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잉위잉 Jan 08. 2017

정신적 왼손잡이 #37.재구성

정신적 왼손잡이 #20161231.#36.재구성

2015년 12월 31일에 썼던 일지와 일기를 바탕으로 썼던 "#13.믿고픈 거짓말(https://brunch.co.kr/@wiingwiing/14)"을 다시 읽어보았다. 2016년 12월 31일은 돌아왔고,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각해본다. 


겨울 한파가 짙어질 무렵, 부동산 직원과 낯선 이들이 찾아왔다. 주말 오전, 혹은 학원 수업이 없어 오전에 늦잠을 자고픈 날엔, 느닷없이 깨어 부스스한 모습을 보인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계약 만기는 2월임에도 불구하고 공실 기간을 줄이려는 집주인이 집을 빨리 내어놓은 바람에, 불시에 자꾸만 찾아오는 것이다. 


초인종이 없는 원룸이기 때문에 으레 그들은 문을 두드리는데, 밖에선 '똑똑똑'일지 몰라도 집 안의 나에겐 '쾅쾅쾅' 하고 크게 울린다. 살 집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내게 무엇을 받아내러 오는 사람처럼 그 소리는 화가 난 것처럼 들린다. 매우 짜증스럽고 이내 우울해진다. '주무시고 있는데 죄송해요'라고 부동산 직원이 내게 사과했지만, 빨래 더미 사이의 속옷들이며, 미처 개켜지지 않은 이불에 밴 진득한 잠의 냄새를 남에게 보여주는 일은, 그 정도 사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을 빌려 살고 있는 사람은 그것에 화를 낼 자격이 없어서, 마지못해 눈곱을 떼고 이불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12월은 '부동산에서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느긋이 늦잠을 자지 못하고 오전 6시나 7시쯤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주말을 보냈다. 되도록 집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대로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몸은 매우 기분 나쁘게 가라앉아 무거워져, 돌처럼 굳어졌다. 



집 옆의 건물은 여전히 공사 중인데, 콘크리트 타설 공사랍시고 무지막지한 크레인과 중장비가 좁은 골목을 막고 있었다. 시끄러운 연말이다.


연말. 뭔가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딱히 그럴 것도 없다. 굳이 열심히 특별한 일을 꼽아보자면 페이스북 계정을 갈아치웠고, 손톱을 깎았고, 요즘 유행하는 대만 카스테라가 맛있다고 느껴져 전화예약까지 해서 세 번째로 사 먹었고, 집 근처의 카페에 주인장이 키우는 고양이가 살고 있어서 오가는 길에 자주 쳐다보게 되었다는 것 정도.


작년 연말에 내 목표가 무엇이었나를 확인한다. 

내가 얼마나 나아질 수 있는지, 더 살아도 되는지를 증명하고 확인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였다. 


그래서, 목표대로 되었는지 돌아본다. 


2015년 못지않게 2016년도 참 너덜너덜하고 구질구질하고 피로한 시간이었다. 특히 여름 언저리는, 시간에 대고 총이라도 쏜 듯 아주 크게 구멍이 났다. 이렇다 기억나는 일도 없다. 이번 여름도, 2015년 처음 정신건강의학과를 갔을 때만큼이나 최악의 심신상태였기 때문에, 그때는 기록해 둔 일지 조차 없다. 유학-내지는 이민 혹은 망명을 생각하고 선택한 이유와 경과도, 그 계절과 함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아무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움푹 파인 고통의 자국들은 남아 있다. 그 흔적이 보인다, 여기저기. 그러나 그것은 갈무리할 수가 없다. 갈무리해내기가 너무 힘이 들며, 되짚어볼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들 정도의 것들이다. 어림해보면 그 시기엔-누군가를, 사회를, 세계를 저주하고 원망했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게 산뜻하게 해결될 것이라는 상상을 위안으로 삼았다. 아주 징그러운 글들만이 남아 있다. 그건 이제 와서는 기억해낼 수도, 다시 말할 수도 없는 의미 불명의 기록이다.


이 회사에서의 힘들었던 일은 웬만하면 함구했다는 것이, 9월의 일지에 남아 있다. 말을 한다는 건, 말로써 다시 한번 내가 듣는 것이기도 하다. 즉 그런 식으로 나는 아주 잊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침묵은 우울의 시작이다. 






토막 난 2016년의 결론은 '좀 더 살아보자'가 되었다. 삶의 근거를 너무 많이 유실했다. 

그리고.

날 것의 감정 그대로를 이야기하자면, 2016년에도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이다. 


약은 약대로 오랜 기간을 먹었다. 체력도 기억력도 여기저기 나사 빠진 듯 삐걱댄다.  아, 이래서 나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과연 정말로 행복해질 순 있는 것일까? 나는 불안의 감각을 늘 안고 사는 사람이다. 2016년, 2015년의 여름 같은 상황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재구성.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적 왼손잡이#36.그렇게 살 수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