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글을 못쓰고 있다.
쓰고 싶은 말도 없고, 써야 된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고, 할 말도 딱히 없다.
예전에는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내 삶이 너무 싫어서 영혼이 썩고 있었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썼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고, 지나가는 어떤 이가 내 글을 좋아해 주는 것도 좋았다.
글을 쓸 때는 내가 슬프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슬프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다. 행복한 날에도 글을 쓸 때도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행복하고 즐거운 날에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그날 하루를 만끽하고 품에 안기에도 모자랐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나도 취업을 해서 집을 나왔다. 취업은 독립을 위한 수단이었다. 가족이란 누군가에게는 쉼터이자, 안정감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옥의 늪 같은 곳이었다. 서른 살에 첫 자취를 하고,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나의 든든한 지원군인 아버지가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하나둘 씩 결혼을 하고 있는데, 내 옆에는 남자친구는커녕 썸남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대로 결혼을 하지 못할 것 같았고, 영원히 혼자살 것만 같기도 했다. 모은 돈도 얼마 없었고, 작은 회사에서 200만 원 언저리의 월급을 받고 있었다. 작은 원룸에 차를 마시면서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나는 결혼 못할 수도 있어. 내 짝꿍은 없는 것 같아.
아빠는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짚신도 다 제짝이 있는겨.
어느 날 갑자기 가는 게 결혼이여.
4년 후, 뾰족하고 모난 점 투성인 나에게도 정말 나만의 짚신이 찾아왔다. 회사에서 만난 아르바이트생과 너무나도 재밌고 행복한 연애를 하게 되었고, 현재는 함께 작은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올해 2월에 혼인신고를 했고, 결혼식도 올릴 예정이다.
현재 남편을 만난 이후, 우울한 날도, 슬픈 날도, 손에 꼽을 정도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와 함께 일하면서 종종 다투기도 하고, 서로의 마음이 어긋난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픈 말이 가득한 일기장을 쓰거나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매일 그와 마음을 나누면서 따스함을 채우고,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있었다.
삶이란 것은 지금보다 계속 성장할 것이고 나아지고 있고, 발전하고 있다.
오늘만 있는 게 아니고, 내일도 있고, 내일모레도 있고, 한 달 후도 있고, 1년 뒤도 있다.
지금의 고통이, 지금의 상황이, 지금의 슬픔이, 절대적으로 영원하지 않다.
무엇이 되었든, 나아지고 있고,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이곳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앞날이 막막한 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글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