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트(Sirāt, 2025)
시라트(Sirāt, 2025)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시라트(Sirāt). 이슬람에서 ‘지옥을 가로지르며 이승과 낙원을 연결하는 다리’를 의미한다.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로운 다리라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올리베르 라셰 감독의 ‘시라트’는 이 가늘고 날카로운 다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주인공들을 따라가는 영화다. 제목이 가진 의미만큼이나 이 영화 또한 서슬 퍼렇다.
딸을 찾으려는 아버지 루이스(세르히 로페즈)와 그의 아들 에스테반(브루노 누녜스 아르호나), 애완견 피파. 이들이 또 다른 레이브 파티를 찾아 떠나는 히피 무리를 만나 함께 여정을 떠나는 일련의 과정이 이 영화의 첫 30분이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전개.
그러나 이후부터 영화는 다소 달라진다. 영화 시작 30분이 지나서야 보여주는 오프닝 타이틀. 지금부터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스크린의 신호. 관객들이 진짜 집중해야 하는 순간임을 의미한다.
영화 초반만 해도 루이스와 히피 무리의 여정의 목적은 중요해 보인다. 루이스는 딸을 찾아야 한다. 히피 무리는 또 다른 레이브 파티에 가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목적은 오프닝 타이틀 등장 이후 어딘지 모르게 서서히 희미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하는 이 영화의 중간 지점. 모든 것이 갑작스럽다. 갑작스러움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언덕 위에서 바퀴가 걸린 히피 무리의 밴을 구한 직후, 에스테반과 강아지 피파가 타고 있던 루이스의 차량은 속절없이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그렇게 에스테반과 강아지 피파는 이 영화에서 퇴장한다.
이때부터 루이스와 히피 무리의 목적은 아예 사라진다. 끝이 어딘지 가늠도 안 되는 사막을 달리고 달린다. 그야말로 황량한 사막.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그 공간에서 주인공 일행은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다.
이건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출발지, 목적지 개념이 사라진 주인공들을 바라보면서, 관객 역시 길을 잃는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체험의 영화. 끝이 안 보이는 괴로움을 체험해야 하는 영화.
그리고 영화는 이 순간 확실히 노선을 정한다. 에스테반의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완벽히 이목을 끈 후 삶과 죽음을 바라본다. 출발지와 목적지 개념이 사라진,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에서,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음에 집중한다.
이후 주인공들은 그야말로 랜덤하게 죽어간다. 멀찍이 떨어진 카메라가 지뢰밭에서 서성이는 인물을 담을 때면 관객들은 또 한 명의 죽음을 볼지 모른다는 괴로움에 휩싸인다. 관객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그런데 달리 방도가 없다.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를 막을 방법은 없다.
끝까지 예상을 벗어난다. 절망적인 상황 속 루이스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지뢰밭에서 걸어 나간다. 이때 루이스는 지뢰를 밟지 않는다. 그러나 루이스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간 히피 무리 중 한 명인 비기(리처드 벨라미)는 폭사한다.
마지막까지 등장인물을 무작위로 죽이는 이 영화가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비기와 달리 살아남은 루이스의 대사에서 알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었어”. 죽음은 누군가의 목적을 고려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 또한 죽음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마치 관객의 괴로움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 영화를 보는 듯하다. '시라트'는 죽음 그 자체다.
이 영화의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3차대전’의 이야기가 나올 만큼, 절망적인 세계관인 건 분명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작금의 국제정세와도 묘하게 겹친다. 그 안에서 안타깝게도 죽음은 공평하다. 삶이 아닌 죽음이 무서운 이유다. ‘시라트’가, 지금의 세상이 무서운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