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노웨어'란 이름의 영화를 보았다. 대략의 줄거리는 도저히 희망이 없는 나라에서 탈출하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부부라고는 하지만 사실, 엄마의 이야기이다. 초반의 주인공은 굉장히 유약하게 나온다. 그러나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주인공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살아가고자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다. 이 힘든 느낌은 ‘레버넌트‘ 이후로 오랜만에 경험했다. 한 호흡이 긴 것도 아니었는데 살아가는 방식이 처절하게 비쳤던 까닭일까. 영화와 같이 극한의 상황에 몰릴 일은 적다고 해도, 일상에서도 머릿속을 울리는 비상사태의 일들이 존재한다.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진땀 나는 일이거나 마음을 긴장하게 하는 일이거나 등 각양각색이다.
극한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나 자신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다. 떠올리는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굉장히 우울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낸 적 있었는데, 그때는 분명 위기의 순간이었다. 누구의 말도 손길도 닿지 않고 점점 나의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서는, 여러 겹의 문을 세웠다. 나는 꽤나 방어적인 사람이었다. 내게 힘든 상황이 찾아왔을 때에는 당황하고 겁먹어서는 맞설 생각을 못했다.
긴 악몽의 시간이었다. 지금 숨 쉬고, 바라보고, 어떤 곳에, 누군가를 마주하는 일이 모조리 거짓이었으면. 이 현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는 눈을 떴을 땐 내 방의 천장을 보고 일어나길 바라던 날이 있었다. 그러나 지독하게도 나를 물고 늘어지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당시엔 이를 타파할 답이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재밌게도 침체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맞섰기 때문에 벗어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맞서 싸웠다'라고 할 수 있다. 일이 힘든 건 참아도 사람은 못 참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게 내 경우였다. 그 한 사람은 끈질기고 집요하게 나를 물고서는 놓아주질 않았다. 사람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도 없었고 늘 예민하게 대하는 상대에게 적잖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괜찮았어도 누적되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것을 체감했다. 직장 상사이면서 프로젝트 리더였던 그 사람은, 내가 보기엔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나에게 해소하기 바빠 보였다.
일의 능률은 곤두박질쳤고, 책상에 앉아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실수도 늘었다. 대체 일이 손에 잡혀야 말이지. 그런 내 모습을 본 그 사람은 나를 불러서는 다그치기 일쑤였다. 이전에 그 사람과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그만두거나, 부서 이동을 요청했던 터라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도 그렇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내게서 그런 낌새가 보이니 더더욱 가만히 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직원들은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쉬쉬했다. 당장 일할 사람이 필요하니까다.
그래, 나도 잘 알고 있다. 일은 일대로 해내야 한다는 것쯤은 말이다. 틈만 나면 공격해 오는 그 사람에게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던 차, 나도 폭발해 버렸다. 온갖 상스러운 말들을 하면서 울분을 토해냈다. 너만 그런 걸 할 수 있는 게 아냐, 나도 할 수 있는데 안 한 거야! 한번 터지고 나니 거침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은 당황했는지, 멋쩍었는지 꼬리를 내렸다. 며칠은 나를 좀 구슬리고 달래는가 싶었다. 우연일까? 그 시기는 중요한 보고서를 준비했어야 하는 시기였다. 상황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웠다. 분량도 정리도 혼자 다 하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나 쏟아야 할까. 보고서 작성 기간 동안에는 큰 터치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잘 보여줬던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그럼 그렇지. 끝내 나는 그 회사에서 나왔다. 그동안 안고 있던 고민과 걱정이 헛짓이었다는 걸 느꼈다.
극한의 상황은 한순간에 확 커다란 일이 압도하듯 다가오는 것도 있다. 또,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새 그 상황에 갇히게 된 것이 있다. 내 경우는 후자인 셈이다. 당시 꽤나 정신적으로 몰린 상황 중 하나였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평판과 커리어 방향, 회사 생활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돌파구를 찾아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더욱 숨기고 낮춰서 더 짙은 어둠으로 빠지게 된 꼴이 되었다.
바다에 떠 다니는 컨테이너에서 살아남았다고 산 것이 아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생활이 가능한 곳을 찾고 향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고, 염려스러웠던 것인지는 이젠 희미하다. 안고 있거나 쥐고 있던 것들을 놓아버리는 게, 내 삶이 끝나는 거라고 여겼던 걸까. 다른 것을 찾아서 가질 수도 있는 것인데도 그걸 생각 못했다.
그러나 맞서는 일은 내게 있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아웅다웅 다투는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애초에 모두가 극한의 상황까지 치닫지 않았으면 한다. 지켜보는 것도, 직접 나서는 것도 달갑진 않다. 하지만 피하거나 묻어둔다고 다 해결되는 일은 없다. 지금은 마주한다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안다. 비로소 마주해야 극한의 상황은 저물기 시작한다.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고자 한다면 절망적이고 아프더라도 직면해야 한다.
조금은 나아지고 있는 걸까. 성숙한 인간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