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전문기업 '에이스그룹'이 이달부터 국내 업계 최초로 '주4일 근무제'를 시작했다. 장시간 근로에 익숙한 우리나라 직장인 사이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12일 오후 서울 금천구 에이스그룹 사내 카페 '카페 클라우드'에서 고경선(35) 트라모푸사업부 차장, 김동윤(28) 시각디자인팀 주임, 박지희(27) 마케팅팀 사원을 만났다. 주4일제 소감을 메모지에 짧게 적어달라고 했다.
주변(지인)으로부터의 전화? 일과 휴식에 대한 진지한 접근? (고경선 차장)
바쁜 일상 속 여유가 생겼다 (김동윤 주임)
매주 연휴 같은... 가족과의 시간... 나를 위한 투자... 폭풍 같은 목요일... (박지희 사원)
박지희 사원이 적은 '폭풍 같은 목요일'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 더 쉬게 되면서 더 바빠지지 않았냐?"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박 사원은 "일하는 속도가 더 빨라져야 한다는 느낌? '불목'을 즐기려면"이라고 말했다.
김동윤 주임은 "이전보다 업무 일정을 더 타이트하게 잡는다. 더 집중해서 일하고 있다"며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밝혔다.
고경선 차장은 첫 주4일제 근무가 끝난 지난 목요일(7일), 에이스그룹 트라모푸사업부 사무실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6시에 내가 제일 먼저 사무실을 나갔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주4일제가 아직 어색해서 그런지 아무도 퇴근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꼬를 터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고 덧붙였다.
난생 처음 누리는 주4일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혜택이었다.
주4일제가 선사한 '금요일의 여유', 세 직원은 무엇을 했을까?
그냥 맘 편히 놀았다. 금요일에 약간 백수(?)가 된 느낌도 들었다. (고경선 차장)
병원에 갔다. 아주 여유롭게... (김동윤 주임)
집에 있는 차로 운전 연습을 했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차가 막히지 않아 좋았다. (박지희 사원)
앞으로 이들은 '쉬는 3일' 동안 학원 수강, 캠핑, 여행 등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들은 주4일제를 반겼지만 '책임감'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주4일제 도입 때문에 근무시간을 조정한다든가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건 없다.
고경선 차장은 "주4일제 등 회사 복지를 누리려면 자신을 잘 컨트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게 나중에 자신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마냥 좋기만 한 게 아니라 무게감도 느껴진다"고 밝혔다.
주4일제를 시행한 이 회사 이종린(36) 대표이사도 만나봤다.
이 대표는 "지난해 경기가 안 좋았다. 그래서 연봉을 올려줄 수 없었다"며 "직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시간적인 여유라도 주자며 주4일제를 하게 됐다"며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주4일제를 시행했지만 직원 급여나 휴가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아직 그런 사례는 없지만 불가피하게 금요일에 일하게 되면 하루 월차를 주겠다고 했다.
100% 찬성할 듯한 주4일제 도입. 하지만 사내 설문조사에서 반대 의견도 있었다. 이종린 대표는 "직원 80% 정도가 찬성해 시행하게 됐는데, 당시 20% 정도는 반대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일부 장기 근속자들이 반대했다"며 "'그동안 주30시간 근무도 좋았는데 복지를 더 하는 건 과하다', '직원들이 일을 안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고 덧붙였다.
에이스그룹은 2010년 창립 때부터 '하루 6시간 근무제'를 시행해왔다. 오전 10시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하고, 점심 시간은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 2시간이다.
이 대표는 시간적 여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주4일제 도입의 가장 큰 취지는 자기계발"이라고 밝혔다. 이어 "장기적으로 볼 때 자기계발로 성장한 직원들이 회사에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이스그룹은 스마트 주변기기 브랜드 '아이페이스(iFace)'로 잘 알려진 업체다. 유아용품 브랜드 '스칸디파파', 전통문화 디자인연구소 '트라모푸코리아' 등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