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 (Belfast, 2021)
벨파스트 (Belfast, 2021)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벨파스트>는 지나간 시절의 시공간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대한 영화다. 이 영화의 흑백 화면은 그러한 향수의 빛바램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벨파스트의 종교적 갈등이 극에 달해있던 1969년이다. 주인공 버디(주드 힐)는 9살 소년이다. 이제 이 영화의 감독인 케네스 브래너의 프로필을 한 번 보자. 1960년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케네스 브래너. 그는 9살 소년인 버디와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벨파스트>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벨파스트>는 이렇듯 브래너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전혀 비밀스럽지 않다.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영화에 살가움과 따뜻함을 느낄 것이다. 브래너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 모두의 자전적 이야기로 변모한다. <벨파스트>가 보여주는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애초에 브래너는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영화 속에 투영했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건축된 이 영화를 모두에 돌려주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주요 캐릭터들은 자신의 이름이 없다. 엄마(케이트리오나 발피)그리고 아빠(제이미 도넌)를 비롯하여, 할머니(주디 덴치), 할아버지(키어런 하인즈) 등의 캐릭터들은 고유명사인 이름 없이 명사로 존재한다. 버디의 형 윌(루이스 맥아스키)이나 버디의 첫사랑 캐서린(올리브 테넌트), 그리고 동네 누나인 모이라(라라 맥도넬)처럼 이름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성까지는 드러나지는 않는다. 주인공 버디의 이름마저 친구를 의미하는 단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브래너는 자신을 비롯하여 어린 시절의 향수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관객들을 친구로 두고 그들에게 영화 속 명사의 그들 각자의 그리움을 투영하도록 만든다.
<벨파스트>는 이렇게 관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따뜻한 가족 영화로 존재한다. 종교 분쟁으로 잘 알려지고 지금까지도 종교적 차이를 통한 갈등이 존재하는 벨파스트의 역사 속 가장 끔찍하고도 처절했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역시나 종교 분쟁 사건으로 영화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사건을 결정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그런 거대한 역사적 사실은 그저 영화를 둘러싼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다웠던 지난날을 추억하는 이 영화는 그 사건을 그 빛나던 시절의 기억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도구로 사용한다. 영화에서 종교 분쟁을 상징하는 캐릭터는 빌리 클랜튼(콜린 모건)이다. 그는 분쟁을 틈타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서 더욱 상황을 악화시키는 인물이다. 영화 속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이름이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성이 등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빌리는 극 중 거의 유일하게 이름과 성이 모두 등장하는 캐릭터다. 다시 말해 이 영화에서 오직 빌리만이 영화 속 캐릭터로 박제되어 있다. 브래너는 분쟁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빌리를 그러한 방식으로 과거를 추억하는 관객들과 떨어트려놓는다.
그렇게 관객들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 안내하는 길을 따라간다. 그리고 온전히 이 영화 속 브래너가 추억하는 그의 어린 시절을 바라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함께 향수에 젖어가게 된다. 영화는 종교 분쟁을 통한 사건이나 가족들 간에 피어나는 어려움을 보여준 다음에는 어김없이 버디의 가족들, 혹은 마을 사람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노는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어려운 상황을 제시한 이후 극 중 인물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벨파스트>는 모두가 함께였던 그 시절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증명하려 한다.
지난날을 추억하며 보여주는 <벨파스트>의 이러한 자세는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금은 뻔하고 작위적일지도 모르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순수함에 가장 잘 어울리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버디는 어른들에게 서로 다른 가르침을 받는다. 분쟁을 상징하는 빌리, 그리고 무섭게 아이를 다그치며 설교하는 목사 등은 버디에게 세상엔 하나의 정답, 하나의 옳은 길만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버디의 가족들은 버디에게 세상엔 여러 개의 정답이 있음을 알려준다. 영화에서 가장 큰 대립 구도를 가지고 있는 빌리와 버디의 아빠의 대사에는 그러한 이 영화의 대결구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빌리는 “우리 편 아니면 다 적이야.”라고 말하는 반면, 버디의 아빠는 버디에게 “우리 동네엔 누구 편 같은 건 없어.”라고 말한다.
이렇듯 케네스 브래너는 빌리를 위시로 한 이분법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이 세상을 망치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망치는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함을 말한다.
흑백의 <벨파스트>에서 현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을 제외하고서 컬러로 드러나는 부분은 버디가 보는 영화(연극)들뿐이다. 이것은 자전적 이야기를 하며 어린 시절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예술에 대한 브래너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흑백의 <벨파스트>는 흑백이기에 모든 관객들에게 더욱 자유롭다.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빼앗아가며 관객들이 영화에 흠뻑 젖어들도록 만드는 이 영화는 영화에 흠뻑 젖은 관객들이 자신의 향수를 이 영화에 투영하면서 자신만의 기억으로 흑백의 영화를 채색하도록 한다. 그렇기에 자유롭게 존재하는 흑백의 이 영화는 영화 속 어린 시절 브래너의 컬러 영화들처럼 컬러로 존재할 것이다. 관객들 저마다의 컬러로 말이다. 그렇게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돌려주고자 했던 지난날에 대한 향수는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