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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Apr 02. 2016

정신적 왼손잡이 #12. 감사를 받는 일

151110 #12. 감사를 받는 일

나는 의심이 많다. 나중에 다시 볼 연이 없을 사람에겐 생각보다 관대하지만, 나와 오래도록 교류하고 싶어 다가오는 사람에겐 깐깐하게 굴고 의심한다. 20대 초반엔 사람들에게 늘 120%를 내어놓고 애정을 구걸하는 편이었다. 남은 건 없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100%도, 80%도 좀처럼 잘 꺼내놓지 않는다. 으레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이란 소릴 듣는다.



#1. 사고


변함없이 6시에 퇴근. 짐이 많다. 본가에 내려가는 주말이다. (이쯤에서 이미 쉬기는 글렀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편집한 원고가 실린 걸 보고 싶다 해서, 그간 발행한 잡지를 챙겨서 퇴근하느라 책꾸러미 하나가 생긴다. 걸어서 퇴근할 생각이었으나 버스를 타기로 한다.


버스는 두 가지 종류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무조건 앉아서 갈 수 있는 버스, 시간은 덜 걸리지만 항상 사람으로 들어차 있는 버스. 전자의 버스를 택한다. 전자는 항상 종로를 한 바퀴 돌고 간다. 가끔 바깥 구경을 하고 싶을 때 실없이 이 버스에 오르기도 한다. 1인석에 앉자마자 머리를 창문에 박는다. 눈을 감는다. 모니터에 혹사당한 눈이 알싸하게 매워온다. 눈을 쉬이면서, 기척과 소리로, 텅텅 빈 버스가 하나 둘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내릴 때가 가까워오자 눈을 뜨고 내릴 채비를 한다.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던 여자가 쓰러진다.




#2. 침착하게


괴상한 신음소리와 함께 쓰러진 여자는 내 또래처럼 보인다. 어깨에 멘 보조가방과 손에 든 휴대전화가 차 바닥에 뒹군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버스가 멈추고, 운전기사가 일어난다. 사람이 기절했다. 어떤 원인인지는 몰라도 이럴 때 가장 위험한 건 입에 거품을 물어 질식하거나, 고개가 뒤로 젖혀져 혀를 물어버리는 경우. 여자는 더 경련을 일으키거나 괴성을 지르지도 않고 가만히 있다. 긴 머리에 얼굴이 가려져 눈을 뜨고 있는지 숨은 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바위처럼, 나무토막처럼 그렇게 쓰러져있다. 


 여자 승객들이 쓰러진 여자의 곁으로 모여든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쓰러진 여자의 다리 위에, 제 코트를 벗어 덮어주었다. 여자의 손을 주물러주고 머리를 쓸어 넘겨준다. 나는 내리기는커녕 일어날 수도 없다.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뭘까. 


 여자의 손에서 떨어진 휴대전화를 집어 든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내 휴대전화를 꺼냈다. 양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섰다. 하나는 119, 하나는 최근 통화목록.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동안 수없이 받았던 전화, 교육받았던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을 떠올린다. 

한 손에는 내 휴대전화를, 다른 한 손에는 쓰러진 여자의 휴대전화를 들었다.

119 구급대에게 ;  버스의 색깔과 번호, 위치, 환자의 상태, 전후 상황의 설명. 

최근 통화목록에 있는 환자의 지인에게(애인으로 보였다) ; 현재 휴대전화의 주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내가 취할 것인지를 설명.


완료. 이후 119 구급대로부터는 두 번의 전화가 더 걸려와서 그것에 응대. 


버스는 원래 가야 하는 방향으로부터 살짝 우회해서 교통 지구대 앞에 임시 정차한다. 운전기사는 상황이 길어지자 난색을 표한다.  버스의 종점까지는 한참 남아있고, 지금은 퇴근시간이다.



#3. 상황 종결


 여자가 눈을 뜬다. 말은 하지 못한다. 말을 알아듣기는 하나 힘들어 보인다. 11월인데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다. 나는 여자의 휴대전화를 여자의 가방에 넣어준다. 전화를 누구에게 걸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재차 설명한다. 여자는 알아들은 듯 눈을 깜박인다. 


