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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Jun 12. 2023

드럼만이 내 세상

연극 온더비트


연극 <온 더 비트>는 드럼만이 세상의 전부인 자폐아 아드리앙의 이야기다. 아드리앙은 사람들의 표정이나 말 한 마디를 해석하는 일조차 퍽 어려운 난제다. 하지만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 바로 드럼. 스스로自를 포함해 모든 세상이 삐걱대고 기울게 닫혀 있는閉 아드리앙에게, 드럼은 아드리앙이 혼자서도 씩씩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균형의 세계이자,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 되어준다.


@wunderbinnie



드럼에서 정말 최고는요. 고스트 노트가 존재한다는 거예요.
고스트 노트. 들릴 듯 말 듯한 음이거든요.
아주아주 엄청나게 작은 음들,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데, 그런데 존재하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나는 이런 소재에 유난히 약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들이 홀로 외롭게 분투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매번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감춰져 있던 이야기들이 조명 아래 빛을 발할 때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외면해왔던 그들의 소외를 이렇게나마 마주할 수 있어 고맙기도 하고, 희미하게나마 따뜻한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기도 한다. 비록 그게 위선이라 할지라도.


수도 없이 많은 공연을 봤지만, 이렇게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커튼콜을 가진 극은 정말 처음인 것 같다. 다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의 매듭을 다시 풀어헤치고 무대를 향해 다시 달려오는 아드리앙과 두 눈이 마주치던 그 순간, 그 반가운 재회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 꼭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암전과 암전 사이를 가득 밝히던 그의 붉은 환희를, 푸르게 빛나던 조명의 산란을, 그저 오래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마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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