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의 사장님 타운홀 후기
회사에서는 분기마다 타운홀 미팅이 열린다. 직원들은 질문하고, 사장님은 대답하는 시간. 한때는 전사가 같은 날 같은 자리에 모여 타운홀을 진행했던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기업이 추구하는 방식이 그렇듯) 효율과 경제성에 따라 분기마다 진행하는 부서 타운홀로 변경됐다.
먼저 다른 부서들의 미팅 로그를 구경하며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야금야금 질문을 모으곤 했다. 업무를 진행하면서 궁금한 점도 많았고, 앞으로 회사가 그리는 문화와 비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첫 타운홀을 앞두고, 업무와 회사에 관한 나의 질문 보따리는 가득 채워졌다. 하지만 막상 내 차례가 왔을 때, 내가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사장님,
저는 너무 심한 결정장애인데요.
조언 좀 해주세요.
당시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기에 이런 질문을 튀어나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뭐 그날도 어제나 오늘처럼 또 고민만 하느라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겠지. 매번 결정을 할 때마다 나는 이게 더 나은 선택인지 고민하느라, 주변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닌지 걱정하느라, 결정을 내리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늘 'Yes'나 'No'라고 대답하기보다는 'Maybe?'라고 말을 흐리는 쪽이었다.
이 지연 행동이 건강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불필요하게 미루는 행동에서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죄책감이나 우울감, 회의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종종 겪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감정에 소진되는 내 모습을 보며 이런 성격을 고쳐보려 참 많이도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매번 눈앞에 놓인 수많은 옵션과 과잉의 세계에서 나는 자꾸만 길을 잃었다.
그래서 이 질문은 문득 떠오른 질문이면서도, 사실은 모두에게 늘 궁금한 질문이기도 했다. 특히 중대한 의사 결정을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어렵고 힘든 결정을 수도 없이 해야 할 때, 다들 어떻게 후회 없는 선택을 할까, 어떤 슬기롭고 똑똑한 과정을 통해 의사 결정을 할까. 또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만 하다가 액션을 못 하는 건 너무 아쉽다고 생각해요. 경험의 가치는 아무도 무시할 수 없어요. 나이만 들었다고 다 현명한 게 아닌 것처럼, 5년 1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액션과 시도를 했느냐에 따라 얻는 것이 많을 거예요." — 사장님의 '결정 잘하는 멋진 꿀팁'이나 '후회 없는 선택의 훌륭한 비결' 같은 걸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사장님 역시 뻔하디 뻔한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수많은 책과 강연에서처럼, '일단 하라', '경험은 중요하다'라는 같은 유형의 답변들. 역시 방법은 없는 건가, 싶은 실망스러운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때, 뒤이어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많이 실패해도 돼요.
좋은 팀, 좋은 문화의 팀이라면
당신의 실패를
팀에서 받쳐주고 같이 끌어줄 거예요.
안 좋은 팀이면
‘너 넘어졌어? 너 무능해 나가.’
인 게 차이인 것 같고요.
함께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는 문화가
우리가 원하는 문화가 아닐까요.
“그냥 해요. 너무 고민하지 말고요. 틀리면, 그냥 틀렸다고 하고요. 잘못했으면 사과하고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머릿속에서 온 드라마만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머리로는 드라마 몇 편 써요. 근데 그건 본인 얘기고, 주변에서 봤을 땐 ‘쟤 가만있네’ 밖에 안 돼요. 뭐든 해보는 게 좋아요. 잃을 게 없다고 봐요. 뭘 해요, 그리고 실수도 해요,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깨져요. So What? 배워서 성장하는 거잖아요.
실수한 것에 대해 지적받고 방향을 잡고 조언받는 게 뭐가 나빠요. 정말로 냉정하게 그런 피드백 주는 사람은 당신을 생각해서 주는 거잖아요. 정말로 아무 관심이 없으면 왜 당신에게 어려운 얘기를 해줘요, 그냥 대충 잘했어, 됐지 할 수 있잖아요. 많이 해보고, 많이 피드백받아요. 일단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적어도 여기선 그래도 정말 괜찮다는 말,
끌어줄 테니 함께 실패하고 시도하자는 말.
사장님의 답변에는 ‘그냥 용기 내서 해 봐요'라는 다소 무책임한 말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실패하고 시도하자는 리더로서의 약속이 있었다. 그런 말속에 담긴 은근한 연대를 느끼며 적어도 이곳에서는 용기 있게 시작하고 시도하는 일이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실패를 함께 끌어줄 동료와 리더, 보스가 있으니, 실패해도 괜찮을 거라는 안도감, 정말 뭐든 일단 해볼 수 있겠다는 그런 든든함.
내게 꽤 오래 살아 남아있을 말들같아서 열심히 받아적고, 또 귀를 기울였던 여름날의 대화였다. 시도하는 일이 어렵고 또 괴로울 때마다 이 조언들을 야금야금 꺼내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