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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북스 Aug 13. 2018

리모트-두 번째. 문제는 공간이 아니야!

직원이 경험하는 리모트 


시작


저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위키북스 편집자로서 리모트(aka 원격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리모트라고 하면 외국의 어느 한적한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곁에 두고 노트북으로 폼 나게 일하는 것을 상상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9시부터 6시까지 일하고 있기에 공간의 차이만 있을 뿐 흔히 리모트라고 하면 기대하는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일상


오전 7시 30분쯤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첫째 아이를 등원시킬 준비를 합니다. 아침 산책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고 나서 9시부터 컴퓨터를 켜고 일하기 시작합니다. 12시에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6시까지 일합니다. 6시 이후에 업무를 정리하고 산책을 다녀온 후 저녁 식사를 하고 쉬다가 10시쯤에 아이들을 재우고 이것저것 할일을 하고 12시 ~ 1시에 잠자리에 듭니다.

실제로는 대략 이런 모습. 왠지 하루에 회사 두 군데로 출근하는 느낌적인 느낌...


사실 집에서 일하는 것 빼고는 다른 직장인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습니다. 9시 ~ 6시로 근무 시간을 고정한 것은 사무실에 출근하는 다른 분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나 개인적인 업무 효율을 위해서나 이 체계에 따라 근무하는 방식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거주 중인 시골 마을에는 주변에 일하기 좋은(인터넷이 연결되고, 노트북을 연결할 수 있으며,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만약 그런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아침마다 출근 준비에, 일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업무 환경을 세팅하는 데 드는 노력과 비용을 생각한다면 굳이 리모트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집에서 성능 좋은 데스크톱을 켜고 널찍한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는 것만으로 출근 준비가 끝나는데 다른 곳을 찾아가야 할 이유가 없죠.   


장점


리모트를 하게 되면서 얻은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시간 절약입니다. 출퇴근할 때마다 드는 시간을 고스란히 아낄 수 있으며,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아이들 등원을 돕는 것에서부터 아침 산책, 집안일, 모자란 수면시간 보충까지 워라밸을 구현하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지옥의 출근길이여 이젠 안녕...!


근무 환경을 원하는 대로 세팅할 수 있습니다. 각자 집중하기에 좋은 환경이 다를 텐데 그에 맞춰 업무 환경을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없습니다. 대화를 이메일과 채팅으로 나누기 때문에 텍스트로만 의사를 간결하게 전달하면 됩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다들 가까이에 있는 느낌은 왜 때문에죠?


필요할 때 좀 더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곧바로 쉴 수 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이렇게 하기가 어렵겠지만 집에서 일하고 있다면 잠깐 책상에서 벗어나 쉬는 게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단점


말 한마디로도 충분할 일이 조금 번거로워집니다. 다른 분들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 계시다면 곧바로 대화를 나눠서 일을 처리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메일이나 채팅으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역으로 모든 대화 내용이 메일이나 채팅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자칫 잊어버리거나 놓치기 쉬운 사항들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있다...

다른 직원과 교류할 기회가 적습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과 의사소통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거나 학습할 기회가 생기기도 하는데 리모트로 일하다 보면 그럴 기회가 적어지는 게 아쉽습니다.

XX 님의 업무력 강화 기회가 1만큼 증가하였습니다.

쉽게 유혹에 빠지거나 방해받기 쉽습니다. 아무도 감시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데다 집에는 즐길 거리가 있게 마련이죠. 하지만 해야 할 일들이 관리되고 있고, 일정이 있기도 하며, 무엇보다 자율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업무 체계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원칙을 세우고 따르는 편입니다. 앞서 9~6시간 근무 체계도 이런 원칙의 일환이죠.

이럴 땐 오히려 내근직 직원 수가 적은 사무실이 더 편하겠네요.

쾌적한 사무실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아주 더운 날에는 에어콘이 빵빵하게 나오는 사무실이 그립기도 합니다. 게다가 집에서 에어콘을 틀면 전기 요금은 그대로 생활비에 더해지죠. 오랫동안 집에서 일하다 보면 맛있는 커피, 빵빵한 에어콘, 더욱 빠른 인터넷 환경이 구비된 사무실이 아주 가끔 그립기도 합니다.

