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잉위잉 Dec 24. 2017

정신적 왼손잡이#38.기나긴 꿈

20170102.치료일지 정신적 왼손잡이#38.기나긴 꿈

#1. 상담


최근 그녀와의 상담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녀는 내가 유학을 결심한 시점 이후로 얼굴빛이 나아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터닝 포인트라면- 지난 11월 진료는 나의 어머니가 동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으므로 나는 30분 정도 진료실 바깥에서 기다렸다. 


난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나눴는지는 모른다. 난 나의 부모와 가족에게 꽤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정신과에 대해 지극히 짧은 생각과 강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며, 내가 정신과를 다니는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나에게 '엄살'이나 '노력', '의지'라는 말을 참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결코 나를 자극하고 학대하는 형태가 아니라, 너무 순박하고 여린 형태이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대고 화를 낼 수가 없다. 벌컥 소리라도 높였다간 '넌 우리가 걱정해주는 건데 왜 그러느냐'는 말이 돌아오곤 한다. 나는 늘 가족의 걱정에 빈정대고 화를 내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입을 다물었다.)


사건을 설명하자면 복잡하지만, 결론은 내가 유학을 가면 병원은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 때문에 이 모든 사단(?)은 시작됐다. 내 자식이 무엇 때문에 아픈지, 왜 약을 먹는지 직접 부모가 들어야만 하겠다는 고집이었다. 부모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병원과 병에 대해 말하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는 몇 번이고 신호를 보냈다. 그것은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 거리만큼, 아득히 잊혀지고 끊어져 하나마나한 것이 되었으려니. 


11월의 상담을 몰래 1번 더 예약을 했다. (복약지도의 문제도 있었기에 여러모로 필요했다.) 어머니가 오시기 전의 그 상담에서, 간절히 그녀에게 부탁했다. 지난 기간동엔 내가 힘들어 한 사항에 대해 이야기하면, 난 절대로 유학을 갈 수 없으며, 서울은 커녕 당장 부모의 곁으로 돌아가 살아야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그녀에게 빌다시피 애원했다. 


미친 소리인 줄은 알지만, 어떻게든 우울증을 나아보일테니
부모에겐 제발 내가 괜찮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나을리가 없지만, 지금까지도 꿋꿋하게 함구해왔으니 앞으로 얼마나 속이 더 곪아 썩든 버텨볼테니
내가 유학을 못 가게 되는 일만 없으면 된다고.


그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했다. 난 내가 저 말들을 내 입으로 했다는 게 부끄럽고 화가 나고 헛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참 웃기는 소리다. 내년에 한번 더, 지금처럼 괴롭고 우울한 시간이 찾아온다면, 그땐 진짜 이국에서 죽거나, 아니면 가족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회색인이 되어 죽은 듯이 살 게 될 거라는 참담한 상상을 했다. 



#2. 어떤 대화


어머니와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와 그녀의 상담이 짤막하게 진행되었다. 그녀의 어조가 다소 단호했기에 나는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래서 더욱 나의 어머니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가 궁금해졌다.


"어머니의 걱정과, 잘 알지 못해서 가족들이 하는 말에 대해 일일히 반응하지 말아요. 나의 눈높이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들을 빈정거리지 마세요."


-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게 됐는데, 아무 말도 안 하면 또 아무 말도 안 한다고 화를 내는 걸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좋게 넘기는 정도만 되어도, 가족들은 위잉씨를 자극하지 않을 용의가 충분히 있어요."


- 즉, 제가 저를 이해시키기 위해, 제 우울증에 대해 가족에게 이야기한 것이 오히려 잘못이란 뜻인가요?


"아니요. 그건 커뮤니케이션의 격차라고 해야하나... 일단 여기 오시는 여러 보호자 분들에 비해서 많이 열려 있어요. 즉, 위잉씨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려는 용의가 - 위잉씨가 상담 때 말했던 것보다 훨씬 이해하려는 의도가 충분히 있거든요."


(...그럴 리가. 라고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만 가족들도 위잉씨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무슨 말을 해도 안 듣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의견을 밀어넣으려고 가족, 부모, 형제 등의 지위를 자꾸 내세우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위잉씨는 그 쯤 다다른다 싶으면 말을 하지 않게 된다고 했고."


- 정말, 한편으론 어이가 없네요. 


"빈정거리거나, 반대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반응만 멈춰보세요. 그러면 훨씬 나아질 거라는 게 보여요."


(...내가 그렇게 화냈던 적이 있던가. 항상 소리지르고, 듣기 싫다고 대화를 자르는 쪽은 부모와 형제 쪽인데.)




#3. 결론은 없다


그렇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제일 마지막 사람. 나는, 막내라는 사람은 지독하게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 외의 모든 건 다 가지려고 했다. 학력, 성적, 사람, 직장, 돈.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다보니 결국 이 지경이 됐나. 그런 생각에 온 몸에 힘이 빠져, 약국에서 약을 받은 후에도 10분 정도 더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차라리 링거라도 맞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어머니가 그녀와, 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뭔가 드라마틱한 결과가 나올 것만 같았다. 나를 몰라줘도 좋으니 우울증이라는 질환의 심각성에 대해서라도 알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어떤 말을 했는지는 영원히 모를 일이다. 생각과 감각이 갑자기 후루룩, 엉켜든다. 시간에 따라 뭔가가 변할 거라는 낙관은 없다.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됐다. 결국 나는 다시 '체념'하고 있고, 이제 시간이 없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적 왼손잡이 #37.재구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