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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Jan 21. 2024

이 뮤지컬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 않은 이유

뮤지컬 일 테노레를 보고

고민 끝에 <일 테노레>를 보고 왔다. 이 극이 논란인 이유는 2019년 미투 때 성희롱/성추행 가해자로 지목 당했던 변희석 음악 감독이 복귀한 극이기 때문. 당시 그는 잘못을 시인했고 사과문을 올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화려한 배우들 뒤에 숨어 조용하지만 퍽 당당하게. 팬들은 그의 하차나 입장문을 요구했지만 제작사도, 감독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결국 공연은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순조롭게 개막했다. 그 행보가 얄미워 끝까지 소비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나도 극장을 찾았다. 누가 물은 적도 없는데 비겁하고 옹졸한 변명을 열심히 둘러대면서.



<일 테노레>는 독립 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고자 오페라를 빌려 항일 정신을 노래하는 이야기다. 극은 예상했던 것만큼 재밌었고, 아름다웠고,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이야기가 절정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극에 대한 몰입이 깨졌다.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글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미간을 찌푸리고 볼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의 폭력과 희롱에 대한 글들. 그래서 극의 메시지와 극을 보는 나의 마음 사이에는 어쩐지 커다란 괴리가 자꾸만 일렁였다.



대부분의 뮤지컬은 늘 의로운 사람들 편에 섰다. 폭력으로 학생들을 억압하는 일본 제국이 아니라, 그 폭력에 맞서 존엄을 지키고, 솟아날 방법을 찾고, 끝까지 저항하는 이들의 꿈에 집중한다. 폭력과 거짓이 만연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가 애써야 하는 이유를 소리 높여 외친다.



하지만 일 테노레는 그런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어쩐지 퇴보한 환경이었다. 그들은 적어도 이 선택이 최선이었던 이유를 관객에게 설명/설득해야 했고, 진솔하고 거듭된 사과로 피해자들에게 도리를 갖춰야 했다. 아무 말 없는 극을 답답한 마음으로 팔짱을 끼고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 지켜보다가, 음악 감독이 나와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는 커튼콜에서는 울분이 치솟았다.



내가 피해자가 아닌데도 이렇게 화가 나는 이유는 오히려 내가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아니기에 화를 낼 수 있는 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의 복귀를 지켜보며 더 많은 좌절감과 무력감에 짓눌려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어느 것 하나 변한 것 없는 온도를 체감하며 비슷한 모양의 폭력을 가볍게 휘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다 보니 관객으로서 어떤 책임감이 생겼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명확히 존재하는 단단한 물성의 책임감이. 책임감은 영어로 Responsibility, 말 그대로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일 테노레를 향한 나의 응답은 변명과 위선은 집어치우고, 더 나은, 더 옳은 선택을 만들어가길 힘주어 요구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바람은 나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나 역시 더 나은, 더 옳은 선택을 응원하는 관객이 되겠다는 그런 다짐. 그런 다짐을 한 이상 이번 시즌의 일 테노레는 고까운 마음으로 보내줄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개인적인 다짐을 다른 관객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나 역시 진연과 수한의 뜨거운 투쟁을 본 뒤에야 이런 다짐을 단단히 새길 수 있었다. 다만, 이 다짐이 부디 나 한 명만의 다짐이 아니길 바라며 구태여 이렇게 쓰고, 또 건넨다.



친구의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배우가 없어도 공연은 올라가지만, 관객이 없으면 공연은 올라가지 않는다고. 관객은 분명 이 생태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힘을 가진 존재다. 청각 장애에 관해 다루면서도 배리어 프리 회차를 만들지 않아 뭇매 맞았던 극장은 이제 자막 연극을 앞서 확산시키는 극장이 됐고, 사회적 비난 받아 마땅한 배우의 하차를 요구하는 객석의 목소리는 이제 당연한 요구, 합당한 권리가 됐다.



객석의 반응은 전염되기 마련이고, 극의 유통기한 역시 관객에게 달렸다. 그런 책임감을 갖고, 더 좋은 극을 소비하고, 옹호하고, 응원하리라는 단단한 다짐을 새긴다. 좋은 극이었던 만큼 아쉬운 마음도 컸던 <일 테노레>. 훗날 그들의 노래가 다시 들려온다면, 그땐 분명 더 편안하고 개운한 모습으로 찾아오기를, 관객 역시 편안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극장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선과 진연, 수한과 우리 모두에게 떳떳한 그런 모습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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