다음 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작가의 사생활'이라는 웹툰의 '#18. 재택근무' 편을 보시면 앞서 말씀드린 리모트의 장단점과 더불어 리모트의 여러 면모를 좀 더 실감 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도구

그동안 리모트를 하면서 활용하고 있는 도구를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의사소통
먼저 거의 모든 의사소통을 이메일로 처리합니다. 업무용으로 구글 지메일(Gmail)을 사용하고 있는데, 회사의 업무 시스템 기반이 구글 앱스 기반이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이메일 시스템이라서 익숙합니다.
실시간으로 의사소통할 때는 슬랙(Slack)을 사용합니다. 재작년부터 슬랙을 사용하기 시작해서 대화 주제에 따라 여러 개의 채널을 만들어서 관리합니다. 리모트 초기에는 구글 행아웃을 주로 사용했었는데 이전 채팅 기록 검색은 강력하지만 주제별로 대화를 일관되게 유지하기 힘든 구조라서 슬랙으로 전환했습니다.
그 밖에 이메일이나 슬랙을 사용하기가 불편하거나 비효율적일 때는 전화 통화로 의사소통합니다. 다만 전화 통화의 경우 통화 내용이 기록으로 남지 않아서 나중에 이력을 추적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가급적 자제하고 급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을 때만 주로 사용합니다.


일정 관리
구글 앱스에서 제공하는 구글 캘린더를 사용해 일정을 관리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을 간략하게 구글 캘린더에 표시해서 각자의 일정을 공유합니다. 개인 일정과 분리해서 회사 업무 일정을 표시하는 캘린더를 별도로 만들고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문서 관리
구글 드라이브를 이용해 문서를 관리합니다. 간단한 형식의 문서는 손쉽게 만들고 회사 내에서 공유할 수 있고, 이메일에 손쉽게 첨부하거나 이메일에 포함된 문서를 구글 문서 도구에 업로드하기도 쉽습니다.


기타 자료 관리
작업한 파일들은 본사에 있는 NAS로 업로드됩니다. 동기화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업 중인 자료가 계속 업로드되어 백업되고 각 파일의 버전 관리까지 가능해서 문제가 생기면 이전 버전으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사실 앞에서 말씀드린 도구들은 다른 회사에서도 많이 활용 중인 도구일 테니 특별한 점은 없습니다. 리모트의 경우 대부분의 업무를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처리하다 보니 이런 도구들을 좀 더 많이 쓰는 것뿐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리모트를 하면서 나름의 유용할 만한 팁을 정리했습니다. 리모트만을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리모트의 특성상 주변 환경의 방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제 나름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법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브라우저 분리
업무를 하다 보면 개인적인 용무를 봐야 할 때도 있는데 집에서 주로 쓰는 컴퓨터가 한 대뿐이라서 개인적인 일과 회사 업무를 동시에 봐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환경을 분리하는 것이 여로모로 편리합니다.
『리모트: 사무실 따윈 필요 없어!』의 209쪽에 나오는 “두 대의 컴퓨터”처럼 컴퓨터를 아예 개인용과 업무용으로 분리하거나 PC 계정을 분리하는 방안도 있는데, 저는 브라우저를 개인용과 업무용으로 분리하는 방안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용으로는 구글 크롬을 사용하고 업무용으로는 파이어폭스를 사용합니다.


공간 분리
리모트를 하다 보니 생활과 업무가 한데 섞이는 경우가 많은데, 업무공간을 별도로 만들면 집중해서 일하는 데 좋습니다. 가령 아이가 갑자기 쳐들어올 때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꾸준히 ‘아빠 일하는 시간(방)이야’라고 주의를 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활과 업무가 분리됐습니다. 공간이 분리되면 생활 모드와 업무 모드를 분리하기도 쉽습니다. 업무 공간에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업무 모드로 전환되는 거죠.


시간 배분
앞서 9시~6시간제를 고수하는 이유를 설명하긴 했지만 그 시간 안에서도 시간을 나눠서 관리하는 편이 좋습니다. 가령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1시간 동안은 회사에 공유하거나 특기할 만한 소식, 긴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에 할애하고,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는 오래 집중해야 해야 할 일을 할당하는 것입니다. 즉, 오전에는 하루가 시작되는 시점이기에 약간 어수선하고 집중하기가 힘들기에 그리 집중하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업무 효율성이 높고 장시간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은 오후 시간대에 배분하는 식입니다.   


결론


지금까지 보셨겠지만 리모트라고 해서 사실 특별한 부분은 없습니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일반적인 근무시간에 다른 회사에서도 많이 사용 중인 도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리모트를 위한 특별한 도구를 도입해서 사용하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리모트는 이런 도구를 최대한 활용하는(활용할 수밖에 없는) 업무 방식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업무의 특성상, 그리고 비교적 초기부터 리모트에 적합한 업무 형태를 유지해 왔기에 자연스럽게 리모트로의 전환도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 형태가 무엇이든 한정된 시간 안에 높은 생산성과 업무 성과를 내는 것이겠죠. 다행히도 저에게는 리모트가 효과적이고 유익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느냐 집에서 일하느냐의 비중 차이뿐, 결국 업무의 본질은 변함 없습니다.



* 커버 사진 출처: https://www.pexels.com/photo/woman-lying-on-sofa-with-cat-in-her-foot-909620/

* 본문 그림 출처: 《리모트: 사무실 따윈 필요 없어!》(위키북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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