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길 골목골목___첫 번째
[대문사진설명_ 2013.09.25 서울 용산구 미술관 가는 길: 하늘이 비쳐, 하늘을 품고]
하루하루 켜켜이 쌓인 나의 서른아홉.
좋았노라, 힘들었노라,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한 소쿠리 채워진, 나만의 희로애락을 품고 있는 마흔에서 한 발 덜 간 나이다.
그 하루하루는 제 딴엔 참 열심히 살아왔다. 직장에서 주어진 서류가 있으면 최선을 다해 완성을 해냈고 배우던 수업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해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렇다고 일만 좇아 살지도 않았다. 삶에 있어 휴식도 꼭 필요한 요소라 중얼거리며 여행도 가고 싶으면 야무지게 계획을 짜서 즐겁게 다녀왔다. 그리고 하루 세 끼 정성껏 맛있게 챙겨먹었다. 자주 네 끼가 되곤 하지만 말이다. 나는 제법 행복했다.
그런데 내 마음의 한참 아래 구석 쪽이 답답하다. 갈증이 난다.
내 인생에 갈증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싶다. 이 갈증은 아주 가끔 뇌리를 스치듯 찾아왔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것을 망각하고, 나의 하루하루를 만족하며 감사히 살아왔다. 만약 간혹 찾아오던 그 갈증이,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져주었다면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의 찾아오는 빈도수는 잦아지고 시간적 간격은 당겨지고 있었다. 모른 체 할 수가 없다. 모른 체하기가 많이 꺼려진다.
이에 나는 원인 모를 갈증의 위치가 어디메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그 실마리라도 내 손에 잡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열심히 달리던 일을 잠시 멈추고 주위의 시선을 덜어내고 조용히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우선, 나는 먹기 시작했다.
“스윽스윽 탁 아사삭아사삭”
콩 박힌 된장 한 숟가락을 배추 위에 스윽스윽 발라, 배추 심지를 탁 구부려, 아사삭아사삭 먹는다. 가장 솔직하게 ‘나’다운 순간은 무언가를 먹을 때다. 가장 긴장이 풀리는 행복한 순간, 나 자신에게 물었다.
“아무리 서른아홉이라도, 아무리 시작이 늦더라도, 아무리 실패할까 봐 겁이 나도, 나는 어떻게 살아보고 싶지? 나답게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정말 그렇게 살고 있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리조리 피하다 어느새, 직면하기 어려운 문제를 피하고 있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살았던 어제가 떠올랐다.
‘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일을 도전해볼 거야. 조금 더 안정적인 상태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게 현명한 거야.’라며 좋아하는 일들 주위를 맴돌면서 크게 실패하지 않게 한 번씩 맛만 보고 좋아하는 일을 했노라 위안 삼았던 시간들.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아야지’라는 마음과 ‘그래도 조금은 안정적인 삶을 다져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라는 마음, 이 두 마음 중 어느 것 하나 꽉 잡지도 확 놓지도 못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부적으로 들어가 생각해보기를 겁내고, 제대로 좋아한다는 말을 건네지도 못하면서 그 주위를 맴돌기만 한 나였다.
그런데 어쩌다 하던 모래성놀이에서 한 움큼씩 조심조심 모래를 빼내듯, 가끔씩 해오던 좋아하는 일들과 배움의 흔적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서로 닿아 있음을 발견했다. 마치 작은 흙길이 골목을 이뤄나가고, 각각 자리잡은 골목들이 귀퉁이에서 만나 한 마을을 만들어가듯 말이다.
내 인생에서 아직 성공적인 결과물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의 흙길들이 골목을 만들고, 각각의 색채를 뿜어내는 다양한 경험의 골목들이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을 알았다. 내가 이루고픈 행복,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내가 인정하는 성공적인 내 삶으로 향하는 열쇠를 찾아낸 기분이었다. 그 열쇠, 시원하게 거머쥐고 좋아하는 일로 더 깊숙이 접근해보고자 한다.
내가 걸어온 추억 속 골목 열두 곳을 다시 거닐어보면서, 그 길들과 참 많이도 닮아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가장 나답게 만들어서 나다운 방식으로 표현해나갈지 담아보고자 한다. 이 열두 골목들에서 이어진 인생 경험담 속에는 종착역은 없다. 뚜렷이 이룬 무언가도 없다. 다만, 전혀 다른 길인 것만 같았던 이 골목과 저 골목이 만나 진짜 “나”를 만들어가는, 뜻밖의 절묘한 찰나들이 인생에 건네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무심코 걸었던 어두컴컴한 골목조차 헛된 걸음이 아닌, 진정한 ‘나’를 만들어줄 신의 한 수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나의 또래 벗인, 마흔+들과 함께. (마흔과 그 즈음에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