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곶감되기

by 지서원








곶감되기


귀가하면 늦은 밤. 본격적인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얼른 잠에 들어야 하는데 곳곳에 도파민 천지다.

5년 째 꾸준히 하고 있는 게임을 한 판 돌린다. 요즘엔 원피스 애니를 다시 정주행 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상디, 다시금 좋아진다. 상디처럼 다정한 사람을 만나야지.


누군가를 애정으로 만나는 일을 떠올리다 보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결혼 소식들이 생각난다.

할머니나 엄마는 내게 결혼하라 보채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요즘엔 은근슬쩍 스리슬쩍 지나가는 말로 좋은 사람 없냐 묻기도 한다.


글쎄, 사랑의 에너지가 닳아버린 걸까.

가졌던 걸 다 써버린 사람의 사랑 에너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채워지는 걸까?

영화를 좋아하지만 막상 한 편을 다 보기엔 힘에 부치는 가을 밤이다.

러닝타임 두 시간 동안 주인공의 마음에 진심을 다해버리기 때문이다.

점점 꽉 닫힌 해피엔딩이 좋아진다.


지난 주말에 구매한 시집을 세 장만 읽고 자자 하는 날도 있고,

마음이 번잡한 날엔 초보 칼림바 연주자에게 제격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를 더듬더듬 1절 연주한다.

이건 이거대로 작은 성취감을 안겨준다.


손을 쉬면 휴식을 취하는 것 같지가 않아서 타자를 치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벽돌 부수기 게임을 한다.

이런 취미들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아… 도파민에 절여진 나의 뇌인가. 성인 에이디에이치디인 걸까.


요즘 마음이 공허한 것 같기도 해.

주변에는 &가을 타나 봐.& 다섯 마디로 대충 얼버무리지만 마치 나에게 거는 주문 같기도.


아마 가을이 지나면 단단해 질거야.

곶감이 되자. 이대로 후숙되어 물렁한 홍시 말고 열심히 매달려 곶감이 되자.

그래서 가을 바람이 따갑나봐.


얼마전 부터는 조금씩 야외 러닝을 한다.

건강한 바람을 맞고 건강한 곶감이 되기 위해서.

연말에는 다리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그 전까지 도파민을 줄이고 성실히 뛰어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AM 3:00 자몽에이드, 유일한 씬(sce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