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엄청난 관세를 부과한 것과 별도로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제한기업 명단에 올렸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외국 기업의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따른 조처였다.
그동안 화웨이는 여러 국가의 기밀이나 정보를 빼돌려 중국 정부로 보낸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화웨이가 민간 기업인 듯해도 실상은 중국공산당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점, 중국의 국가 정보법에 따르면 정부 정보기관은 기업으로부터 어떠한 정보라도 공유받을 수 있다는 점, 실제 화웨이 임원의 스파이 행위가 여러 건 발각됐다는 점, 과거 노텔이라는 기업의 기밀들을 송두리째 빼갔던 전력 등을 의혹의 근거로 들고 있다. 비록 화웨이 제품은 아니었지만 중국산 CCTV에 백도어가 설치된 사례가 보고된 것도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국가 기밀이나 정보는 암호화되어 전송되므로 네트워크에서 이를 빼돌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점을 두고 화웨이를 공격하는 미국은 분명 다른 의도를 갖고 있다. 미국이 진정으로 걱정하는 문제는 통신의 불능화다. 언제든지 화웨이는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 미국 내 설치된 통신장비의 백도어를 이용해 통신장비를 마비시킬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미래의 전쟁은 사이버전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들이 함께 천명하고 있는 바다. 미국은 이에 대비하고자 화웨이 장비의 사용을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독일, 영국, 폴란드 등 동맹국들에게도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미국의 군사 기지가 있는 나라들이다.
미ㆍ중 간 무역전쟁이 한참인 와중에 5G의 첫 상용화가 이뤄졌고, 5G 통신장비의 선두주자인 화웨이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5G는 더 이상 스마트폰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5G는 모든 것의 연결을 목표로 삼고 있다. 5G가 실제로 구현된다면 모든 기기가 연결되고 데이터가 모이는 기지국이나 중계기 등 각종 통신장비는 초연결사회의 핵심이 된다. 만약 이 장비들에 마음대로 접근하고 조작할 수 있다면 초연결사회를 좌우할 수 있다. 미국은 이점을 우려하고 있고, 화웨이를 콕집어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문제를 사이버전 대응이라는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정의하기는 무리다. 화웨이 문제를 포함한 무역전쟁을 이해하는 큰 그림은 새로운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움직임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5G로 대변되는 초연결사회에서 미국이 여전히 첨단통신기술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한국경제TV 화면 캡처, 5월17일]
미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견제와 함께, 국내 정책을 통해 5G 관련된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5G를 향한 경기가 시작됐다. 미국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며 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5G가 무엇이길래 미국은 이처럼 야단법석을 피우는 것일까? 5G는 4G와 어떻게 다른가?
5G 서비스는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2019년 4월 3일에 개시됐다. 통신3사가 거의 같은 시각에 개통 테이프를 끊었다. 이는 직전 해에 진행됐던 5G 주파수 경매 결과에 따른 것이다. 당시 주파수 경매에 총 3조6183원이 사용됐고, 아래 표와 같이 주파수가 할당됐다.
위 표를 보면 4G LTE와 다른 점이 몇 가지 보인다. 첫째, 단말에서 기지국으로 신호를 보내기 위한 상향 주파수 대역과 기지국이 단말로 신호를 보내기 위한 하향 주파수 대역의 구분이 없다. 4G LTE를 비롯해 1G, 2G, 3G 때에는 상향 주파수 대역(업링크)과 하향 주파수 대역(다운링크)이 구분돼 있었다. 4G 때에도 상향, 하향을 하나의 주파수 대역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5G에서는 상향 주파수 대역과 하향 주파수 대역을 어떻게 구분할까? 이미 대역 구분을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업링크와 다운링크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5G에서 업링크와 다운링크는 동일한 주파수 대역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은 3.6GHz~3.7GHz 사이를 사용한다. 5G는 이 주파수 대역을 시간으로 매우 잘게 나누어 업링크와 다운링크로 할당한다. 예를 들어, 1분을 60초로 나누어 1초는 업링크, 2초는 다운링크, 3초는 다시 업링크로 사용하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을 시분할다중방식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상향대역과 하향대역으로 구분하는 것을 주파수분할방식이라고 한다. 시분할방식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업링크와 다운링크의 할당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운링크가 많이 사용된다면 다운링크에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용자는 업링크보다 다운링크를 많이 사용한다.
