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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Apr 13. 2016

정신적 왼손잡이 #14.지금까지의 나

2016. 1. 10. 지금까지의 나

만약, 약 10년, 20년 간 믿고 알던 당신이, 이제부터 '그렇지 않다면'?

지난 반년 간 겪은 혼란들을, 모두 묶어 한 번에 정리하면 이렇다.

20여 년간 믿고 있던 나를, 어느 날 또 다른 내가 나타나 그를 죽이고, '이제부턴 내가 나다'라고 한다면? 




#1. 선단 공포증


2013년 봄에 시력교정술을 받았다. 딱히 렌즈나 안약을 많이 쓴 편이 아니어서 눈 건강은 좋았다. 다만 안구건조증이 더 심해질 것이 제일 우려되었다. 그래서 수술 시작과 동시에 강박적으로 눈 관리를 시작했다. 컴퓨터를 할 때, 영화를 볼 때, 활자가 작은 책을 볼 때는 (지금도) 보안경을 낀다. 기성 안경이지만 전자파 차단 특수렌즈를 사용한 것으로 도수는 없다. 시력교정술을 받은 시점에 한창 운동을 할 때여서, 걸리적거리는 안경이 없다는 게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수술을 받은 지 1년 후, 몇 가지 악운이 겹쳤다. 가장 오래 만났던 연인이 떠났다.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마지막 학년에 접어들며 스트레스도 많아졌다. 집안 사정이 나빠져 괜히 지갑도 빠듯해졌다. 그러나 건강은 따라주지 않아 정상적인 생활이 되지 않았다. 혼자 통원 치료를 시작하고, 공부와 계약직 일을 겸하면서 바쁘게 살았다. 


그 무렵 나타났다. 선단 공포증. 처음엔 마주 앉은 사람이 젓가락을 흔들 때 조금 놀랐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비 오는 날, 그건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에 일을 하던 곳은 서울의 번화가였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내겐 우산이 없었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우산을 썼다. 건물 입구 앞에서 나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저 우산 끄트머리들에 스치면, 두 눈이 찢어져버릴 것 같았다.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바닥을 본 채로 걷기 시작했다. 번화가의 사람들은 계속 나와 부딪혔다. 내 발끝만 보고 걸었다. 우산들이 스쳐 지나갈 땐 고개를 돌렸다. 거의 다 왔다. 버스정류장까지, 거의 다 왔다. 그리고 내가 만난 건, 반쯤 베어 먹은 닭꼬치를 들고 내 앞에 서 있는 작은 꼬마였다. 바닥을 보고 선 내 눈과 같은 높이에, 휘청거리고 있는 날카로운 꼬치.

우뚝 멈춰 섰다. 아이는 금세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어억'하고 입에서 절로 소리가 나왔다. 


이 두려움은, 내가 심적으로 불안정할 때는 더욱 심해졌고 안정적일 때는 거의 느끼지도 못할 만큼 나타나지 않았다. 겉으로 질색팔색 표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마주 앉은 사람이 젓가락을 한 번씩 치켜들면 헉 소리가 나왔다. 그때 잠깐 만났던 연인의 손도 무서워했다. 그 사람은 유난히 하얗고 긴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 얼굴을 몹시 만지고 싶어 했지만, 그 사람의 손가락이 다가올 때마다 내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와 그 사람은 불안했다. 당연히 얼마 가지 않아 헤어졌다. 그리고 여전히 비가 오는 날의 외출이 무서웠다. 



#2. 정말 그런가?


"보통 그런 현상이 부차적으로 따라와요."


안과 의사에겐 '날카로운 물건에 깜짝 놀란다'라고만 말했다. 안과의사의 의견으로는, 10년 넘게 안경이 눈을 덮고 있었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 체감하면서 느끼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그녀는 딱히 놀라지 않는다. 


"심적으로 안정되면 그런 현상도 덜 느끼게 된다니, 그 점은 다행인 일이에요."


나는 평평하고 넓은 진료실 책상에 머리를 푹 박고 있을 뿐이다. 평안하다. 그대로 누워 잠들고 싶을 만큼. 당분간 고생 좀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력이 떨어지는 걸 알았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이다. 하나 둘 찌꺼기처럼 들러붙는 것들이 많아지는 게 거추장스럽다. 이걸 떨어내고, 다시 붙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예전엔 단순한 생활만으로도 가능했다.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앞으로 이렇게 삐걱대는 것이 - 많아진다면 많아졌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사람이 무너져간다는 건 귀찮은 일이구나.

짜증 나서 정말 죽어버리고만 싶어 지는 거구나.



#3. 태어나면서 죽어간다니


아무리 내가 행복을 모르고 살고 있다 해도 '사람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어가는 것'이라는 문장엔 동의하고 싶지 않다. 어련히 시간이 지날수록 뼈와 근육은 닳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죽기 위해 살아가는 건 아니다.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 있지만, 그걸 우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고, 금기처럼 여기는 이유는 분명 살고 싶어서다. 적어도 죽음이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는 아니란 뜻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세상이 다 나를 버린 것 같이 괴로워서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몸을 망치고, 깨지고 울고, 악쓰고 욕을 하면서도, 살려고 하니까. 살고 싶으니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추태다. 어디 성하고 건강한 곳이라곤 하나도 없어 뵌다. 눈 밑은 갈수록 검어진다. 쓰레기통엔 약봉지 비닐이 가득하다. 침대에선 진한 피로의 냄새가 난다. 그래도 나는 일어난다.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켜, 그런 못난 얼굴을 씻고 머리를 다듬고 문 밖으로 나간다.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설령 죽어가고 있다고 해도, 난 산다고 믿고, 산다고 믿어야만 한다.



#4. 더 살아야 한다.


눈을 끔찍하게 다치는 꿈을 꿨다. 꿈에서 내 왼쪽 눈에 우산살이 박혔다. 그것을 뽑아냈을 때 가늘게 붙어 있던 핏덩어리 살점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일어나 내 두 눈을 확인한다. 여전히 못생기고 피로한 모습으로 두 눈은 그 자리에 잘 붙어있다.  그래도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난 아침은 이미 엉망진창이다. 


죽고 싶다, 귀찮다, 죽어버리고 싶다. 그런 말을 웅얼거리며 출근버스를 탄다. 만원 버스에서 몸을 비벼대는 사람들이 참 짜증스럽게 '넌 그래도 살아있다'고 알려준다. 


비 오는 날이면 땅만 보고 걷는 나. 

마주 앉은 사람의 젓가락질에도 이따금 고개를 돌리는 나.


그렇게 한 구석이 더 망가져 있는 나는 어느 때보다 '산다'는 가치에 징그럽도록 들러붙고 있었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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