구급대가 도착한다. 승객들은 자신의 손길을 거둔다. 여자를 덮어줬던 코트도, 여자의 손을 주무르던 주름진 손들도 좌석으로 사라진다. 여자는 구급대의 부축을 받아 차 바닥에서 일어나 들것에 눕는다. 일어나는 모습이 매우 힘들어 보인다. 여자가 일어나자, 나도 내릴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 '누군가가 환자와 같이 내려서 상황을 마저 해결해야 하지 않냐'는 목소리가 승객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다. 나는 여자가 떨어뜨린 보조가방과 내 책꾸러미까지 들고 내린다. 버스는 떠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구급대의 질문이 날아든다. 전화를 받듯 차근차근 말한다. 메모지에 내 연락처를 적어 구급대에 넘긴다. 나는 여자의 가방을 챙겨준다. 그 가방 안에 여자의 휴대전화가 있고, 내가 전화를 걸어두었음을 재차 말한다. 차 안에 누워있는 여자가 고개를 틀어 나를 본다. 시선이 마주친다. 정신이 든 건가, 나는 안도한다. 여자가 천천히, 간신히 입술을 움직여 뭐라 말한다.


고맙습니다.


구급차 문이 닫힌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퍼진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향할 것이고, 그 이야기도 그 여자의 애인에게 난 이미 전달했다. 



#4. 고마워하지 마세요


여자를 구급차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집으로 걷기 시작한다. 고작 한 정거장. 한 정거장도 안 되는 거리다. 별 일이 아니기를, 별 일이 없기를 잠깐 기도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생각한다.
과연 방금 전의 일은 잘 해결한 것인가. 

내가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내려야 할 도착지보다 훨씬 앞서서 그 여자가 쓰러졌다면, 내가 따라 내릴 수 있었을까. 

그 여자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걸었다면, 난 부축이라도 하려 했을까.

내가 침착하지 못해서 전화를 빨리 걸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 급한 약속이 있어서 나조차도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었다면 그 여자를 더 도왔을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던 그 여자의 모습이 자꾸만 반복해서 떠오른다. 그럴수록 무섭다. 손과 발이 파들파들거려 걷는 내내 비칠거린다. 한 정거장도 안 되는 거리까지 걷는 일이 괴로울 만큼 부들거린다. 


어차피 집에 가 봤자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병원까지 동행하길 요청했다면 할 수도 있었다. 난 대단한 영웅도 아니고, 그저 행인이자 환자니까. (그 여자는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걸 영원히 알 리 없겠지만.) 자부심도 자존감도 없는, 6시에 칼같이 퇴근하고도 할 일도 없는 무기력한 사람. 입력된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드라이아이스 같은 사람.  

 

괴로웠다. 누군가를 돕고도, 누군가에게 감사를 받고도 괴로웠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뭔가 하나라도 내가 손해 본다면, 당신을 돕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 같은 사람이 타인을 돕고 구한다는 그런 거창하고 대단한 일 같은 건, 절대 일어날 수 없어.



#5. 어색하고 기묘한 상냥함


"큰 일 해냈네요. 조금은 자랑스러워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녀는 나를 크게 칭찬한다. 사고가 있은지 3일 뒤의 진료였으나 아직까지도 그때의 무서움이 채 가시질 않는다. 무서웠다. 무서웠고 지금도 무섭다. 그 사람은 잘 있을까. 물론 내 연락처를 주었지만 아무 소식 없는 것을 보니 별 일은 없겠지. 


"누군가가 다친다, 누군가가 쓰러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었어요."


신체가 훼손되는 모습을 본 것도 아닌데. 그저 푹 하고 사람이 쓰러졌을 뿐인데. (그 무렵 모 일간 신문에 게재된, 간장 종지를 주었네 마네를 갖고 유태인 학살을 떠올렸다는 칼럼이 꽤 회자되고 있었다. '사람이 쓰러진 것만으로도 이렇게 떨리는데, 고작 간장 종지로부터 인류 최악의 대학살을 이야기하는 건 글 쓰는 사람이 너무 무감각한 건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다.) 


"근데 자신의 의연한 대처가 자랑스럽지 않은 거죠? 충분히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기특한 일이에요. 스스로도 뿌듯하지 않고?"


"그 사람이 왜 나한테 고마워했는지 모르겠어요."


난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까칠하고, 신경질적이고 더 고질적인 병을 갖고 있는 엉망진창인 사람이니까. 내가 그 사람에게 해준 일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니까. 어쩌면 당연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이어도 했을 일이다. 어쩌면 '재수없게 나 따위가 해버린' 일이니까.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온갖 애를 썼겠지.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 감사를 고이 잘 받아 섬길 줄 아니까. 

그녀는 '오래간만에 뭔가 어려운 문제로군'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위잉씨. 평소에 거울을 자주 보나요?"




그녀가 이렇게 던지는 질문을 들으면, 항상 신기한 기분이 든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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