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에서 호주까지는 의외로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가깝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문화적, 정서적 거리가 가까울 수는 있겠지만, 물리적으로 두 나라는 생각보다 멀리 있었습니다. 세 시간 반의 긴 비행 끝에 호주 대륙의 서안, 시드니에 도착했습니다.
긴 거리를 비행해 와서일까요, 제게는 예상외로 뉴질랜드와 호주의 차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오클랜드와 시드니는 도시의 규모부터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시드니는 더 북적이는 대도시 같았다고 할까요.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을 뿐, 호주와 뉴질랜드는 많은 점에서 다른 나라죠. 무엇보다 뉴질랜드는 268,000㎢의 상대적으로 작은 섬나라입니다. 하지만 호주는 거대한 대륙 국가죠.
호주의 면적은 760만㎢를 넘습니다. 남한의 70배를 훌쩍 넘는 거대한 땅이죠.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나라입니다.
흔히 그린란드(216만㎢)보다 작은 땅은 섬, 큰 땅은 대륙으로 구분합니다. 그러니 호주는 섬이 아니라 대륙이죠. 나라 하나가 대륙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주가 거대한 대륙 국가라는 사실. 지도만 보면 알 수 있는 너무도 단순한 사실이지만, 저는 이것이 호주의 많은 부분을 정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망망대해에 있다시피 한 뉴질랜드와 달리, 호주 대륙의 북단은 뉴기니 섬과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둘 사이의 거리는 200km도 되지 않죠. 덕분에 호주에는 수만 년 전부터 인류가 이주해 거주했습니다. 폴리네시아 지역과의 교류도 활발했죠.
유럽인이 처음 호주에 도착한 것은 1606년이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호주 대륙을 탐사한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 본격적인 이주가 이루어진 것은 1788년이었죠. 영국이 죄수들을 호주 대륙에 이주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원래 영국은 죄수들의 유배지로 아메리카 식민지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1776년 미국은 독립을 선언했죠. 이제 죄수를 보낼 다른 땅이 필요했습니다. 영국은 그제야 호주 대륙으로 눈길을 돌린 것입니다.
700여 명의 죄수와 관리들을 태운 배는 1788년 1월 26일 호주 대륙에 정박했습니다. 이들이 닿은 항구가 지금의 시드니 항구였습니다. 그러니 시드니는 유럽인이 호주에 세운 최초의 도시였던 셈이죠. 이들이 도착한 1월 26일은 지금까지도 ‘호주의 날’이라는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후 호주는 단계적으로 독립국가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오세아니아 지역의 경우, 아메리카 식민지보다는 독립이 늦은 편이었죠.
영국의 식민지였던 호주 대륙에 처음으로 자치령이 설치된 것이 1901년입니다. 호주 자치령은 독자적인 헌법을 갖고 있었지만, 여전히 외교권과 군사권은 영국이 갖고 있었습니다. 호주는 뉴질랜드와 함께 연합 군단(ANZAC)을 만들었지만, 그 지휘권은 영국군에 있었죠. 법률 개정도 영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후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호주의 입지는 커집니다. 사실 꼭 호주뿐만은 아닙니다. 전쟁 과정에서 큰 희생을 치렀던 영국 식민지 모두가 영국에게 더 큰 권한을 요구했죠.
1차대전 이후 호주는 군사권과 외교권을 갖게 됩니다. 2차대전 이후에는 호주인의 독자적인 정체성도 커지게 되죠. 결국 1986년 영국 의회에서 ‘호주 법’이 제정되면서, 호주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헌법 개정에도 영국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죠.
하지만 독립을 쟁취해 나가던 두 세기가, 누군가에게는 탄압과 핍박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 거대한 대륙에는 그만큼이나 큰 상처가 남았습니다.
유럽인의 호주 정착은 원주민에 대한 학살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영국은 주인 없는 땅을 차지했다는 명분을 위해 원주민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인의 정착 이후 19세기까지 알려진 것만 150건 이상의 원주민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호주 원주민은 1967년에야 처음으로 투표권을 부여받았습니다. 호주 정부는 오랜 기간 원주민의 자녀를 백인에게 강제 입양시키고, 원주민 문화를 말살시키려 했죠. 호주 정부는 2007년에야 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호주 대륙의 생태계도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호주 대륙에 자생하지 않는 생물들이 들어와 확산되었죠. 토끼와 낙타의 번식은 생태계를 크게 위협할 정도여서, 한때 호주 정부는 동물 전염병을 일부러 확산시키거나 정책적으로 동물을 사살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토착 생물군의 멸종도 이어졌죠.
‘백인의 나라’ 호주를 지키겠다며 인종차별 정책도 실시했죠. 소위 ‘백호주의’ 정책입니다. 호주는 1973년까지 유색인종의 이민을 법적으로 제한했습니다. 호주가 자치령으로 승격된 뒤 처음으로 통과시킨 법률 중 하나가 바로 백호주의를 담은 이민 제한법이었습니다.
지금도 호주 대륙에는 과거의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최근 집권한 호주 노동당 정부는 원주민을 ‘최초의 국민’으로 인정하고 이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습니다. 하지만 이 안건은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으로 부결됐습니다.
환경 파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호주는 2021년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록했습니다. 막대한 양의 석탄을 채굴하고 있기 때문이죠. 호주는 전력의 절반 이상을 석탄 화력발전을 통해 얻고 있습니다.
배제적인 이민 정책은 달라졌을까요? 호주는 1973년 백호주의 정책을 폐지했습니다. 아시아계를 비롯해 많은 이민자가 호주에 정착했죠. 저도 시드니 곳곳에서 이민자 커뮤니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범유행 이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한국인만 3만여 명을 넘었습니다.
그러나 호주의 난민 정책은 국제적인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호주는 자국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난민들을 파푸아뉴기니 마누스 섬이나 나우루에 수용했었죠. 난민 캠프의 열악한 환경에 항의하며 난민 한 명이 분신자살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호주는 지난해 정권 교체를 이뤘습니다. 새로 집권한 노동당은 더 적극적인 탄소배출 감소를 약속했죠. 결국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지만, 원주민의 인권 향상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남방의 대륙에는, 지난 세기의 역사가 만든 상처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그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도 여전히 남아 있겠죠.
그렇다면 그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이, 다음 세기 호주 정치에 남아있는 과제일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호주뿐 아니라, 차별과 압제의 세기를 경험한 모든 나라의 과제겠죠. 다만 호주의 다음 세기를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 거대한 대륙국가가 우리 세계 전체에 가져올 수 있는 변화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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