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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Apr 17. 2017

'이해한다'는 말에 대하여

:: 연극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

연극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는 러시아에서 스페인으로 향하던 여객기 한 대가 독일 위버링겐 상공에서 화물기와 부딪혀 추락하는 사고를 소재로 한 연극이다. 이 사고로 인해 비행기에 타고 있던 탑승자는 전원 사망하고, 이 사고의 주원인은 항공 관제사의 실수로 밝혀진다. 비행기 사고로 인해 아내와 두 아이를 잃은 니콜라이 코슬로프는 관제사를 찾아가 그를 살해한다.    


ⓒ두산아트센터

 


분노에 잠식한 코슬로프에게, 항공사 직원은 기계적으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답변한다. 무척이나 익숙한 반응이었다. 어린 학생들을 차가운 바닷속에서 끝까지 구조하지 못했던 세월호, 수리하던 도중 들어오던 열차 깔려 숨졌던 구의역의 열아홉 소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흡한 조치로 사고가 나버린 김포공항 스크린 도어 사망사건까지. 


비극의 사고는 자꾸만 끊이지를 않는데, <경제>, <효율>, <자본>이라는 이름 아래 지난 날의 아픔이 아물어들 기미는 그저 흐릿하기만 했다. 그런 경제적 가치 아래 놓여진 인간은 제 앞에 놓인 것밖에는 보지 못하는 법. 인간은 점점 <모던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하나의 기계가 되고 부수적인 부품이 된다. 제 앞에 있는 것은 알지만 전체의 것은 알지 못하는 인간들. 그렇다면 대체 전체를 조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은 누구란 말인가. 그 책임의 몫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래서 일까, 코슬로프의 슬픈 사고는 비록 어느 날 어느 시점을 다루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무대는 오히려 특정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듯 아주 가깝게만 느껴졌다. 돌이킬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비극을 보며 처음에는 흐느끼다가, 점점 분노했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고 소리를 지르다가도, 어차피 변하는 건 없을 거라며 회의감을 품고 좌절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이 아픈 과거에 대해서, 쓰라린 기억에 대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같은 시간을 살아가더라도, 인간은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비슷하고 유사한 상처를 경험했다고 할지라도, 개인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본인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쉽게 건넨 '이해한다.'는 말은, 칼날처럼 무섭고, 무례한 말이 되기도 한다. '이해한다'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조심스럽고, 그 어떤 말보다 실재할 수 없으며, 그 어떤 말보다 다가가기 힘든 어려운 말 그 자체다.


어차피 타인의 마음을 완벽히 헤아릴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애초에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애쓰지 않기로 했다. “이해해”, “알 것 같아”, “그 마음 내가 알아” 따위의 날카로운 폭력의 말 대신, 그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또 보듬어 안는 방법을 연습해가기로 했다. 그러면 적어도 내가 말 뿐인 위로보다는, 정말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무언가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조금 어렵고, 어지럽지만, 그래도 다짐해본다. 

내게 주어진 이 과제를 외면하지 않기로, 상처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무뎌지거나 무너지지 않기로.
 적어도 어두운 극장에서나마 소리를 내고 발버둥 치고 있는 연극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구석구석, 마디마디, 그들의 호흡과 눈빛을 힘껏 새기며 극장 밖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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