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만이 아니라, 당신에게도 마음을 건네요.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것과 둘을 키우는 건,
정말 천지차이였어요.
하나일 때도 힘들다고 느꼈지만, 둘이 되니
그 무게는 두 배가 아니라 네 배쯤 되는 것 같았어요.
잠시도 조용할 틈 없이 정신이 쏙 빠지는 일상이죠.
그러다 보면,
부부가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
정말 쉽지않죠.
각자가 각자의 역할에 지쳐버리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다
그대로 잠드는 밤들이 익숙해지죠.
우리 부부가 그나마 다행인 건,
얘기할 땐 꼭 얼굴을 보며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건 선택이 아니라,
청각장애인 남편에게는 ‘소통의 기본 조건’이에요.
입모양을 보지 않으면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말을 할 때
서로의 얼굴을 보고 얘기하려해요.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는 소리만으로는 말이 닿지 않아요.
그래서 멀리서 얘기할 땐, 꼭 불러서 가까이 오게 하거나
제가 직접 가서 얼굴을 보고 말을 건네요.
그게 항상 낭만적인 건 아니에요.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삶의 모든 부분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시기.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큰일이 아니더라도 순간순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순간이 참 많아요.
바쁘고 급해서 남편을 부르는데,
아무 반응이 없을 때면
속에서 열이 확 오를 때가 많죠.
"못 들은 척하는 거 아니지?!!!"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들.
그럴 땐 결국,
체념하듯 혼자 해나가야 하는 일들이 쌓여갑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소리 없는 분노가 마음속에서 소용돌이 치기도 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답답함 속에서도 우리는 더 자주 서로를 바라보려 해요.
말을 할 땐, 꼭 얼굴을 마주 보려 하죠.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말하는 건,
결국 마음을 제대로 전하기 위한 일이에요.
오해를 줄이고,
서로가 각자의 힘듦 속에만 갇히지 않기 위해서.
각자 개인의 동굴로 들어가지 않도록,
서로를 원망하지 않도록,
관계를 붙들고 함께 버텨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끈.
둘째가 생기고 나서,
우리는 더 쉽게 지치고, 더 자주 날카로워졌지만
그럴수록 눈을 보고 말하려는 노력만큼은 놓지 않으려 해요.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요.
육아가 늘 정신없고, 감정은 쉽게 예민해지지만
그 순간에도 얼굴을 바라보고 말을 건넨다는 건,
지금 이 시간을 아이에게만 쏟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도 여전히 마음을 주고 있다는 무언의 표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