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1 #13. 믿고픈 거짓말
거울은, 얼굴과 머리를 단정히 할 때를 빼면 보지 않는다. 내 모습을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옷에 묻은 건 없는지 확인할 때, 눈에 안약을 넣을 때 등의 목적이 있는 경우를 빼고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멍하게 응시하는 것도 의도적으로 피한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면, 타인을 좋아하는 일도 하기 어렵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타인의 호의조차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어버려요."
#1. 연말의 기분
2015년이 끝난다. 제야의 종소리든, 새해의 해돋이든, 그런 낭만이 없어진 지는 꽤 되었다. 어떤 해에는 31일에 철야로 과제를 해서 새해에 제출을 했다. 어떤 해에는 늦잠을 자서 해돋이는커녕 해가 중천에 뜨도록 방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2015년의 마지막은 회사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휴가와 월차를 붙여 사용해서, 회사는 텅텅 비었다. 나 같은 인턴 몇몇만 남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내가 개의치 않는다 해도, 아무래도 분위기에 약한지라 주변에 금세 휩쓸려버린다. 종로를 빠져나와 대학로 방향으로 나가자, 연말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워낙 날씨가 추워서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끌벅적했다. 뭔가 기분전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근처의 은행에 들어가 현금을 조금 찾았다. 휘적휘적 돌아다니다가 내가 찾은 곳은 사주를 봐주는 부스였다.
2014년 12월에도 난 이곳에서 점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걸 좋아하는 후배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본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1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에 있었다. 두꺼운 비닐에 돌을 괴어 바람을 막아놓은 작은 부스로 몸을 비집어 넣었다. 보글보글한 파마머리에 금테 안경을 쓴 후덕한 아주머니가 인사를 했다. 작년의 그 사람 그대로였다.
"저, 작년 이맘때에도 여기에 왔었어요."
아주머니는 다시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때 봐준 사주가 맞았어요. 나의 한 해는 정말 최악이었습니다.'라고 하고 싶었는데, 칭찬이 아니라 욕으로 들릴까 봐 말하지 않았다.
#2. 점을 보러 가다
찾은 현금을 주섬주섬 꺼내놓았다. 사주가 2만 원, 복합 타로 점이 1만 원. 3만 원을 꺼내놓았다. 놀라는 눈치였다. 내 생년월일을 말했다. (아직도 난 내가 몇 시에 태어났는지는 모르겠다.) 아주머니는 연습장에 휘적휘적 한자를 몇 자 갈겨썼다. 야상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간이 스토브에서 이따금 치이익 소리가 나는 것을 쳐다보았다.
별다른 질문 없이, 아주머니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주섬주섬 들었다. 내가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자, 외려 아주머니는 되물었다. 더 궁금한 것은 없느냐고.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이야기에 냉큼 3만 원을 현금으로 내놓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는... 가족들과 연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한 오늘, 혼자 다니는 사람도 몇일지 궁금했다.
좀 오랜 시간 앉아있었다. 한 30분에서 40분 정도를. 내가 부스를 떠나는 순간까지, 아주머니는 꽤 좋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좋은 이야기만 해줬다고 해도 괜찮을 만큼.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멋쩍게 웃기도 했다. 그래도 속으로는 내심 '그렇게 될 리가 없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내게 비극이란 참 고질적이다. 그러다가 한 번 그게 입 밖으로 나왔다.
"전 그런 복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에이, 사주가 복이 많다고 말해주는데? 이제 삼재 끝났으니 슬슬 (복이) 올 거예요."
#3. 가라앉은 새해
부스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연말연시인 만큼 먼저 전화를 거는 것이 예의이니까. 그리고 멋쩍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보다, 지금은 더 재미있는 대화 거리가 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옆에 같이 있던 외할머니도 듣고 싶다 하셔서, 결국 스피커폰으로 내가 사주를 본 이야기를 생중계하게 됐다.
잘 될 거라고.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그렇게 사주에 나와있었다고.
배가 당기도록 웃을만한 이야기도 했고, 조금 심심한 이야기도 했다가, 올해는 더 나아질 거라고 다짐하면서 통화를 갈무리했다. 그쯤 되자 자취방의 무거운 현관문이 나타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하루 동안 내 몸을 묶었던 옷들을 벗어놓고, 느릿느릿하게 샤워를 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음악을 틀지 않았다. 아주머니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천천히 되씹었다. 차가운 공기가 창틀을 넘어 넘실넘실 내려온다. 바깥에서 쿵, 쿵하고 바람이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강 어귀에서 새해를 축하하는 폭죽을 터뜨리는 소리. 바깥에선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차 소리도 딱히 들리지 않았다. 나의 골목은 조용했다.
