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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더슈탄트 Dec 06. 2023

[뉴질랜드] 01. 신대륙의 섬에서

 드디어 태평양을 건넜습니다. 날짜변경선도 지났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이틀이 지나 있는 경험은 이유를 알면서도 신기하더군요.


 다시 한 번 적도도 넘었습니다. 피지를 경유해 오클랜드에 도착했습니다. 뉴질랜드의 최대 도시입니다. 다시 여름의 한복판에 왔습니다.


피지 난디 공항


 어느 나라든 첫 인상은 공항이나 국경에서의 입국심사죠. 하지만 뉴질랜드의 입국심사는 아주 쉬웠습니다. 한국인은 미리 eTA를 신청해 심사를 받고, 공항에서는 자동 출입국 심사대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입국을 하고 나니, 정작 엄격한 것은 세관 심사였습니다. 저야 특별히 가져온 물건이 없었지만, 심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철저히 이루어지더군요. 농산물은 물론 스포츠 용품에 묻은 흙먼지까지 엄격하게 통제한다고 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탐지견까지 동원한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엄격한 세관 심사는, 물론 외래종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겠죠. 뉴질랜드는 섬나라니까요. 그것도 거대한 ‘구대륙‘의 생태계와는 멀리 떨어진, ‘신대륙’의 섬나라입니다.


오클랜드


 뉴질랜드는 오랜 기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섬이었습니다. 뉴질랜드에 마오리인이 처음 정착한 것도 14세기 정도로 추정합니다. 그때까지 뉴질랜드 남섬과 북섬에 사람은 거주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인이 뉴질랜드에 닿은 것은 300여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164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이 섬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죠. 1769년에는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뉴질랜드를 탐사했고, 그 이후 유럽인들의 방문이 이어집니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던 마오리인은 유럽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했습니다. 유럽의 무기와 상품들이 뉴질랜드에 다수 유입되었죠. 이미 1800년대 초반 마오리인 사이의 내전에서도 머스킷 총이 사용되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1840년 영국은 마오리인과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고, 뉴질랜드를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이 조약을 둘러싸고 마오리인과 영국인 사이 전쟁이 벌어졌지만, 결국 식민지는 설치되었죠.


 하지만 유럽식 무기로 무장한 마오리인의 강력한 저항에 영국인들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영국의 뉴질랜드 지배는 다른 ‘신대륙’ 식민지와는 그 양상이 달랐습니다.


오클랜드 미술관의 마오리 예술품


 마오리인은 처음부터 명시적으로 참정권에 제약을 받지 않았습니다. 재산 요건만 충족하면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것이 마오리인에게 불리하다는 여론이 일자, 1867년부터 식민지 의회에 마오리 지역구가 만들어져 선거권을 보장했습니다.


 물론 정복과 지배의 과정에서 영국인이 마오리인에 대한 학살과 차별을 벌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오리인은 많은 점에서 자신들의 섬을 지켜냈죠.


 지금도 뉴질랜드 인구의 15% 이상이 마오리인입니다. 다른 영국의 ‘신대륙’ 식민지에 비해 원주민의 비율은 월등히 높은 것이죠. 뉴질랜드에서는 일반적으로 영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뉴질랜드의 법적 공용어는 마오리어입니다. 영어는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일 뿐, 법적인 공용어 지위가 없죠.


성중립 화장실에 적힌 영어와 마오리어 안내


 그렇게 지킨 섬이니, 이들이 뉴질랜드라는 섬을 지키는 데 열중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외래종이 유입되어 뉴질랜드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데에 민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뉴질랜드의 생태계는 많은 점에서 ‘구대륙’과는 달랐다고 합니다. 멀리 떨어진 섬나라였고, 사람이 거주한 것도 채 겨우 700여 년 정도 전이었으니까요. 뉴질랜드의 생태계는 다른 지역과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뉴질랜드에는 포유류도 거의 자생하지 않았고, 호주에 있는 유대류도 대부분 살지 않았죠. 그 대신 뉴질랜드에는 다양한 육상 조류가 번성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는 키위새를 비롯해, 이미 멸종한 모아 등 다양한 조류가 뉴질랜드에서 진화했죠.


 지금 뉴질랜드에 있는 다양한 포유류들은 모두 인간이 뉴질랜드에 넘어오며 함께 유입된 것들입니다. 그 때문에 뉴질랜드의 생태계도 많은 파괴를 겪었죠. 마오리인이 들어오면서 모아는 멸종했고, 유럽인의 도래와 함께 더 많은 뉴질랜드 토착 생물들이 멸종했습니다.


 그러니 외래종의 유입 차단과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뉴질랜드의 모습도 썩 어색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클랜드의 공원


 이제는 유럽계 백인이 인구 70%를 차지하는 나라이지만, 여전히 ‘신대륙’의 섬나라라는 것이 공항의 검역뿐 아니라 뉴질랜드의 많은 부분을 정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영국과도, 호주와도 다른 뉴질랜드만의 정체성이 아닐까 합니다.


 뉴질랜드는 영국에서 단계적으로 독립했습니다. 1907년에는 자치령이 되었고, 1947년에야 독자적인 외교권과 군사권을 갖게 되었죠. 1986년에는 헌법을 영국의 허가 없이 고칠 수 있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2004년에야 독립적인 대법원을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뉴질랜드의 국왕은 영국의 찰스 3세죠.


 그러니 뉴질랜드에 여전히 영국의 영향력은 짙습니다. 인접한 대국인 호주의 영향력도 크죠. 호주는 헌법상 뉴질랜드를 자국 영토로 규정해 두었을 정도입니다.


오클랜드의 바다


 하지만 뉴질랜드는 그 사이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선택했습니다. 신대륙의 섬나라라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선택했습니다. 새로운 땅에 만들어진 새로운 나라라는 정체성을 말이죠.


 그리고 그런 ‘새로운 나라’라는 정체성 덕분에 갈 수 있었던 길도 있었을 것입니다.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나라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니까요.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나라가 뉴질랜드였습니다. 현재도 낮은 부패지수와 높은 복지 수준을 가진 나라가 되어 있죠.


 그들은 그런 섬나라를 만들어 왔습니다. 다른 곳과 분리되어 서로를 배척하던 역사를 뒤로하고, 이 섬을 지키며 함께 앞으로 갈 수 있는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인구 5백만의 작은 섬나라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나가는 이 섬에, 우리 세계 전체는 많은 것을 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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