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놓친 하늘색 양장본 노트
고등학교를 추억하면 영원히 잊히지 않을 친구가 있다.
대학 생활의 낭만에 흠뻑 빠져 이전 인연들의 연락을 등한시하던 나. 그 시절에 연락이 끊긴 내 문학 친구 민정이. 고3 시절, 그녀와 함께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시를 외우던 국어 시간이야말로 '나'라는 장편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틸컷 중 하나인데 말이다.
아즈망가 대왕이란 만화를 아는가? 거기에 등장하는 부산댁(오사카)과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민정이는 말투도 행동도 느릿느릿했다. 힘 빠진 가느다란 목소리로 들리지도 않게 중얼거려 한 번 더 되물었어야 했던 아이. 가끔 답답했고 종종 존재감이 없었지만 우리 반 대부분이 좋아하던, 아니 싫어하지 않던 민정이.
열아홉이 동트는 신학기에 신비한 방법으로 나에게 다가와, 스물하나 여름의 어느 지점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 너. 어디에서 무얼 하니?
학년이 막 바뀌어 어색함이 감돌던 3학년 2반의 어느 날. 내 사물함에는 의문의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너는 나를 어둠에서 구해줬어. 정말 고마워.]
머리 위로 물음표를 잔뜩 달고는 삼일 정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쪽지의 주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왜인지 행동이 어설픈 아이. 내 발표 말미에 소리 없이 손뼉을 치는 아이. 청소 시간에도 내 주변을 티 나게 맴도는 아이. 그냥 '같은 반 아이1' 이라 생각하고 지내던 민정이었다. 며칠 후 나는 인기척을 숨기고 민정이의 옆에 스윽 다가가 '다 티난다'고 말했다. 그 애는 인위적인 몸짓으로 화들짝 놀라며 딸꾹질을 했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들은 민정이의 목소리였다.
얼마 후, 민정이 그런 쪽지를 내 사물함에 넣어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애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작스러운 두통이 시작되어 뇌종양 수술을 받았었고, 아슬아슬하게 진급이 가능했던 정도로 병원 생활을 오래 했었던 것이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스스로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렇게 우울감에 빠져있던 3월의 신학기, 생일을 맞아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축하를 나누던 낯선 여자애가 자신의 팔목을 끌며 같이 케이크를 먹자고 했댄다. 이상하게도 그게 어둠에서 자신을 꺼내준 구원 같았다나... 그때 낯선 손길을 내민 여자애는 나였고, 그 작은 호의가 우울한 소녀였던 민정이의 마음이 열어버린 듯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민정에게 일련의 책임감 비슷한 걸 느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이후로 그 애를 부쩍 챙겼다.
민정과 나는 문학을 좋아했다. 우리가 따르던 문학 선생님은 엄격한 사감 같은 이미지였는데, 종이 친 후 교실에 들어오는 학생을 복도로 쫓아내 수업을 듣는 대신 시 한 편을 암기하게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 벌칙을 싫어했지만 나는 두어 번 정도 일부러 벌칙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민정도 가끔은 함께 했다. 큰 창 밖으로 펼쳐진 푸른 하늘, '정숙'이라는 피켓이 걸린 조용한 복도에 덩그러니 서있는 것만으로도 묘한 일탈감을 느끼던 나이. 민정과 나는 나란히 서서 창 밖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수업 말미면 아이들 앞에 서서 외운 시를 낭송해야 했는데, 머리 좋은 민정이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백석의 시를 통으로 외웠다. 시낭송을 할 때면 평소와는 다르게 긴 호흡으로 막힘 없이 소리를 냈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교실을 잔잔히 채우면 나는 소리 없이 손뼉을 쳤다.
민정은 어느 날 하늘색 양장본 노트를 내 사물함에 넣어놨다. 그 노트에는 죽음에 대한 단상,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를 따라한 짧은 소설, 수업시간에 내가 했던 발표 감상 등이 적혀있었다. 나는 민정이의 글에 답글을 달거나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적어서 공유했다. 노트는 교실 뒤 학급 도서 사이에 꽂혀있기도 했고, 민정이 책상에 쌓아둔 교과서 더미에 있다가, 나의 책상 서랍이나 그 애의 사물함에서 발견되곤 했다.
하복에서 춘추복으로 갈아입기 직전인 가을의 시작점, 우리의 수능은 가까워져만 갔고 민정은 어느 순간부터 그 시절엔 잘 볼 수 없던 수입과자들을 매일 아침 잔뜩 들고 왔다. 반 아이들에게 매번 과자를 나눠주며 그것을 얻게 된 출처를 설명해 주었는데, 굉장히 드라마틱한 내용이었다. 마치 요즘의 웹소설이나 오티티 드라마에서 볼 법한. 반 아이들은 신기하게 생긴 과자들을 까먹으며 맞장구를 쳤다. 진지하게 듣는 아이가 있는 반면, 뒤돌아서 "민정이는 원래 저래"라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 이야기 짓기를 좋아하는 민정이었기에. 나는 과장 섞인 그 조각들을 전부 다 믿기엔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안 믿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게 했던 특별한 말들만큼은 진실이길 바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민정을 절반정도 믿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민정은 수입과자들을 몇 주 더 잔뜩 들고 오다가 어느 순간부터 빈손으로 등교했다.
그 애의 수다를 믿든, 믿지 못하든 우리는 계속 함께 책을 읽었다. 졸업 사진을 찍는 날, 반 친구들과 안 하던 고데기도 하고 얼굴에 메이크업 베이스도 바르며 잔뜩 들뜬 시간을 보내던 게 생각난다. 우리는 얌전한 민정이를 앉혀놓은 후 안경을 벗기고 머리를 볶아주며 환호성을 질렀고 그 애는 부끄러워했다. 민정과 나, 그리고 몇몇은 평소 안 하던 머리스타일로 졸업 사진을 찍었고 결과는 참혹했다. 3학년 2반 학생들 다 함께 졸업사진을 보며 숨이 넘어가라 깔깔 웃었던 겨울. 고3이 끝나가던 계절. 그렇게 소녀들은 각자의 도시, 각자의 상황에서 스물과 스물하나를 맞았다. 민정과 나 또한 졸업식 날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남기곤 각자의 세계로 들어섰다.
대학 생활의 낭만에 흠뻑 빠져 이전 인연들의 연락을 등한시하던 나. 민정과는 틈틈이 서로 문자를 주고받았었지만 그마저도 해가 지나며 뜸해졌다. 그러다가 둘 중 한 명이 번호를 바꾸었고 일상 속에서 번뜩 민정이 생각났을 때, 내가 저장해 둔 "신비의 소녀"는 연락처 목록에서 사라진 후였다. 내가 너무 신경을 안 썼다는 자책도 들었고, 동창들을 통해 민정과 언제든 연락이 닿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안도감도 들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며 내 문학 친구를 하루하루 더 잃어갔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민정의 소식을 모른다.
3학년 2반 동창들도 민정의 소식을 모른다. 수소문 끝에도 민정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다. 그 애와 함께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시를 외우던 시간이 생각난다. '나'라는 장편영화의 인트로가 되는 순간임에도 그때를 함께 했던 친구의 소식을 나는 모른다. 가끔 내 사물함에 놓여있던 쪽지가 생각난다. 열아홉이 동트는 신학기에 신비한 방법으로 다가와 신기루처럼 사라진 너. 내가 놓친 하늘색 양장본 노트. 잘 지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