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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rmovie Feb 21. 2022

예측불허의 엇나감으로 완성된 부활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

피그 (Pig, 2021)

피그 (Pig, 2021)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우던 돼지를 누군가로부터 도둑맞게 되고 그 돼지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는 남자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다면 대부분의 관객들이 상상하게 되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개를 잃은 한 남자의 복수심에서부터 영화의 서사가 시작되어 굴러가는 <존 윅>, 도둑맞은 불상을 되찾기 위해 악당들을 때려눕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옹박> 등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 <피그>의 저러한 시놉시스를 보게 되면 떠올리기 쉬운 모습일 것이다. 심지어 이 영화의 주연 배우는 니콜라스 케이지다. 어딘지 기시감이 드는 영화의 시놉시스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조합은 이 영화를 섣불리 ‘예측’하게 한다.


그러나 <피그>는 이러한 관객들의 뻔한 상상을 산산이 부숴버린다. 돼지를 훔쳐 간 이들을 향한 처절한 복수극으로 예상했던 이 영화는 시종 잔잔하고 감성적인 터치로 주인공 롭(니콜라스 케이지)을 따라간다. 물론 <피그>는 복수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롭이 겨누고 있는 복수의 칼날은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해 있다. 자신을 향한 잔잔하고 감성적인 복수극인 <피그>는 최후의 순간에 롭의 재탄생을 주목한다. 이렇게 예상을 뛰어넘는 복수극 <피그>는 주인공의 정신적 부활을 따라가는 길목마다 은유적인 이미지를 심어놓는다. 옅어진 현실적 분위기 속에서 신비감마저 감도는 롭의 이러한 여정은 신화적인 느낌을 주어 영화의 신비감을 더해준다.





<피그>가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지속적으로 살짝씩 엇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포틀랜드의 자연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 송로 버섯을 채취하는 롭과 그의 돼지. 그리고 강과 산에 둘러싸인 롭의 오두막. 문명이 완전히 거세된 <피그>의 오프닝 시퀀스는 시대 배경조차 제대로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 비(非) 문명의 오프닝 시퀀스가 주는 평화로움을 깨는 것은 아미르(알렉스 울프)의 카마로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비문명을 침범한 문명의 산물은 순간적으로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서 엇나가는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이 엇나감으로 영화의 초반부에 관객들의 시선을 다시금 단단히 영화 안으로 붙들어놓는다.


그리고 영화는 이윽고 괴한들에 의해 돼지를 잃는 롭의 모습을 보여준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다음날 정신을 차린 롭은 그 길로 바로 돼지를 찾아 나선다. 관객들은 이후의 그려질 상황들을 예상하는 동시에 기대하게 된다. 정체 모를 그 괴한들은 누구고, 왜 돼지를 훔쳐 갔을까. 이 영화의 마지막에 마침내 그들의 정체와 절도의 이유가 밝혀지리라. 그러나 영화는 거의 곧바로 그 도둑들의 정체를 공개한다. 심지어 롭은 그들에게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그저 돼지의 행방만을 묻고 단서를 얻은 그는 곧장 그곳을 빠져나간다. 이렇듯 영화는 또다시 엇나가며 처절한 복수극을 기대했던 관객들의 예측을 벗어난다. 장르적 기대감에 대한 배신을 통해 빚어내는 이런 엇나가는 모습은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자신의 노선을 분명히 인지시키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르적 쾌감을 주기 위한 복수의 길이 아닌, 한 인물의 회복을 탐구하는 여정이 <피그>가 바라보는 지점이다.



이후부터 <피그>는 롭이 차례차례 얻어 가는 단서를 통해 잃어버린 돼지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단계를 밟아가며 깨달음을 얻어 가는 롭의 과정은 마치 신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에드가(다리우스 피어스)를 찾아간 곳에서 발견하는 파이트 클럽. 과거의 자신이 업무 후 스트레스를 풀던 곳이었던 그 파이트 클럽에서 롭은 상대방에게 얻어맞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찾아가는 곳은 자신의 옛 직원이었던 핀웨이(데이빗 크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인 ‘유리디체’다. (유리디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의 부인으로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죽은 부인인 유리디체를 찾기 위해 지옥으로 여정을 떠난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원하던 것을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핀웨이를 꾸짖는다. 이는 사실상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한 꾸짖음일 것이다.