#4. 운명론
사람은 계속 변한다. 만약 그것조차도 다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짜임새로 다 정해져 있는 거라면, 참 신기한 일이다. '삶은 개척하는 것이다', 혹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의기양양하게 외칠 자신감은 없다. 다만 내가 예상했던 대로 일이 따라주지 않은 적이 미치도록 많다. 어릴 땐 내가 단 한 번도 전학이나 이사를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체중이 많이 줄면 영화 <미녀는 괴로워>처럼 인생이 환상적으로 변할 것 같았다. 내가 열심히 살면 다른 사람들이 칭찬해주고 인정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냥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다. 인생의 대찬 목표도 설계도 없다. 우울증, 우울증 전에 찾아왔던 모종의 치료부터 이미 그런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 달을 벌면 딱 한 달을 풀칠할 만큼의 돈만 생겼다. 하고 싶은 일이나 갖고 싶은 것들은 포기한다. 돈이 안 드는 선에서만 한다. 만약 돈이 드는 것을 선택하면- 그 대가로 밥을 한 끼씩 굶고, 한 달 내내 사람을 만나지 않으며, 걸어서 퇴근해야 한다.
... 이런 것 조차도 다 정해져 있던 거냐고 묻고 싶다.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주려고 이만큼 나를 굴렸냐고도 묻고 싶다.
운명론이 잔인한 이유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내가 뭔가를 잘못 해서 이런 고생을 하는 거냐고 물어도, 결론은 '운명'. 정해져 있던 것. 심지어 보상도 정해져 있다. 운명이 정해놓은 양보다 더 많은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누구도 내 고통을 저울질할 수 없다. 행복해서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의 환희라는 걸, 한 번이라도 느껴나 보고 싶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이반의 말-1000 조 km를 걸은 후, 단 2초간 진리의 문을 엿보았다. 그 2초를 다시 느끼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다시 1000 조 km를 걷겠다-만큼이나 집착하고픈 환희.
이만큼이나 고생했으면, 그런 행복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아?
날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다들 누리고 있는 그런 거, 난 안 돼? 왜?
하다못해 돈이라도 많이 벌게 해줘. 인정받게 해줘. 칭찬받게 해줘. 유명해지고 싶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감사받고 싶어. 좀 더 남 앞에 자신 있게 서 있고 싶어.
더 많이 웃고 싶어. 웃게 해줘.
안되냐고 그렇게 묻다가 좀 슬퍼져서, 맥주 한 캔을 뜯었다. 책상 위엔 아침에 급히 뜯고 버린 약봉지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여전히 폭죽 소리는 멈추지 않고 있다.
#5. 거짓말이라도 좋아
다시 여름을 떠올린다. 이젠 해가 바뀌었지만, 아마 며칠은 2015년을 2016년으로 고쳐 쓰는 실수를 할 테니까. 여름밤, 잠들기 전엔 유머 애플리케이션으로 별자리 점을 보곤 했다. 내일의 운세, 다음 주의 운세, 이번 달의 운세. 별자리 점부터 띠별 운세. 다 재미로 보는 거고, 다 장난질인 걸 알면서도 매일 밥 먹는 일보다 더 열심히 챙겼다.
맹신하기도 한다. 그런 믿을 거리라도 없으면 안 될 만큼 초조하고 불안하고 괴로웠으니까. (그리고 그걸 너무나 맹신하면 위험해지기도 한다. 그 틈을 악용해 비집고 들어오는 해악들이 많으니까. 회사를 다니면서, 조금은 쓸모를 인정받으면서 살기 시작한 지 4개월째, 더 이상 별자리 점은 보지 않는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줄 알면서. 믿고 싶다. 더 좋은 기계라고 하면 그 성능을 믿듯이, 좋은 말이라면 누구나 믿고 싶다. 작용-반작용처럼, '웃기지 마!'라는 식의 분노까지도 모두 '믿고 싶은 마음'이 되어버린다. 더 강하게 집착할수록, 그것만이라도, 그렇게라도 되면 좋겠다는 소망이 태어난다. 유리처럼 허술하지만 갖고 싶은 모습으로.
으레 그런 글 속엔 좋은 말이 한 줄쯤은 있다. 그걸 되뇌며 잠을 청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더욱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만 있는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건 그 말 한 줄이었다.
지금도 어쩌면, '잘 풀릴 것이다'라는 사주를 믿고 있기에 불안을 조금은 덜어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주를 보러 가는 엄마에게 '그런 거 믿지 마, 다 거짓말이야'라고 말했던 과거의 내가 우습기도 하고. 맥주캔이 가벼워질 때쯤엔 참 웃겨서 눈물이 났다.
2016년의 목표는 재고. 좀 더 살아도 되는지, 내가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는지를 실험해보기로 한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