둘째, 엄청난 너비의 연속된 주파수 대역이다. 3.2GHz 대역에서는 100MHz 대역폭이 할당됐고, 28GHz 대역에서는 무려 800MHz 대역이 할당됐다. 4G를 비롯해 이전 세대에서는 기껏해야 20MHz 대역폭을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대역폭은 데이터의 전송 속도와 직결된다. 대역폭이 넓을수록 빠른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다. 2차선 도로보다 4차선, 8차선 도로가 단위시간당 더 많은 자동차를 통과시키는 것과 같다. 이처럼 넓은 대역폭은 5G가 4G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더 빠른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같은 5G지만 28GHz 대역을 사용하는 경우 3.2GHz 대역을 사용하는 경우보다 8배 더 빠른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다.
셋째,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높은 주파수 대역의 사용이다. 1G에서 800MHz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주파수 대역은 점점 높아졌다. 1.8GHz가 사용됐고, 2.5GHz가 사용됐다. 그리고 5G에 들어서면서 3.2GHz가 상용화됐고, 28GHz가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높은 주파수 대역으로 옮겨 가는 이유는 낮은 주파수 대역에 비어 있는 영역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 사용 중인 주파수가 사용되지 않게 되면 해당 주파수를 5G에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는 한 현재 사용되고 있지 않은 높은 주파수 대역을 사용해야 한다. 밀리미터파와 같은 주파수 대역은 그동안 기술 부족으로 활용이 어려웠지만(그래서 현재 비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술 발전 덕분에 활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눈 앞에 다가와 있지만 아직도 그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5G 이동통신의 비전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기존의 4G에 비해 20배나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이며, 둘째는 4G보다 10배나 많은 기기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다는 것, 셋째는 4G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한 초저지연이다.
첫째, 5G의 데이터전송 속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초고해상도 기반의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 및 홀로그램 등 대용량 전송이 필요한 서비스를 감당하기 위해 사용자당 초당 100메가비트에서 최대 20기가비트까지 훨씬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를 목표로 한다. 이 때문에 ‘광섬유 없는 광 네트워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위해 현재 이동통신에서 사용 중인 주파수 대역보다 훨씬 높은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할 예정이다. 그래야만 이동통신사별로 더 큰 주파수 대역폭을 할당할 수 있다. 잠정적으로 밀리미터파에 해당하는 6GHz 이상의 주파수가 사용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28GHz를 표준으로 밀고 있다.
한편, 밀리미터파를 사용함으로써 파장이 짧아지고, 짧은 파장 덕분에 더 빠른 속도로 통신이 가능하다. 하지만 파장이 짧기 때문에 신호가 벽, 나무 등 물질을 관통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따라서 통신 기기와 기지국 간의 거리가 가까워져야 하고, 과거보다 더 많은 기지국을 설치해야 한다.
4G의 경우 700~1000미터마다 기지국이 설치돼 있다. 28GHz를 사용하는 5G의 경우 250~300미터마다 기지국이 설치돼야 한다. 즉, 과거보다 4.3배의 기지국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막대한 투자 비용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5G 이동통신 서비스 구축이 완료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초연결이다. 5G에서는 단위 면적당 더 많은 기기가 동시에 연결될 수 있게 한다. 수많은 가정용, 산업용 IoT 기기들이 상호 연결되어 동작할 미래 환경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1제곱킬로미터 면적당 1백만 개의 연결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셋째, 초저지연성이다. 5G 단말기를 통해 인터넷 검색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스마트폰에서 검색어를 입력한 후 검색 버튼을 누르면 통신이 시작된다. 검색어는 이동통신망을 이용해 기지국으로 전달된 다음, 유선망을 통해 인터넷망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인터넷망을 통해 구글 서버에 도착한다.