이렇듯 롭은 돼지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지속적으로 타의에 의해서든(도둑들에게 맞는 머리), 자의에 의해서든(파이트 클럽에서의 사건) 체벌을 당하고, 말로써 자신을 꾸짖기도 한다. 그리고 롭은 이 과정에서 생긴 상처들을 씻어내지 않고 계속해서 돼지를 찾아 나아간다. 상처를 씻어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회복을 위해서는 과거, 혹은 지금까지의 자신이 얻은 상처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롭은 과거에 아내를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산에 들어온 사람이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돼지는 사실상 과거에 잃었던 아내와 동일시된다. (영화에서 롭은 돼지를 지칭할 때 그녀(She)라는 표현을 지속적으로 사용한다.) 결국 <피그>에서 돼지를 찾는 롭의 여정은 아내를 찾는 여정이다. 이 영화에서 롭이 겪는 문제는 아내를 잃었다는 과거의 사실을 부정하면서 생기는 아픔과 상처다. 이러한 부분은 영화의 초반부에 아내의 목소리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끝까지 듣지 못하는(않는) 롭의 모습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결국 돼지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체벌, 꾸짖는 롭의 행동은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아파하며 과거에 얽매여있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행동인 것이다.





여정의 막바지, 자신이 과거에 일했던 식당을 찾아가는 롭. 그곳은 자신의 밑에서 일하던 제빵사가 운영하고 있으며 베이커리가 되어있다. 이 베이커리 시퀀스에서 가장 흥미롭고 인상적인 순간은 롭이 그곳을 나서면서 하는 커튼에 대한 이야기다. “커튼을 달았네.”라는 롭의 말에 제빵사는 “로리가 달고 싶어 했으니까요.”라고 대답한다. 이에 롭은 “이게 더 낫네.”라고 말하며 그곳을 떠난다. 과거에 롭은 그곳에 커튼을 달고 싶어 하는 아내의 말을 무시했을 것이다. 그리고 긴 시간을 돌아 상처 입은 과거를 마주하고 회복을 앞두고 있는 롭은 비로소 과거 속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그리고 돼지를 훔쳐 간 다리우스(아담 아킨)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롭. 다리우스는 영화에서 사실상 롭의 또 다른 모습처럼 느껴진다. 다리우스 역시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있는 상태로 사실상 아내를 잃었기 때문이다. 독단적인 성격에 자신의 구역을 벗어나지고 않고 지키려고 하는 그의 행동 역시 롭의 모습과 닮아있다. 결국 다리우스가 돼지, 즉 아내를 훔쳐 갔다는 이 영화의 설정은 아내를 잃은 롭의 과거가 롭 자신에 의한 잘못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롭이 돼지를 찾기 위해 다리우스를 설득하는 방법은 다리우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다리우스가 아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먹었었다는 롭의 음식. 그리고 자신이 했던 음식, 서빙을 했던 순간을 모두 기억한다는 롭의 고백. 이는 롭이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피그>가 아내를 잃었다는 과거를 애써 부정하면서 쌓인 상처로 고통받는 롭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이 장면은 애써 숨겨왔던 자신의 아픔을 통렬하게 고백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날의 음식과 그날의 와인을 통해 아내를 떠올린 다리우스는 롭의 그러한 고백에 응답하여 롭에게 돼지가 죽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두 남자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린다. 두 남자, 롭은 그렇게 애써 피해오던 아내의 부재를 정면에서 마주하고 감정을 쏟아낸다.





막바지에 다다른 영화. 롭과 아미르는 여정의 첫 시작점이었던 숲 아래의 식당으로 돌아온다. 이때 롭은 아미르에게 자신이 돼지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자신의 생각 속에서 그 돼지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아미르는 “그래도 그녀는 죽었죠.”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롭의 대답은 “맞아.”이다. 그렇게 롭은 애써 피해오던 아내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숲으로 돌아온 롭. 그는 숲속 강에서 여정 동안 얻은 상처를 모두 씻어 낸다. 그리고 다시금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온 롭은 마침내 외면하던 카세트테이프를 재생시킨다. 테이프 속 녹음된 아내의 목소리는 생일을 맞은 롭을 향한 축하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렇게 모든 여정의 끝에서 아내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상처를 마주하기로 결정한 롭은 생일을 맞으며 재탄생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신화적인 이야기 끝에는 이렇듯 모든 상처를 딛고 부활을 맞이한 롭이 있다. <피그>는 이렇듯 한 인물의 육체적, 정신적 여정을 따라가며 기어코 회복과 재탄생을 말하며 구두점을 찍는다. 그 누구도 과거의 상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저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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