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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rmovie Mar 23. 2022

어울리지 않는 세상을 부유해야 했던 유령에 대한 이야기

스펜서 (Spencer, 2021)

스펜서 (Spencer, 2021)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인들의 모습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 칼같이 제식을 지키며 어느 건물로 들어가는 군인들의 손에는 무기함이 들려있다. 그리고 한 주방에 그 무기함을 내려놓는 군인들. 건물로 빠져나오는 군인들의 반대편에는 요리사들이 오고 있다. 그리고 군인들이 무기함을 내려놓고 다녀간 주방 들어선 요리사들. 요리사들이 무기함을 열자 그 안에는 무기가 아닌 각종 식재료들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순간 영화는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자막을 보여준다. 영국의 윈저 왕족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는 그렇게 전혀 크리스마스답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영화는 교차 편집을 통해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보여준다. 포르쉐의 컨버터블 차를 타고 있는 그녀. 그녀는 길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연신 자신의 위치에 대한 의문을 드러낸다. 그리고 어느 허름한 가게에 들어선 그녀. 그곳의 손님과 주인들은 자신들에게 길을 묻는 왕세자비를 보고 눈이 동그래진다. 



군인, 요리사들의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와 길을 헤매는 다이애나의 모습을 교차 편집을 통해 엮어낸 <스펜서>의 오프닝 시퀀스는 두 세계 사이에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며 영화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안개 끼고 흐린 영국 특유의 날씨를 배경으로 하는 별장의 모습과 다르게 다이애나가 들어선 식당에서의 장면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쨍한 조명이 그녀와 그녀의 주변을 비춘다. 


서서히 별장에 들어서는 왕실 사람들. 찰스(잭 파딩) 왕세자와 두 아들인 윌리엄(잭 닐렌)과 해리(프레디 스프라이). 그리고 영화는 엘리자베스(스텔라 고넷) 여왕과 필립(리처드 새멀) 공이 별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이후에 뒤늦게 별장에 들어서는 다이애나의 차량을 보여준다. 이때 이 영화는 다이애나의 차를 부감으로 바라본다. 앞선 인물들이 들어갈 때 촬영된 방식과 분명하게 다른 방식으로 촬영된 이 장면은 다이애나가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요란하게 알리는 듯 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다이애나가 자신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 타이틀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스펜서>는 다이애나의 심리를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며 관객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제공한다. 그 불편한 감정과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맞물려 이 영화는 고딕 호러 영화처럼 느껴진다. 별장에서 다이애나의 주변을 맴돌며 지속적으로 그녀를 감시하는 그레고리(티모시 스폴)를 보고 있으며 히치콕의 <레베카> 속 댄버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처럼 이 영화는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를 더욱 더하는 것은 이 영화가 러닝 타임 내내 다이애나를 죽음의 개념과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애나를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는 앤 불린(에이미 맨슨)의 환영은 사실상 다이애나가 바라보고 또 두려워하는 자신의 미래이다. 또, 파티 첫날 의상에 대해서 매기(샐리 호킨스)와 다이애나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그들은 검은색 드레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매기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는 다이애나에게 장례식이 아니니 검은색 드레스는 입지 말자고 말한다. 또, 다이애나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옛집 앞에서 경찰들에게 발각되었을 때, 그녀는 경찰들에게 보고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며 헛것(Ghost)을 봤다고 생각해달라 말한다. 애초에 영화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바닥에 죽어있는 꿩은 후반부 사냥 시퀀스를 통해 그대로 다이애나와 연결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다른 세상을 부유하는 유령에 대한 영화처럼 다가온다. 유령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세상을 떠도는 존재가 아닌가. 영화 속 다이애나 역시 윈저 왕조라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세상을 떠도는 것처럼 묘사된다. 만약 <스펜서>를 다이애나의 시선이 아닌 왕실 인물들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들은 다이애나를 유령 같은 존재처럼 느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아는 존재. 그리고 애써 무시하고 싶은 존재. 이 영화는 그들로부터 소외되어 유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다이애나의 시선으로 보는 유령의 집 영화다.





<스펜서>는 이 유령 이야기를 통해 다이애나 스펜서의 비극적인 삶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대중들에게 다이애나 스펜서는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로 기억된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보내던 그녀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파파라치들을 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이 교통사고의 마지막을 발라내며 그녀의 비극적인 삶의 이유를 오롯이 결혼 생활에 집중시킨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유령처럼 그려지고 있는 다이애나는 흥미롭다. <스펜서> 속 다이애나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세상을 거닐기에 유령이 되었지만, 유령이 되었기에 죽음을 초월한다. <스펜서>는 그렇게 다이애나에게서 죽음의 비극을 발라낸다.


다이애나의 삶에서 죽음을 거세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점은 자동차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내내 다이애나의 불행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은 대부분 자동차 안에서 매기나 두 아들들처럼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할 때 나타난다. 다이애나가 자동차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자동차를 이용하는 방식은 사려 깊고 따뜻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순간. 다이애나는 두 아들들을 데리고 지옥 같은 별장을 빠져나온다. 템스 강에서 아들들과 KFC를 먹던 그녀는 강을 바라본다. 그리고 미소 짓는다. 탈출에 대한 기쁨의 미소인지, 아니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아는 허무함에 대한 미소인지 정확하게 가늠이 되지 않는 미소. (영화 내내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마지막 순간의 그 애매한 감정마저도 훌륭하게 연기해낸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전기 영화의 흔한 마무리 방법 중 하나인 자막을 통한 설명조차 없이 이 영화는 그 미소로 끝이 난다. 이러한 마무리를 통해 <스펜서>는 다이애나의 삶을 비극으로 닫지 않고 현재 진행형의 상태로 닫는다. <스펜서>의 이러한 마무리는 그 애매모호했던 다이애나의 마지막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힌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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