구글의 처리 과정을 거친 다음, 검색 결과는 반대 경로를 따라서 단말기로 되돌아온다. 이때 구글 서버의 처리 과정에 소요된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소요시간이 네트워크 지연 시간이다. 이는 순전히 네트워크 상에서 데이터 전송을 위해 소요된 시간이다. 이 시간이 5G에서는 1밀리초 이하가 된다. 4G에서는 20밀리초다.
초저지연은 미래의 중요한 애플리케이션들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율주행차를 들 수 있다. 미래의 자율주행차가 클라우드의 인공지능과 연결돼 있고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보행자를 발견하고 즉시 멈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보자. 클라우드 상의 인공지능에게 정보를 보내고, 다시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지에 따라 완전히 정지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시속 100킬로미터로 주행하고 있었고, 네트워크 지연이 1초라면 자동차는 무려 27미터를 움직인 다음에 완전히 정지하게 된다. 4G LTE라면 네트워크 지연이 20밀리초이므로 0.81~1.35미터를 움직인 다음 정지한다. 5G라면 1밀리초이므로 0.027미터를 움직이고 정지하게 된다.
군집주행의 경우에도 초저지연은 중요하다. 자율주행차들은 선행하는 차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뒤따르게 된다. 앞차가 속도를 늦추게 되면 이에 맞춰서 뒤차들도 즉각적으로 속도를 줄여야 한다. 5G를 이용한 초저지연이 가능한 상황에서는 마치 자동차들이 보이지 않는 케이블로 연결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림] Everything You Need to Know About 5G(IEEE Spectrum),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GEx_d0SjvS0&t=73s
우리나라에서 5G 가입자 수는 하루에 1만 명 꼴이며, 50여 일이 지난 현재 총 가입자 수는 50만 명에 이른다. 이는 4G LTE 도입 초기와 비교하면 매우 빠른 수준이다. 당분간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이동통신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덕분에 5G 보급은 계속해서 빠른 속도를 보일 것이다.
하지만 5G로의 전환이 순조롭게만 진행되지 않을 전망이다. 첫째, 진정한 의미의 5G는 28GHz와 같은 밀리미터파 주파수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밀리미터파 주파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인체 유해성과 관련해서 여러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기상위성이 사용하는 전파와의 간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8GHz 대역을 사용하는 주파수의 대역폭은 무려 800MHz이며, 데이터 전송 속도는 초당 수십 기가비트가 될 수도 있다. 이는 단말과 기지국 사이의 무선 데이터 전송 속도다. 문제는 기지국에 수많은 단말들이 연결되므로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기지국을 통해 오고 가게 된다는 것이다. 기지국은 통신사 내부 네트워크를 통해 인터넷과 연결되는데, 이 사이에 엄청난 규모의 광케이블을 설치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밀리미터파 5G 기지국은 일부 장소에만 집중적으로 설치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지역은 3.2GHz를 사용해야 한다.
둘째,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공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5G의 유용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다. 4G LTE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5G가 목표로 삼는 전송 속도, 지연 시간, 연결 기기 수는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적합할 뿐, 일반 사용자들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4G가 처음 소개됐을 때도 이와 유사한 반응들이 있었다. 그런데 여러 성공적인 스마트폰앱들이 일반 사용자들을 위한 4G의 유용성을 입증했다. 5G도 성공하려면 킬러 애플리케이션들이 나와야 한다. 현재로서는 VR이 대표주자지만 소비자들에게 큰 공감을 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소비자들이 5G의 유용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통신사들이 아무리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더라도 5G의 보급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