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내려면 뭐라도 해야겠다고. 그렇게 참가한 시 낭송 대회 -
고등학교 시절은 상상 속에서도 시끌벅적하다. 교실의 끝과 끝을 내달리던 친구들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제자리에 앉는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문학 선생님은 종 친 후 엉덩이가 잘 붙어있는가에 엄격해서 뒤늦게 교실에 들어오는 학생에게는 엄벌을 내렸다. 수업을 듣는 대신 복도에서 시 하나를 다 외운 후 학급 친구들 앞에서 낭송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머지않아 수업 종을 놓친 죄인이 되었고 복도에 있는 커다란 창 앞으로 유배를 갔다. 언덕 위에 있던 내 학교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짙푸른 하늘과 하얀 현무암 같은 구름, 그 뚜렷한 경계를 바라보며 시를 외웠다. 오감이 깨어있던 열아홉 살, 수업 중에 혼자 나와 화장실을 가는 것만으로도 묘한 일탈감을 느꼈던 시절. 시낭송 벌칙을 받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투덜대곤 했지만 나는 특별한 시간 속에 있는 듯 그 순간을 즐겼다. 일부러 늦은 적도 몇 번 있었고, 꽤나 긴 시를 낭송해 친구들에게 박수를 받은 적도 있었다. 물론 이전에 반 쯤 외워둔 것이긴 했지만.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시는 대부분 윤동주였고, 나는 여전히 그를 좋아한다.
몇 년 후, ‘그 지나친 시련과 그 지나친 피로’는 나에게도 찾아왔다. 시가 쉽게 쓰여지는 아픔에 비할 수는 없었으나, 한꺼번에 밀려온 어그러진 꿈과 실연 때문이라 하면 짐작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한동안 앓았고 무력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 버스 하차벨을 눌러주고는 뿌듯해했다. 그러다 정류장에 내려선 앞에 있는 들꽃무리를 보고 이유 없이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깟 거‘ 싶지만 당시엔 꽤나 열이 났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겠지. 이겨내려면 뭐라도 해야겠다고. 사실 그런 다짐을 하게 된 계기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우연히 봐뒀던 시 낭송 경연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자유롭다고 느꼈던 열아홉 창가 유배지가 생각났기 때문일까, 낭송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자신 있는 도전이었다. 당시 부모님이 계시는 지방 본가에 내려가 있었던지라, 집에서 가까운 대구예선에 접수하고 참가비를 납부했다. 하루 종일 일상대화를 나누던 친구들에게도, 딸을 걱정하지만 내색 않던 부모님께도 비밀이었다. 시시콜콜한 것도 터놓고 대화하기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외롭고 고독한 과제였다. 오롯이 혼자만의 프로젝트였다.
날이 다가왔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대구행 버스를 타러 나섰다. 엄마는 행선지를 말하지 않는 내 고집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평소보다 의욕적인 모습에 마음을 놓은 듯 했다.
대회장은 큰 대강당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초등부 경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중간좌석에 앉아서 학생들의 낭송을 들었다. 야무지고 당당해보였다. 좌절을 겪고 나약해진 내가 원하던 모습이었다. 또 한 번 울컥했다. 학생부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그런 식이었다. 곧 일반부의 차례가 되었다. ‘긴장감’이 ‘우울감’을 덮어버리는, 내가 고대했던 순간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순서가 다가올수록 우울이고 시련이고 뭐고 다 버리고 강당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이딴 프로젝트를 세운 또 다른 자아를 실컷 탓했다. 나는 공연장에 오르는 배우도 아니고 고삼이었던 내 앞에는 서른 남짓한 반 친구들뿐이었다고. 나 지금 포기하면 안되겠냐고 혹시.
내 차례가 다음다음으로 다가왔다.
그래. 웅변하던 꼬맹이들만큼 당당해보이진 못할지라도 포기는 하지 말자. 끝나버린 연애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도 시와 함께 뱉어버리기로 했잖아. 나는 사시나무 떨 듯 달달 떨며 무대 위에 올라서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라는 시를 낭송했다.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 중략.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중략. 다시는 묻지 말자/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이미 죽은 새다.
왜 그 시절 이 시를 선택했는지 짐작이 간다. 폭풍 같다가 폭풍의 눈 같았다가 하던 나날들. 실은 쓰러져있던 스스로에게 화가 난 스물여섯 여자애의 심정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는 곧 있을 시상식을 보지 않고 바로 나왔다. 길을 건너 골목을 따라 조금 걸었고, 예쁜 카페를 발견해서 기분이 좋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조금 더 걸었다. 그리고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을 텐데, 그 과정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내 비밀 프로젝트는 그렇게 끝이 났고, 일주일 쯤 지난 후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대구에서의 일을 이야기했다.
이후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갑자기 긍정의 기운이 솟아 넘치는 일도 없었고 다시 응시한 면접에서는 또 떨어졌었다. 나를 떠났던 그 친구가 다른 사랑에 빠졌다는 소식도 들었다. 뒤돌아보지 않는 새가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 살러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