가 그랬던 것처럼 관객들에게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인 샘 윌슨(앤서니 마키)을 훌륭히 소개한다. 스티브 로저스와 달리 ‘슈퍼 솔져’가 아닌 샘 윌슨은 영화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캡틴 아메리카로 성장해 나간다. ‘포기를 모르는 영웅’ 샘 윌슨의 모습은 강력한 한 방이 없는 이 영화 속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향후 MCU가 사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밑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브레이브 뉴 월드>는 <퍼스트 어벤져>, <토르>, <인크레더블 헐크>, <아이언맨 2> 등의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어벤져스>라는 큰 이벤트를 앞두고 적절히 소모돼야 할 상황에서 알맞게 소모되며 그 역할을 다했다. 새로운 블랙 팬서를 소개해야 했던 <블랙 팬서: 와칸타 포에버>와 어벤져스의 새로운 리더와 그 동료를 소개해야 했던 <더 마블스>가 하지 못했던 것을 <브레이브 뉴 월드>는 해낸 것이다. 이제 ‘멀티버스 사가’의 MCU는 향후 영화들에서 <브레이브 뉴 월드>의 샘 윌슨을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