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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비키 Sep 23. 2020

'러브레터' 그리고 불법복제된 문화

-불법복제가 합법으로 둔감한 그 시대의 일본 문화

1998년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문화는 정식적인 루트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1998년부터 2004년까지 6차례에 걸쳐 진행된 일본 대중 문화 수입 허용 정책을 통해 일본 문화는 한국으로 정식 수입이 되기 시작했다.


'홍콩 느와르의 배신과 일본 문화의 수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홍콩 문화들을 대량으로 받아 들이면서 각양각색의 문화를 소비하는 청년층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청년층들에게 홍콩 문화는 패션,영화,산업등 다양한 분야에서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기점을 중심으로 더 이상 대중은 홍콩 영화 및 산업,패션에 열광하지 않게 되었다.


홍콩 미디어 산업을 지배하던 스타들은 홍콩을 떠나면서 더 이상 홍콩 문화의 매력이 없어지기 시작했기때문이다. 이 쯤 많은 청년층들 사이에서 대안으로 찾았던 문화가 바로 일본 문화다. 비디오의 보급과 휴대용 워크맨의 보급이 함께 이뤄지면서 일본 대중 문화의 복제와 유통이 쉬워지면서 대학가 및 청년층을 중심으로 일본의 게임과 애니, 그리고 음악이 대량적으로 불법 유통이 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불법이지만 그 시기에는 그 모든게 합법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당시 용산은 불법 복제된 비디오 및 CD들을 쉽게 구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용산을 찾아 일본 문화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보면 이 시기가 용산의 최대 전성기였다고 할 수도있다.


'엑스재펜 그리고 '러브레터' 이야기


1990년대부터 한국 산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로 인해 가정에 TV보급률과 비디오, 여기에 휴대성이 편리해진 워크맨들이 빠르게 소비되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이러한 산업발전을 바탕으로 일본 문화를 찾는데 더욱더 적극적이 되었다.


그렇게 일본의 음악과 영화,애니 산업은 복제의 편리성을 이유로 대학가 및 청년층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논리도 함께 포함이 된다. 대량으로 불법 복제를 할 수 있는 전문 꾼(?)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들은 용산을 중심으로 빠르게 복제된 일본 문화를 경제적 논리를 이유로 뿌리기 시작했다. 저작권과 불법복제에 대한 규정이 없던 당시에는 어떻게보면 불법이지만 불법으로 간주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중 청년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문화가 바로 엑스재팬과 러브레터였다. 러브레터는 1995년 일본에서 개봉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정식 일본 문화 수입을 통해 1999년 11월에 개봉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될 당시 이미 '볼 사람은 다 봤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불법 복제된 비디오 테이프등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관람을 끝낸 상황이었다.


엑스재팬 역시 국내에서 이미 불법 유통된 CD와 테입등으로 인해 청년층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가수가 되버렸다. 특히 그들의 대표곡이었던 'Endless Rain'은 대학가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물론 정식으로 일본 대중 문화가 수입되기 이전부터..


'방송사의 일본 문화 베끼기


일본 문화를 불법으로 복제하는 일에 방송국도 나섰다. 1999년 MBC를 통해 방영되었던 드라마는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보여주었던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러브 제너레이션'을 표절했다는 이유와 시청률 저조로 조기 종영을 했다. 


방송사의 일본 문화 베끼기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각조 예능 및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셋트를 따라하는 단순한 베끼기 부터,컨텐츠등 방송사는 항상 일본 문화 베끼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론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진 일본 문화는 정식으로 일본 문화가 수입되기 이전까지 빠르게 퍼져나갔다. 여기에는 산업의 발달도 기여를 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논리도 포함이 된다. 수요가 있기때문에 불법복제가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었고, 당시만 해도 불법복제에 대한 법 자체도 사실 거의 없었던 시기였기에 그것이 불법이 아닌 시기기도 했다.


어떻게보면 가장 자유로웠던 문화의 시절에 대중들은 불법복제된 문화들을 소비하면서 그렇게 그 시기를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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