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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트리 WIKITREE Nov 02. 2015

한 트렌스젠더가 밝힌, 목숨 걸고
수술 결심한 이유

"나는 여자다 그리고 남자였다" 성전환자가 털어놓은 이야기

<도도화장품 '빨간통 매니아' CF>


"새빨간 거짓말" 


2001년 미녀가 TV에 나와 침을 꼴깍 삼키며 읊조리듯 말을 건네는 CF는 단숨에 방송인 하리수 씨를 스타덤에 올려놨다. 한국 사회에 '트랜스젠더' 성전환자가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첫 번째 사례였다. 


이후 이시연, 최한빛 씨 등 트렌스젠더 연예인이 속속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접수하며 트렌스젠더는 좀 더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트렌스젠더'는 아직 사람들에게 낯설다.


"고등학생 때 방안에서 몰래 교복 치마를 입어보고 숨이 막히도록 울었다"라고 덤덤하게 말을 시작하는 트렌스젠더 A씨 이야기를 들어봤다


< pixabay>


인터뷰 전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입술에 연신 물을 들이킨 건 필자였다. 고백컨데 필자는 이태원 거리를 지나다 트렌스젠더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다. 잘못된 편견임은 알면서도 그 당시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 탓에 그를 만나기 전부터 괜한 긴장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는 역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소매 끝을 두어 번 접어 올린 흰색 남방에 슬림핏 슬랙스, 뾰족코가 매력적인 높은 굽의 검은색 스틸레토 구두와 허리춤까지 늘어뜨린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에 손에는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네일아트까지. 그는 누가 봐도 '여자'였다. 


그는 인터뷰 장소 근처까지 남자친구와 동행했다며 남자친구는 근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정말 예쁘시네요" 


'어색하면 어쩌나' 질문 리스트를 잔뜩 준비해갔지만, 대뜸 필자 입에서 튀어나온 첫 마디자 소감이었다. 필자의 말을 들은 그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주변 분들은 A 씨가 트렌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친한 친구들과 가족들은 알고 있고 이번에 새로 취직한 곳에서는 몰라요. 말할 생각은 없구요" 


A 씨는 간혹 회사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 학창 시절 이야기가 나올 때 곤욕스럽다고 했다. 가장 당황했던 건 군시절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을 때라고. 


A 씨는 "지금은 여자지만 그렇다고 있는(남자로 지냈던) 과거를 다 부정하고 지워버릴 순 없잖아요"라며 자신은 과거(남자였을 때나)나 지금이나 자신을 인정하지만, 타인에게도 이를 모두 받아들이고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욕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수술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성전환 수술은 엄청난 양의 수혈이 필요한 데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한다고 한다. A 씨에 수술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묻자 A 씨는 "한 번이라도 나답게, 나를 인정받으면서 살고 싶었다"라는 말과 함께 성별 때문에 사랑에 실패했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대학을 고향을 떠나 타 지역으로 진학했고 남성스러운 짧은 머리에서 벗어나 단발머리를 하고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같은 과 친구들은 그가 '당시'에는 남자였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과 사람들은 A 씨의 곱상한 외모 탓에 으레 여자인 줄 알았다고.


그러던 중 A 씨에 한 남성이 다가왔고 둘은 점점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됐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A 씨의 갈등은 심해졌다. 스스로는 여자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말할 수 없는 내적 갈등도 심했고 남자친구가 바라는 스킨십도 할 수 없어 둘 사이에 다툼도 잦아졌다. 


결국 A 씨는 자신이 남성임을 털어놨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남자친구는 A 씨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때 목숨을 건 수술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남자친구는 트렌스젠더인 것을 알고 있나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는 고개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찾아왔고 그는 커피 잔을 들고 한 모금, 두 모금 말없이 음료를 넘겼다.


"많은 고비가 있었어요" 


마침내 침묵을 깨고 그가 던진 말. 그는 남자친구를 과거 아르바이트 하던 곳에서 함께 일을 하며 알게 됐고 처음에는 짝사랑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트렌스젠더임을 고백하던 때 남자친구 얼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완전히 하얗게 질러버렸다고. 


남자친구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며칠 뒤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고 했다. 


해피엔딩.


"성전환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셨어요?"


필자의 질문에 A 씨는 "예비군 훈련"이라는 대답을 했다. 


실제 과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긴 생머리로 훈련장에 나타난 여성 트렌스젠더 사진이 올라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군대를 다녀온 뒤 성전환수술을 한 경우에는 엄연한 '군필자'이기 때문에 호적 정정을 하기 전까지는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지금의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개명만 해도 바꿔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데 하물며 성을 바꾸면 현실적으로 감당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트렌스젠더로 살면서 현실에서 부딪히는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수술 비용 때문에 진 빚을 갚는 것도 솔직히 조금 힘들구요"라고 말하며 그는 어딘지 모르게 그늘진 웃음을 지었다. 


이어 트렌스젠더들은 주민등록초본에 여전히 남아있는 성별 정정 흔적 때문에 때로 곤란을 겪는다고 했다. 


현행법상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성별정정과 관련된 사항이 표기되지 않지만 주민등록초본의 경우 '1'로 시작하는 이전 주민등록번호가 표기돼 있다. 기본증명서의 경우에는 "특정등록사항란의 성별기록 "남"("여")을 "여"("남")로 정정"이라는 문구와 정정 전후의 주민등록번호가 표기된다. 


A 씨는 이 때문에 이력서와 함께 주민등록초본을 제출할 수 없어 바라던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포기한 적도 있다고 했다. 

< pixabay>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테이블 위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남자친구 인듯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는 A 씨 표정이 밝았다. 잠시 자리를 떠나 통화를 하는 모습이 행복하기 그지없는 여느 커플과 같았다. 아마도 남자친구가 빠른 귀가를 독촉하는 듯 했다.


슬슬 인터뷰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그가 필자의 화장품 파우치에 관심을 보였다.


최근 A 사에서 내놓은 틴트가 가격은 저렴한데 발색은 꽤 좋다고 귀띔하자 "당장 테스터 하러 가봐야겠다"라며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필자에게는 B 사에서 파는 매니큐어가 광택이 예쁘다고 추천을 해줬다. 필자도 발라보러 가겠다고 답하며 다음에는 함께 백화점으로 화장품 구경을 가기로 약속했다. 


가게 문 앞을 나서는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앞을 지나갔다. 이를 본 그는 "다녔던 고등학교가 지금은 공학으로 바뀌어서 과거와 비교하면 한결 해명할 거리는 줄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가 다닐 당시 학교는 남자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여자인 그가 왜 남자고등학교를 다녔는지 취직을 할 때나 학창시절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곤란했다고.


"다음에는 중학교가 공학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중학교 역시 남자중학교를 나온 그가 농담 반 진담 반 큭큭 웃으며 뱉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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